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 이어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거치며 다원화된 가치를 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사교댄스 문화 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청소년을 위한 공간으로 탄생한 '콜라텍'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년층의 핵심적인 여가 공간으로 변모했으며, '사교춤'은 '댄스스포츠'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면서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대중적인 생활 체육으로 거듭났다. 또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방식으로 현대화된 '소셜댄스'가 수입되었다. 이는 춤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퇴폐'에서 '여가'와 '건강', '취미활동'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콜라텍(Colatec)'은 '콜라(Cola)'와 '디스코텍(Discotheque)'의 합성어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술 대신 청량음료를 마시며 춤을 추는 공간을 의미한다. 연구 논문에 따르면, 콜라텍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청소년들을 위한 건전한 놀이 공간을 표방하며 처음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청소년들의 탈선을 막고 건전한 여가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콜라텍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곳은 억압적인 입시 문화와 권위주의적인 학교 분위기 속에서 청소년들이 잠시나마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청소년의 해방구였던 콜라텍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부 콜라텍이 음주, 흡연, 폭력 등 청소년 비행의 온상으로 변질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정부의 규제와 단속이 강화되었다. 동시에 1990년대 후반부터 PC방, 노래방,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 새로운 형태의 놀이 문화가 급부상하면서 청소년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콜라텍을 떠나게 되었다.
청소년들이 떠나간 자리는 새로운 주인이 채웠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쇠락하던 콜라텍은 노년층을 위한 공간으로 극적인 변신을 꾀했다. 1,000~2,000원 수준의 저렴한 입장료, 낮 시간대 운영, 그리고 익숙한 트로트와 지르박 음악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고 마땅한 여가 시설이 부족했던 노년층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 문화 비평 기사에 따르면, 현재 콜라텍의 주요 이용 연령대는 60대에서 90대에 이르며, 60대는 '어린애' 취급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서울의 영등포, 청량리, 종로 등 노인 인구가 밀집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콜라텍이 성업 중이다.
1990년대는 사교춤이 '춤바람', '불륜', '퇴폐'라는 수십 년간의 부정적 굴레를 벗고 양지로 나오는 결정적인 전환기였다. 그 중심에는 '댄스스포츠(Dancesport)'라는 새로운 이름이 있었다. 기존의 '사교춤'이라는 용어가 가진 부정적 어감을 탈피하고, 예술성과 스포츠성 을 겸비한 건전한 활동임을 강조하기 위해 '댄스스포츠'라는 용어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제도화를 통해 가속화되었다. 일부 대학에서 댄스스포츠를 교양 과목 으로 개설하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풍속영업법에 따라 무도교사자격시험제도가 실시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댄스스포츠가 시범종목으로 채택 된 것이었다. 이를 통해 댄스스포츠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스포츠 종목이라는 인식을 대중 에게 심어주었고, 왈츠, 탱고 등 모던 5종목과 룸바, 차차차 등 라틴 5종목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각종 아마추어 및 프로 협회가 설립되고, TV 프로그램에서 댄스스포츠를 주제로 한 코너가 인기를 끄는 등 대중화에 박차가 가해졌다.
