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콜라보레이션 #3. 세르펜티를 재해석하다.
이번에 소개할 프로젝트는 가장 최근, 2025년 4월에 마무리한 따끈따끈한 프로젝트이다. 나는 늘 상징성이 있는 명품브랜드와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단순하게 메시지나 컨셉을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스토리, 오랜시간 쌓여온 정체성을 조금 더 심도있게 시각예술의 언어로 담아내고 싶었다. 게다가 그간 AXOO에서 다루지 못했던 새로운 타겟, 그리고 새로운 결의 프로젝트의 종류이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불가리(BVLGARI)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느꼈고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젝트를 논의했다.
세르펜티(Serpenti)는 이탈리어로 '뱀'을 뜻한다. 불가리에게 이 '뱀'은 단순한 심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징해온 핵심적인 모티브다. 불가리는 뱀이라는 모티브를 끊임없는 변화를 상징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브랜드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정교하게 재해석해왔다. 그리고 마침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을 맞이하여 불가리는 상하이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글로벌 프로젝트(전시)를 준비했고, 우리는 그 중요한 순간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불가리와 협업을 통해 이미 작품을 만들었던 Refik Anadol(레픽 아나돌) 작가와 대한민국 아티스트 10인을 포함해 총 11인의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그룹전으로 준비되었다(조금 더 자세하게는 아티스트를 추천하고 추리면서 총 11인의 아티스트가 확정되었고, 기존 예상보다는 더욱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하게 되었다). 장소는 북촌의 푸투라 서울(FUTURA SEOUL)이라는 곳이었는데 최근에 오픈한 공간이라 시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북촌의 자연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멋진 공간이었다. 아티스트 큐레이션에 대해서는 불가리 측에서 악수에게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여 맡겨주었는데, 덕분에 마음껏 상상하면서 아티스트를 구상할 수 있었다. 상해 전시에서는 주로 뱀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한국에서는 뱀이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큐레이션을 이어갔다. 1차-2차-3차-4차-5차, 지속적으로 아티스트 추천자료를 전달하며 불가리 팀과의 의견을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갔다. 이 과정에 약 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10인의 아티스트 참여를 확정했다.
❋ 큐레이션의 기준
1. 개인적인 공감에 집중(-> 색깔이 있는 큐레이션)
아무리 훌륭한 아티스트라 하더라도 큐레이터 본인이 공감을 하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으로는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인적인 취향이 담기는 것인데,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 더욱 집중하여 명확하게 AXOO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큐레이션이 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 신진작가와 한국과 세계를 대표하는 작가의 균형을 통한 시너지 창출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를 이끌어갈 그리고 이끌어 가고 있는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이 한 전시 안에서 만나 세대 간의 시선과 에너지가 교차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다양한 장르, 조화로운 구성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 않도록 회화, 설치, 미디어, 오브제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조화롭게 구성했으며, 각기 다른 표현 방식과 재료, 감각들이 어우러져 예술의 다층적 매력을 드러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 PRACTICAL INSIGHT(실무 인사이트)
이전 글에서 나이키 프로젝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 10인의 아티스트를 단 한 번의 제안만으로 확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불가리와의 방향성을 정렬해나가기 위해 5차례 이상의 큐레이션 자료를 전달하고 조율을 반복한 끝에, 마침내 10인의 아티스트 라인업을 확정할 수 있었다. 특히, 클라이언트와 악수 양측 모두 함께하기를 원하는 아티스트가 있더라도,조건 또는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이번과 같이 다수의 아티스트를 한 프로젝트에 모으는 일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정교한 협의와 설득, 그리고 조율의 과정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최종적으로 참여를 확정한 아티스트 11인을 소개한다.
1. 최정화
2. 서도호
3. Refik Anadol
4. 하정우
5. 조기석
6. 최고은
7. 구기정
8. 김옥
9. 박혜인
10. 이준아
11. 이지연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 하지만 전시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했다. 가장 크게는 신작을 만들 것인지, 기존작품을 전시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고, 이는 프로젝트 예산과 아티스트의 스케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10명의 아티스트가 모두 신작으로 참여하기에는 다소 빠듯한 예산이었고, 예산이 충분하더라도 신작으로 참여하기에 일정이 여의치 않은 아티스트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저, 참여 아티스트의 보유 작품 중 이번 전시와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아티스트에게 기존 작품으로의 참여를 제안하여 참여방식과 작품을 확정했다. 동시에, 꼭 신작으로 참여하면 좋겠다고 판단한 아티스트들과는 예산과 스케줄을 조율해나가면서 복합적인 소통을 이어갔다. 아티스트 10명의 작품 제작방식과 책정 비용 그리고 현재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를 조율해나가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AXOO가 늘 해오던 일이고 강점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다. 신중하고 세심하게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갔다. 많은 조율과 논의 끝에, 가장 경력이 풍부하고 이번 전시의 중심을 잡아줄 최정화 작가님의 신작 참여를 확정했고, 이를 시작으로 하정우, 박혜인, 최고은, 김옥, 조기석 작가님의 신작 참여를 확정할 수 있었다.
