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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May 18. 2024

80386 PC의 추억

디지털 시대의 손글씨 5

1.


따지고 보면 문명의 발전은 글자의 발명과 사용에서 시작되었고, 역사는 사람이 손으로 글씨를 써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명의 역사는 곧 글씨, 또는 넓은 의미의 문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 등 고대 문자 이후로 문명은 곧 '기록'으로 등장했고, 그것이 다시 '역사'가 되었던 것이지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해진 저서를 쓴 사사키 아타루는 '문학이 곧 혁명'이라는 식으로 서술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것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여기서 문학이란 소설이나 수필처럼 좁은 의미의 문학이 아니라 문자를 읽고 쓰고 기록하는 정도의 포괄적 문헌으로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그는 정치적 폭력을 통한 체제의 전복이 아니라 문자의 기록이야말로 인간의 사고체제를 바꾸는 혁명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저 그의 주장에 동조하기만 하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혁명 이야기보다는 주로 기록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지요. 문자로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가에 관한 사고를 하게 됐다는 겁니다.


특히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의 혁명적 의미는 그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현실의 종교와 다른 점을 명확하게 인식했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했으며, 나아가 자신의 기독교적 판단과 가치를 엄청나게 많은 저서로 기록했다는 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루터는 중세에 오로지 교회 특권층만 독점했던 성경 지식과 해석을 반박하고, 그들이 의지했던 성경을 더욱 세밀하고 정확하게 독파하고 재해석함으로써, 나아가 성경을 일반인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확산시키고자 했던 데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집중되었던 권력을 파괴하고 분산시켰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록과 문학을 통한 혁명 과정이었다고 아타루는 이해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중세로부터 무수한 수도원의 수도승들과 여러 대학들의 지식인들이 손으로 글을 써서 기록하고 문헌을 남겼다는 전사가 있었습니다. 출판은 나중에 단지 소수에게 집중된 지식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 모든 기록이 출판 이전에는 오로지 손글씨로 작성되었습니다.


2.


다시 타자기로 돌아가서 간단하게나마 타자기의 역사를 말하겠습니다.

타자기는 원래 시각장애자들이 손글씨를 쓰기 어려워서 개발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타자기는 애초에 손글씨를 쓰기 어려운 시각장애자들이 글을 있도록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조금 나중 이야기지만, 미국의 작가, 교육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헬렌 켈러(1880~1968)는 시각 청각 장애자로서는 처음으대학의 학사 학위를 땄는데, 그녀 역시 타자기를 사용하여 집필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하버드대학교에 부속된 레드 클리프 대학교에서 공부할 점자 타자기를 사용하여 숙제를 제출했습니다. 다행히 그녀의 부모가 매우 부유하여 설리번 선생님을 모시고 특수교육을 받았고, 당시에는 매우 비싼 타자기를 사용했던 겁니다.


타자기가 실용적으로 대중에게 보급된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그전에 최초의 타자기는 1829년에 미국의 발명가 윌리엄 오스틴 버트가 '타이포그래퍼'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글 타자기는 1914년 재미 교포 이원익이 처음으로 개발했고, 이어 1929년쯤에는 송기주라는 분이 언더우드 포털 타자기를 개조하여 네벌식 세로 쓰기 타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공병우는 1948년 세로 쓰기 타자기 대신 세벌식 가로 쓰기 타자기를 만들어서 특허를 출원했고, 1953년에는 장봉선이 세벌식 자판에 다섯벌식 타자기를 개발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타자기가 한국전쟁 기간 중 군대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3.


형의 편지에서 과거에 형수님이 80386 컴퓨터를 사용했다고 하니, 이제 나도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타자기의 시대를 지나 드디어 퍼스널컴퓨터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추측하건대, 형이야 대학 시절에 가난한 자취생이었으니까 비싼 컴퓨터를 샀을 리가 없을 테고, 형수님은 당시에 그 비싼 컴퓨터를 어디서 사용했을까요.


하여간 바로 그때였습니다.