콜라텍, 무도장, 카바레 등에서 주로 향유되는 한국식 사교댄스는 국제 표준과는 다른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걸어왔다. 대표적인 춤인 '지루박(지르박)'은 미국 스윙댄스 지터벅(Jitterbug)에서 비롯되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재즈와 스윙 리듬에 맞춰 추던 춤이 한국전쟁 이후 미군 주둔지와 클럽을 통해 들어왔고 1960년대 한국식으로 간소화·변형되어 정통 스윙이나 린디합(Lindy Hop)보다 단순하고, 한국 대중가요(특히 빠른 템포의 트로트나 디스코풍 곡)에도 맞춰 출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느린 4박자 음악에 맞춰 추는 '블루스' 역시 미국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는 직접적인 연관성 없이, 한국적 상황에서 파트너와 편안하게 교감하며 출 수 있는 형태로 토착화되었다. 트로트(Trot Dance) 또한 미국 흑인 음악의 폭스트롯 리듬에서 비롯하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슬로-슬로-퀵-퀵' 스텝을 바탕으로 하나 발걸음을 작고 부드럽게 하는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춤들은 정형화된 규칙이나 기술의 완성도보다는 파트너와의 호흡, 즉흥적인 즐거 움, 그리고 '사교'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발전했다. 따라서 한국에서 '사교댄스'라는 용어는 넓은 의미로는 댄스스포츠를 포함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댄스스포츠와 구별하여 지루박, 블루스 등 한국적으로 변형된 춤들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이는 세계적 보편성 보다는 한국 내에서의 실용성과 대중적 기호가 우선시된 결과이며, '재해석'과 '현지화'의 성공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현재 '콜라텍 댄스'와 '댄스스포츠' 모두 중년부터 노년세대를 통해 향유되고 있다. 다만, 댄스스포츠는 '교육 중심'의 제도화된 공간에서 나름 체계적 학습이 중요시되고 '콜라텍 댄스'는 학습보다는 콜라텍, 무도장에서의 '실전과 유희 중심'으로 운영된다. 댄스스포츠 인구는 134만명까지 추산된다고 하나 전문 선수는 수백명 수준으로 엘리트 체육과 중장년 동호회, 지역 대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콜라텍 댄스를 포함한 한국식 사교댄스 인구는 공식 집계가 없고, 전국의 무도학원과 무도장 등 커플댄스 관련 영업장 추산이 2,500개에 달한다는 언급에서 미루어 추산할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말부터 한국 사회에 등장한 또 다른 흐름을 함께 조망할 필요가 있다. 바로 살사, 스윙, 아르헨티나 탱고로 대표되는 '소셜 댄스(Social Dance)'의 부상이 다. 이 '제3의 물결'은 앞선 두 문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며 한국 춤 문화 지형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살사, 스윙, 탱고는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PC통신과 인터넷의 보급이라는 시대 적 배경 속에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1997년 홍대에 한국 최초의 살사 클럽 '마콘도'가 문을 열었고, 1999년 나혜석의 무료 스윙 강습을 시작으로 2000년 최초의 스윙 동호회 '스윙키즈'가 결성되었다. 탱고 역시 2000년 첫 동호회가 활동을 시작하며 커뮤니티 를 형성했다. 이들 춤의 가장 큰 특징은 댄스스포츠처럼 학원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 거나 콜라텍처럼 특정 영업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동호회'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동호회 문화는 기존의 춤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첫째, 수직적인 강사-수강생 관계보다는 선배 기수가 후배 기수를 가르치는 '기수제'와 같은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둘째, 춤을 배우는 강습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소셜 파티(정모), MT, 발표회 등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단순한 취미 공유를 넘어 강력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동호회들은 한국 살사계의 인스트럭터를 배출하고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는 등 씬(Scene)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셋째, 이 문화는 주로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세대의 문화적 욕구에 부응했다. 이들은 기성세대의 문화 (콜라텍)나 지나치게 규격화된 문화(댄스스포츠) 대신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소셜 댄스에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소셜 댄스의 등장은 댄스스포츠와 콜라텍 댄스의 문화적 위상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소셜 댄스와 비교했을 때, 댄스스포츠의 '제도권 스포츠'로서의 공식성과 체계성은 더욱 강조된다. 동시에, 콜라텍 댄스는 특정 세대의 문화적 고립을 해소하고 그들만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세대 중심적 놀이문화'로서의 독자적인 역할과 가치가 더욱 명확해진다. 결국 한국의 커플 댄스 문화는 댄스스포츠(제도권/전 연령), 콜라텍 댄스 (비제도권/노년층), 그리고 소셜 댄스(동호회/청장년층)라는 세 개의 축이 각기 다른 세대와 계층의 사회·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공존하는 복합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