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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May 18. 2023

조건없는 행복


토마스 제퍼슨 미국 전 대통령은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주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존재한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마치 행복이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는 ‘행복하다’ 라는 표현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 그렇기 때문인지 우리는 행복에 여러 이유를 붙이며 내가 행복한 사람임을 스스로에게, 남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우울할 때, 감사하지 못할 때, 부정적일 때와 같이 비관적인 감정이 들거나 달갑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여러 이유를 생각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걱정이 없고 마음이 편한 상태가 가장 간단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사람마다 분명 다르게 정의할 수 있지만 불행한 일들이 가득한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불행이 전혀 없는 삶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려움 가운데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겠다고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제퍼슨의 말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건강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행복추구권이 실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내가 자주 그러듯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아픈 곳 없고, 삼시 세끼 굶지 않을 수 있고, 행복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등등 나열을 하자면 끊임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상 이러한 방법만으로 충분히 오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내가 사용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주어진 상황들을 행복의 이유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봤을 때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인 행복이라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상황이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지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충분하고, 이로 인해 부족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다면 좋은 일이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을 최대치로 누리는 법의 정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행복을 외적인 요소가 아닌 내면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조건들이 내게 없다는 가정을 하나씩 해보면서 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했다. 떠올릴 수 있는 100여 가지 조건들을 공책에 적어 놓고 하나하나 점검하며 아직 내가 행복한지 질문했다. 


Ex. 밥을 삼시 세끼 먹지 못한다면?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오랫동안 앓고 있는 병이 있다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 행복하다. 


조건들 모두 생각보다 쉽게 대안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니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생각해두는 것이 낙담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보다 빠르게 일어설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삶에서 마주할 순간들이 내 예상 범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조건들마다 다소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들로 설정했을 때에는 어떨지도 한번 보기로 했다.


Ex. 밥을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한다면?

      평생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현재의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상황들이고, 실제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왜 조심스러워졌을까 하면 나는 조건들을 소거해가며 돌아보고 있는 순간까지도 내면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서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에, 내가 누리는 것을 누군가는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신경 쓰기 때문이다.


100여 가지의 조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본 끝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 없어 보이는 조건들 대부분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로 귀결되었다. 다른 상황과 조건들 다 제쳐 두고 생명이 있는 것만으로 삶을 영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극단으로 설정한 모든 조건들을 내가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조심스레 한 두 가지 조건은 경험해 봤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도 한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하다는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다른 말로 본인의 존재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원초적인, 조건 없는 행복의 형태이자, 그것이 내 내면에 이미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아직은 모르지만, 깨달았을 때 내게 주어진 외적인 요소들도 더 이상적인 형태로 바라보고 이해하여 내면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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