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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mory Jul 06. 2024

"교실에 '십계명'을 걸어 두라"고?

정교분리를 넘어서려는 기독교인들의 문화전쟁

1.


아직도 교실마다 교훈과 급훈이 있는지 모르겠다.

교훈과 급훈은 학교와 담임 선생님이 정한 교육적 가치를 짧게 적어둔 단어나 문장이다. 교실 칠판 위 하얀 벽에 걸린 네모난 액자에, 예를 들면, ‘근면, 성실, 정직’, 또는 ‘눈은 하늘로 발은 땅에’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이 자주 보고 마음에 새겨 두라는 의미이고, 과연 마음에 새겨둘 만한 좋은 문구였다.


미국의 학교 교실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데 어쩌면 앞으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학교 교실에서 한국의 급훈과 같은 ‘십계명’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유대인들을 모세가 탈출시키고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나온다. 그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받았다는 십계명은 이후 유대인들이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율법이 되었다. 아브라함에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에게 성문화된 율법은 없었다. 따라서 십계명은 그들에게 처음으로 성문화된 기록이다.


모세는 기원전 13세기나 15세기 무렵에 살았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므로 십계명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다. 그 오래된 십계명이 21세기 미국 학교에서 새롭게 '성문'으로 부활의 꿈을 꾸고 있다. 이로 인해 교실에 교훈이나 급훈 대신 십계명이 걸려 있어서 학생들이 매일 보게 될 수도 있다. 학생이 기독교인이든 무슬림이든, 무종교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혹시라도 십계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아래 십계명은 유대교와 정교회, 그리고 성공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이용된다. 가톨릭과 루터교회 등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아주 조금 다르다.)


1.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2.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마라. 

3.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4.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5.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마라. 

7. 간음하지 마라. 

8. 도적질 하지 마라. 

9.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10. 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십계명은 구약의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적혀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고대사회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율법에 관해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훗날 예수는 십계명을 놔둔 채 다시 두 가지 계명을 전해주었다.

 

 1.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가지 계명은 신약성경 마가복음에 적혀 있다.)


기독교적 측면에서 보면,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예수가 밝힌 첫 번째 계명으로 정리되었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예수가 전한 두 번째 계명으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계명은 매우 포괄적이어서 구약과 신약의 계명의 의미가 서로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재서술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전투적이고 선택적이고 시기가 많고 물리적 기적에 의존했던 여호와의 유대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이해되는 기독교로 탈바꿈한 것은 예수의 계명 덕분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계명을 놔둔 채 굳이 두 계명을 언급한 까닭을 되새겨야 한다. 현대적 시각으로 보면, 십계명은 고대사회적인 냄새가 나지만 예수의 계명은 지금 보아도 매우 세련되고 간단하면서도 포괄적이다.



2.


미국 남부지방에 있는 루이지애나주의 제프 랜드리 주지사는 지난 6월 19일 주내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을 전시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종교와 국가 간의 경계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정교분리가 천명된 미국에서 교실마다 십계명을 걸어 두라는 랜드리 주지사의 조치는 학교 교육에서  종교적 권위를 강화하고 기독교적 윤리를 주입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무종교인 학생들에게는 부당한 조치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시민자유동맹’(ACLU)이나 ‘종교재단으로부터의 자유’(FFRF) 같이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이 법안이 “위헌’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랜드리 주지사는 미국이 기독교적 가치 위에 건국되었으며 십계명은 학생들이 따를 만한 가치 있는 종교적이면서도 윤리적이기도 한 규율이므로 교실에 전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십계명이 모세로부터 주어진 모든 법들의 기원이라고 말했다.


3.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물론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 세력이 존재한다.

보수적 기독교와 이를 따르는 미국인들과 공화당이 모두 힘을 합쳐서 미국의 사회문화적 보수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부 시절 보수성이 강화된 사법부마저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여름 낙태에 관한 합법 판결을 뒤집으면서 낙태 전쟁에 불을 지폈다. 이로 인해 2023년 가을부터 텍사스를 비롯해 공화당이 강세인 주들에서는 잇따라 낙태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탄력을 얻고 있다. 오클라호마주는 특이하게도 주내 교외 및 지방에 있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교육을 시행하는 한 가톨릭 미션스쿨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려고 했다. 그 학교 커리큘럼에는 물론 종교 교육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자 오클라호마주 대법원은 이를 막아서는 결정을 내렸다. 오클라호마주에서 불거진 이 상황은  가상의 종교 차터스쿨, 한국식으로 말하면 ‘온라인 미션 스쿨’에게 주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려는 계획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대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오클라호마주는 여전히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라, 이 문제는 연방대법원으로 논쟁이 확대될 전망이다.


4.


요즘은 좀 잦아들었지만,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논쟁도 활발했었다. 창조론이란 구약성경에 나타난 우주와 인간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신화적 문구들과 해석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우주와 자연과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는 말이다. 이를 문자 그대로 믿으려 하는 기독교인들은 그야말로 근대 계몽시대에 자신들의 선조들이 발전시킨 자연과학에 기초한 진화론을 부정하기 위해 창조론을 ‘창조과학’이라고 포장하고 진화론과 열띤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교황청은 개신교와 달리 부분적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그럼으로써 창조론 대 진화론 전쟁에서 가톨릭은 한 발 물러나 있을 수 있었다. 사실상 창조론 논쟁을 전투적 개신교에게 넘긴 것이다. 나름대로 과학적 해석으로 무장한 창조과학론자들은 진화론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를 꼬집으면서 창조론이 우주와 인류의 기원과 발전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창조과학론을 미국 학교에서 가르칠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이성과 과학을 중시하는 전통을 가진 교육자들에게 창조과학론자들의 주장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완고하고 전투적인 기독교인들은 창조과학론을 버리지 않았으므로 학교에서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나아가,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매우 강력하게 진화론을 부정하고 교인들에게 창조과학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종교와 국가, 또 종교와 공립교육의 분리 문제는 이렇듯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미국에서 여전히 중대한 사회문화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런 것은 언론에서 흔히 ‘문화전쟁’이라고 표현된다.


5.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세속적으로 제도화하거나 법제화하려는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기꺼이 현대적 십자군이 되려고 하는 모습이다. 이스라엘이 미국과 서방의 강력한 지원으로 광적으로 호전적인 것도 이러한 경향의 한 가지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때때로 같은 기독교 진영 안에서도 온건적 기독교인들과 극복하기 어려운 차이를 확인하지만 서로 적이 될 수는 없으므로, 이단과 정통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타협을 거듭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와 교육 분야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신성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 전선은 울퉁불퉁해서 낙태 문제처럼 대중적 이슈화에 성공하고 나아가 법적 승리를 쟁취하기도 한다.그들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전통에 기반한 미국인들에게 마음의 빚을 잊지 않도록 감수성 깊은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투적인 기독교인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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