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이름조차 아직 친하지 않은 비건이라는 단어를 넣은 모임의 모임장이 되었다.
평균 나이 50대의 모임원들 중에서 어르신들께서는 나이 어린 당신이 맡는 게 당연하다고 입을 모으셨다. 이 쪽 분야에 관해서 나이 지식과 경험은 갓 태어난 아이 같았다. 아무 개념이나 의미에는 무지하고, 그저 사람의 소리와 움직임에 반응하는 정도였다. 경험은 오히려 다른 어르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지 말이다.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듯 입을 모아 손뼉 치고 얼떨결에 나는 7명 정도의 모임에서 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제법 세월을 알차게 보낸 어른들 사이에서 내가 장으로써 모임을 유지하려면 어쨌든 미세하여도 이끄는 힘이 있어야 해야 했던 것이다. 하나도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따뜻하게 말해 주셨지만 어쨌든 목적이 있는 약속을 하고 만남을 하는데에 아무 생각 아무 부담 없이 오기에는 자리가 버겁게 느껴졌다. 어른들은 그저 이렇게 나와서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왕 마음먹고 쏟는 시간을 허비하기는 싫었다. 열심히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장으로서는 전혀 준비가 안 되었던 처치라 더 부담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초등학교 때 흔한 반장도 해보지 않았고, 항상 개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던 내가 40살이 조금 안 된 시점에 뭔가를 맡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조용히 발을 내디뎠던 비건모임에서 위치가 바뀌고 나니 열심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 정말 맞다. 자의 반 타의 반보다는 거의 타의 반으로 다큐멘터리나 책을 열심히 보기 시작했고, 덕분에 채식의 자세함을 알게 되었고 깊이 빠져들었다. 알면 알 수록 더 모르는 게 많아지고 나중에는 괜히 알았나 싶을 정도로 괴롭기도 했다. 여태껏 건강에는 자부하며 살았고, 생활도 순탄했지만 비건에 관심을 갖고 모든 사안에 대해 의심과 비판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힘들어지기도 했다. 모임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기사나 새로운 소식들을 찾아 공유하고 인쇄해 갔다. 책이나 다큐멘터리들 중 좋았던 것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힘들긴 했지만 육아와 가정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내가 새로운 개념을 만나 지금과는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활동하니 팔딱팔딱 활동하는 물고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여태 내 의지의 정도로만 움직이는 육아와 가정의 일들만 하다가 존재를 모르는 무언가 뒤쫓아오지만 그것보다 빨리 앞서나가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그 조급함을 느낀 지 10년도 넘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느끼니 짜릿하고 즐거웠다. 여태 누가 채찍질하기를 은근히 기다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