80년대 중반, 드디어 86 시리즈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했던 시기 말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개인용 컴퓨터가 소비 시장에 등장했던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라고 하면, 으레 매우 비싸고 크기 때문에 연구소나 대기업이나 관공서에서나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실제로 과거에 컴퓨터는 집채만큼 커서 개인들이 소장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큰 컴퓨터가 개인이 소장해도 될 만큼 작아지고, 가격도 개인이 살 수 있을 만큼 낮아진 것은 타자기의 생존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기가 나왔다 해도 한동안 과도기를 거쳐야 했습니다. 시장에 개인용 컴퓨터가 나왔다 해도 가격은 상대적으로 매우 비쌌고, 기능은 아직 제한된 수준이었으므로,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멀고 먼 남의 이야기로 들렸을 겁니다.


컴퓨터가 신문물이라고 해도 일반인들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숫자 계산을 빨리 한다고 하지만 일반인은 계산기를 사용하면 되었고, 워드프로세서 기능이 좋다고 하지만 일반인은 여전히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에 의존하면 된다고 여겼겠지요. 그런 것들의 '불편'을 넘어서기 위해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때가 타자기의 시대에서 컴퓨터의 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간 과학자들 또는 컴퓨터 전공자들이나 사용하던 매우 비싸고 신기해 보이는 컴퓨터가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소수의 눈에 컴퓨터가 혁명성을 가지고 있음을 직관했을 테니까요. 사실 나중에 보면, 바로 그때가 컴퓨터 혁명의 시작이지 않습니까.


아무튼 그 시기에 나름대로 '얼리어답터'였던 나도 퍼스널컴퓨터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이미 여러 해 전에 한국에 있는 일부 대학들에서도 전자공학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컴퓨터 공학 전공이 들어설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무렵 나는 우연히 컴퓨터를 전공하겠다고 유학 왔던 사람을 만났는데, 그로부터 향후 컴퓨터의 시대가 전개될 것임을 들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니 정말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로 인해 아주 잠시나마 나도 컴퓨터를 전공해 볼까 생각했었지요. 정말로 그랬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겠지만, 나의 문과적 성향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컴퓨터에 관한 한 나는 단순 소비자로서 남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마치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한 것처럼, 나의 인생은 한쪽으로 정해졌고 가지 못했던 다른 길은 영영 알 길이 없게 되었지만, 그 길에 무수한 영광이 있었더라는 후문만 듣게 된 듯도 합니다.


하여간 두벌식 타자기를 사용하면서도 나는 욕심을 내어 과감하게 퍼스널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시가 2천 달러에 가까운 퍼스널 컴퓨터 세트를 정말로 큰 마음먹고 부모님에게 졸라서 구입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를 전공하는 것도 아니므로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4.


퍼스널컴퓨터라는 기기는 내가 기대했던 것에 비해 실용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비싸고, 타자기에 비해 덩치가 무척 큰 컴퓨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매우 느리고 답답한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나는 또 워드프로세스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우기도 했지요. 책을 보고 연구하면서 DOS 명령어를 힘들여 입력하고 검은 스크린 위에서 움직이는 하얀 명령어들을 바라보면서, 난감한 느낌으로 지새웠던 무수한 밤들이 흘러갔던 시절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앞에서 소외된 자의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검은 스크린 위에서 하얀 커서가 깜빡거릴 때마다 느끼는 강박감!

"나에게 명령을 내려 주세요"라는 신호였지요.


내가 뭔가 쓰기를 기다린다는 듯 커서가 깜빡깜빡하잖아요. 그것은 하얀 원고지를 놓고 빈칸들을 채워 넣을 글씨를 생각해야 하는 난감함과 비슷한 듯합니다. 하긴 지금도 '구글독(Google Doc)'에서 세로 모양의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을 보면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쓸 내용이 빨리 떠오르지 않을 때 커서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막막함 같은 것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공히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한동안 자주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비싼 컴퓨터를 들여놓고 나서, 고작 한다는 것이 한글로 타이핑하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150 달러 짜리 타자기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을 1800 달러도 넘는 컴퓨터로 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타자기를 통해서 할 일을 컴퓨터로 할 때 다른 점이라곤, 틀린 글자를 고치는 것이 용이하고, 복사해서 붙여쓰기가 가능하며, 다시 불러올 수 있도록 그 파일을 저장장치에 저장한다는 정도라고 해야 하나. 사실 글을 자주 많이 써야 한다면 그것만 해도 큰 일이기는 합니다만, 그때 나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하여간 그 비싼 컴퓨터의 가치는 나에게는 명백히 사치였다고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서 얻은 소득을 엄청 날려 먹었다는 자책감에 한동안 시달렸습니다.


80386 PC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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