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별마당에서

2025년 한국 여행 이야기 2 (부제: 필사, 시, 그리고 단편소설)

by memory 최호인

1.


한국에 오면 코엑스 별마당을 자주 간다.

숙소에서 멀지 않고 높고 넓은 공간이 시원하고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들은 대체로 별마당에 들어서면서 놀라고 입을 벌리고 신기해한다. 나도 처음에 그랬지만. 그들은 금세 손에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어댄다.


나는 가끔 그들의 사진각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몸을 피하거나 얼굴을 돌리거나 가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진 찍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역시 좋은 곳에 가면 사진을 찍으려고 하고, 그럴 때마다 사진각에 사람들의 얼굴이 잡히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지만, 때로는 불가피하게 그냥 찍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특히 외국인이라면 더욱 그렇게 한다.


별마당은 사실 독서실이 아니기 때문에 테이블과 의자를 많이 둘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에 약간의 의자와 테이블까지 배치한 것은 그곳을 방문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큰 편의를 제공한다.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뽑아 들고 엉덩이를 거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잠시라면 그냥 서서 읽겠지만 이미 이 별마당에 숙달된 나는 대체로 꽤 시간을 들여 독서할 자리를 찾는다.


밝은 조명이 비치는 자리를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바닥에 앉는다. 물론 그 바닥이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있는 바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별마당 한쪽에 세 단으로 된 무대처럼 생긴 공간이 있다. 다리가 아프고 피곤한 사람들은 그 계단에라도 와서 앉는다. 나도 그렇다. 그 계단에 앉기도 하고 아예 두 계단을 올라가서 무대처럼 생긴 바닥에서 책꽂이에 기대어 앉기도 한다.


어제 오후에 코엑스에 간 목적은 두 가지였다. 원래 그곳에서 나흘간 ‘세계차박람회’가 열렸는데, 어제가 마지막 날이었다. 사전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서 나 역시 그렇게 했는데, 아침 내내 숙소 안에서 꾸물거리다가 늦은 브런치를 먹고 가느라고 코엑스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오후 두 시가 되고 있었다. 잠시 고민 끝에 나는 박람회에 가지 않고 별마당으로 들어갔다.


그저께 차박람회에 참석했던 사람이 쓴 리뷰를 읽었는데, 평가와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는 한 마디로 ‘별로’라고 적었다. 차 박람회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차 박람회라기보다 ‘녹차’ 박람회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는 것. 그 블로그에는 많은 사진이 포함되었는데, 차, 그러면 으레 상상이 되는 다기들이 다채롭게 보였다.


그런데 나는 차를 그리 즐기지 않는 데다 다기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 전시회에 간다면 박물관에 가서 볼 수 있는 가구나 공예품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 내가 다기를 눈여겨볼까 의심스러워졌다. 찻잔과 받침 접시, 다기를 놓는 상, 그런 것을 가능하면 아름답게 배치하여 놓는 미적 감각 등 머릿속에 여러 장면이 흘러 다녔다.


그래도 전시장에 가서 운이 좋으면 말차를 공짜로 얻어 마실 기회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말차 한 잔 사 먹으려고 해도 카페에서는 7천 원이 보통이다. 그런데 전시장 입장료가 오천 원이라고 하니 말차 한 잔만 마셔도 본전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얄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전시장에 들어가면 설마 아무 차도 안 마시고 나올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뭔가를 마시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차를 많이 마시면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면, 그건 공염불이고, 실제로는 여러 차를 그저 구경만 하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아무튼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 별마당으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시 해설집을 발견했다. 요즘 눈에 띄는 신간 코너에서. 나민애라는 서울대 교수가 애착하는 시 72편을 엄선해서 자기 해설을 간단히 덧붙여 엮은 책이다. (이런 식으로 만든다면 책 쓰기 참 쉬울 것 같은데......)


제목은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제목부터 꽤 여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표지에는 ‘인생 시 필사노트’ ‘서울대 1위 글쓰기 수업 교수의 신간’ 등이 적혀 있어서 상품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필사.

‘베끼어 쓰라’는 말이다. 요즘 유명 작품을 필사하는 것이 꽤 유행인 듯하다.


필사를 하면 뭐가 좋을까.