신작 참여가 결정되었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티스트의 작품 계획을 스케치 등을 통해 불가리 측에 전달하여 기본적인 컨펌이 이루어졌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이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아티스트의 작품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브랜드에서 민감한 부분이나 지양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불가리는 아티스트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아티스트들도 이러한 마음을 느껴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협의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품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전시는 REBIRTH(재탄생) - TRANSFORM(변화) - EVOLUTION(진화) 3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었는데, 우리는 해당 3가지 키워드에 맞추어 아티스트를 매칭하고 전시 동선을 만들어야 했다(물론 이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프로젝트에 착수했기에, 아티스트의 작품 계획 과정에서 이 점을 고려하여 논의를 이어나갔다). 푸투라서울은 총 3개 층과 루프탑으로 구성되었는데,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층이 많다보니 자연스러운 전시동선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아티스트의 작품 뿐만 아니라, 각 키워드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불가리 주얼리를 함께 전시해야 했다. 주얼리와 작품이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했고, 주얼리가 효과적으로 어필되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불가리 측과 실시간으로 의견을 조율해 나가며 전시 동선과 작품 위치를 확정해 나갔다.
전시는 아래와 같은 키워드와 의도로 준비되었다.
CHAPTER 1. REBIRTH(재탄생)
ARTIST. 하정우 - 박혜인 - 김옥 - 이준아
: 'REBIRTH(재탄생)' 챕터는 역사 속 세르펜티의 유산을 다루며, 고대부터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 뱀의 상징적 의미를 조명하고 전통과 현대의 연결을 보여준다.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과 함께 다양한 매체와 기법(페인팅, 유리공예, 옻공예)을 활용하는 총 4명의 한국 아티스트가 그들만의 시각으로 세르펜티를 재해석했다.
CHAPTER 2. TRANSFORM(변화)
ARTIST. 최정화 - 조기석 - 서도호 - 최고은
: 'TRANSFORM(변화)' 챕터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기법 그리고 다채로운 소재를 통해 예술적 창작의 영감이 되어 온 세르펜티를 재탄생시킨다. 불가리의 창의성과 장인 정신이 깃든 세르펜티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아티스트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고, 다양한 매체와 기법(설치, 혼합)을 활용하는 총 4명의 아티스트가 세르펜티의 끊임없는 변화의 본질을 재조명했다.
CHAPTER 3. EVOLUTION(진화)
ARTIST. 구기정 - Refik Anadol - 이지연
: 'EVOLUTION(진화)' 챕터는 다양한 혼합 매체를 활용하여 예술 작품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독창적인 예술적 비전을 선보이는 동시에 창작의 경계를 넓히고 예술적 표현을 새롭게 정의한다. 3명의 혁신적인 아티스트는 디지털 미디어, 몰입형 설치 미술 그리고 AI 기반의 작품을 통해 기존의 한계에 도전하며 현대적 관점에서 세르펜티 그리고 변화를 재해석했다.
이제 모든 작품 준비는 완료되었다. 브랜드 전시의 경우 대관 기간 그리고 명확하게 지켜야 하는 설치기간이 있다. 그리고 우리만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파트의 팀들이 내부에서 설치를 진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팀을 고려한 스케줄 세팅도 중요하며, 약속한 시간에 문제없이 설치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 팀은 기본적으로 벽체와 조명이 세팅된 이후 진입하여 빠르게 작품설치를 완료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고, 설치 시간을 여유있게 확보해야 하는 일부 작품(최정화 작가의 설치작품 등)은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여 따로 스케줄을 조정하였다. 항상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옥상의 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불어 최정화 작가 작품의 설치 방법을 현장에서 수정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박혜인 작가의 작품은 물이 들어가는 작품이라 무게가 매우 무거워 한 번 설치하면 다시 옮기기가 불가능했는데, 설치 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었다. 다행히 현장에서 빠르게 대응을 이어가면서 설치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처럼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관련 팀들 드리고 클라이언트 측과 빠르게 논의하여 대응을 해야 하고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한다. 전시는 제 시간에 오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산들을 넘어 마침내 성공적으로 개최한 전시 현장을 공개한다.
CHAPTER 1. REBIRTH(재탄생)
CHAPTER 2. TRANSFORM(변화)
CHAPTER 3. EVOLUTION(진화)
전시기간 중 큐레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포럼 또한 마련되었다. 불가리 헤리티지 큐레이터인 지슬렝 오크레망(Ghislaine Ouckemane)과 챕터1 REBIRTH에 참여한 김옥 작가가 연사로 참여하였으며, 이번 전시의 국내 큐레이션을 맡은 내가 사회를 맡아 '큐레이션'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특히 지슬렝 오크레망은 해외 일정으로 인해 포럼 당일 아침 파리에서 서울로 도착하여 휴식도 없이 포럼에 참여해 주었고,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큐레이션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풍부한 인사이트를 공유했다. 김옥 작가 역시 아티스트의 시선에서만 풀어낼 수 있는 큐레이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간의 관계, 협업, 그리고 창작 과정의 맥락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더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