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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초향 Jan 16. 2024

눈 오는 물끝길(양근나루길)

무서운 가시박

계속된 집안 일로 몸이 지쳐가더니 토요일은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천근만근 같다. 전날은 도라지청을 만드느라 밤 12시까지 일하고, 토요일 아침은 더덕구이 장아찌를 담았다. 누구 말마따나 뭐 하러 그리 일을 하는지 일중독에 걸린 듯하다.  아침에는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느낌이다. 토요일 저녁에 딸네가 저녁 먹으러 오라 했는데 도저히 꼼짝을 못 하겠어서 오지 말라고 문자를 했더니 오히려 걱정이 되어서 더 빨리 와버렸다. 참나~~ 일만 할 팔자나 보다.





무거운 몸인 일요일 아침 경기옛길을 걷기로 약속이 되어있어 하늘이 찌쁫해지는걸 보고 길을 떠났다. 숲 동기 9명이 함께 했다. 만나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얼굴을 자주 보는 친구들이다. 긴 세월이지만 아직까지 모난 사람 없이 잘 어울려 다녀서 참 좋다. 상큼한 자연만큼 다들 사람들이 넉넉하고 맘 씀씀이가 넓다.


양평 쪽 남한길을 끼고 걷는 길은 경기옛길과 양평 물소리길이 잘 다듬어져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두길은 함께도 닿아 있고, 다른 곳으로 지나가기도 하지만 거의 남한강 근처를 걷게 된다.

신원역에서 만나 양평까지 걷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다들 걷기 잘하는 동기들이라서 이 정도는 거뜬한 거리이다.  이 길은 경기옛길 물끝길(양근나루길)로 14.2km, 4시간 30분 걸리는 코스이다.


양평물소리길이다




일요일이라서 교회나 성당을 갔다 오기 위해 12시에 신원역에서 모이기로 했다. 대신 저녁을 양평에서 먹기로 약속을 잡았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신원역에서 내리니 벌써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펑펑 쏟아지는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리니 우산을 쓰고 걷는다. 그리 춥지 않은 날씨라서 우산을 잡은 손이 춥지는 않지만 꽁꽁 싸매고 손난로까지 속에 넣었다.

보이는 터널은 원복터널이다. 남한강 자전거길로 이곳으로 자전거가 다닌다



금세 우산 위로 쌓이는 눈이 무겁고, 앞에서 몰아치는 눈바람이 코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도 않고 얼어버린다. 바닥이 두꺼운 신발도 무겁기 그지없다. 바닥은 약간씩 녹으면서 눈이 오기 때문에 더욱 미끄럽기까지 하니 발걸음이 느려져 간다. 또 넘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이 머리에 들어있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길가의 나목들이 어처구니없는 분이 이 날씨에 돌아다닌다고 흉보는 것 같다며 웃지만 정말 나이 든 우리들이 걷기는 어려운 날씨였다.





길가에 개망초 로제트와 파란 싹들은 눈을 덮고 자고 있고, 겨울에도 아름다운 모습을 잊지 않은 구절초의 마른 꽃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가중나무 엽흔도  커다란 하트를 그리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흰 눈이 내리는 도로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열매를 다 팔지 못해 매달고 서있는 산수유의 모습이 떨이를 아직 못하고 남아있는 옛 장터의 아낙 같은 안쓰러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거친 수피는 너덜거리고  우중충한 열매는 더욱 초라하다. 봄의 찬란한 꽃피던 시절을 돌아다보면 억울할듯하다. 그러나 좀 맛있는 열매를 만들어야지 새들이 숨 넘어가게 먹을 건데 욕심 많게 겨울까지 매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겨울에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비워보는것도 좋으련만.





강변가를 덮고 있는 가시박을 날씨만 좋았다면 다 벗겨냈을 것이다. 내 숨이 막힐 듯했다. 그 안의 나무들은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일 년이면 근처 식물 전체를 덮어 질식사시켜 버린다. 이 겨울에도 그 잔재들이 남아 흉물로 보인다. 도로 포장도 좋지만 이런 생태도 신경써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기만 하다.

 가시박은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해살이 풀로 번식력이 아주 강한 귀화 식물인 북아메리카 원산이다.  주변식물을 감고 올라가  오각형의 넓은 잎으로 햇볕을 가리며 다른 식물을 죽이게 된다. 열매가 익기 전 한 번씩 가시박 제거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열매에 가시가 달려 가시박이라 한다. 여러 개가 뭉쳐서 털 같은 흰 작은 가시로 덮여 만지면 잘 떼어내기도 힘드니 만지는 것은 곤란하다. 발로 밟아 으깨보니 안에 씨앗이 하나 들어있다. 줄기를 꺾어보니 구멍이 숭숭 뚫린 엿가락 같다. 다들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신기해했다. 아마도 가벼워야 감고 올라가기 쉬워 그렇게 구멍을 뚫은듯 하다.





가는 길목마다 물소리길 표시판이 잘 되었다. 노란색과 하늘색 띠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물소리길이라는 표지만의 아래 양쪽에 구멍을 뚫어 오른쪽, 왼쪽을 표시해 둔 것도 참 잘한 것 같다. 방향 표시도 다른 곳보다 깔끔하게 되어 있어 정성을 많이 들인 느낌이 들었다. 시골길이지만 한 번도 허투루 가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아신역까지 왔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6명은 빠지고 나머지는 양평까지 간다고 하더니 결국은 다 못 가고 버스를 타고 양평에 도착해서 저녁을 다 함께 먹을 수 있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 오는 날은 아니지만 겨울 경변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너무 좋다. 같은 취미의 분들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걷는 겨울 강변이 더욱 깨끗하게 기억된다.

 




긴 발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더 갈 것이다. 전날까지 무겁던 몸이 눈길 산책 덕택에 가벼워졌다. 또 한주의 시작을 가뿐하게 해준다.


아신지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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