작가 조정래도 자신의 자녀에게 원고지 1만 매에 이른다는 작품 [태백산맥]을 필사하라고 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필사하면 문장력이나 어휘력 등이 증진되고 정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글을 배울 때 먼저 필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숙제로 교과서를 필사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글을 배울 때는 먼저 필사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이 든 지금, 문학을 시작하는 사람,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필사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글쓰기에 별다른 배경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읽기도 중요하지만 쓰기도 중요한데, 자신이 바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손글씨를 쓰는 것을 힘들어해서 필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신문 기사를 쓰면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필사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 필사는 매우 힘든 일이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필사에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지금도 좋은 작품과 문장을 볼 때마다 재독삼독까지 하면서 문장 수업을 스스로 하지만 필사는 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로지 나만의 상황이고 글쓰기 수업이니, 결코 남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글쓰기 수업에 단 하나의 정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여간, 알고 보니 나민애는 시인 나태주의 딸이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싣게 됐다는 설명과 함께, 그녀가 뽑은 72수의 시에는 나태주의 시까지 실렸다. 참, 부녀스럽다. 책에 실린 시가 72수니까 후딱 읽고 전시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별마당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밝은 조명 아래 의자를 찾아서.


시집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배 부르게 밥을 먹고 온 후라 그런지 몹시 졸렸다. 가끔 눈을 감고 졸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의외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를 두세 번씩 읽고 해설을 보고 다시 시를 읽었다. 나름대로 시를 쓰기 위한 학습을 위해 제법 정성을 들여서 읽은 셈이다. 나민애의 해설은 대체로 시에 관한 그녀의 감성을 매우 짧게 적은 것이고 그저 그래서 흥미롭지는 않았다. 시는 작가의 응축된 산물이고 독자의 해석은 자기 마음대로이니까.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식곤증으로 인해 계속 졸렸다.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나니 거의 두 시간이나 흘렀다. 전시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인터넷으로 차 박람회를 다시 조사해 보니까 오후 세 시에 종료행사가 있었다. 나는 행사가 저녁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안타깝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됐네’, 하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던 바가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나민애 교수가 뽑은 시 중 나에게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시인 이산하의 <나에게 묻는다>로 기억된다. 내용이 마음에 깊이 남아서 그 전문을 아래에 인용한다.


<나에게 묻는다>

이산하


꽃이 대충 피더냐.

이 세상에 대충 피는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소리 내며 피더냐.

이 세상에 시끄러운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어떻게 생겼더냐.

이 세상에 똑같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모두 아름답더냐.

이 세상에 아프지 않은 꽃은 하나도 없다.

꽃이 언제 피고 지더냐.

이 세상의 꽃들은 모두

언제나 최초로 피고 최후로 진다.



3.


잠시 운동도 할 겸 한 바퀴 돌면서 다른 책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또 발견한 것이 이번에는 김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전에 이 책을 읽었던가. 가물가물하다. 하여간 나는 또 다행히 의자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쳤다.

첫 번째 단편소설은 <명태와 고래>.


첫 몇 쪽이 지나는 동안 어촌을 묘사하는 김훈 특유의 담백한 문장들이 대사 한 줄도 없이 나온다. 묘사만 나와서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여행기인가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이윽고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북에 속했던 작은 어촌 마을에 살던 사람이 전쟁이 벌어진 후 피난민을 잔뜩 태운 채 자신의 배를 타고 40킬로미터 내려온 곳이 휴전선 남쪽.


그는 새 항구 마을이 자신의 제2의 고향이려니 하면서 살았다. 자신의 배를 운용하는 것은 생계를 위해 큰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폭풍과 거친 파도에 휩쓸려 그의 배는 북으로 흘러갔다. 거기서 북한군에 의해 끌려가 그는 치밀하게 조사를 받은 후에 다시 남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남쪽 정보 당국에서 그를 끌고 가서 북에서 무엇을 했는지 세밀하게 조사.


그래도 결국 다행스럽게 이상 없다고 판단되어 그는 풀려나서 다시 평온한 어부가 되었다. 그 일이 그렇게 넘어가나 했는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이번에는 남파 간첩이 잡혀서 큰일이 터졌다. 하필 그가 북으로 잡혀 갔을 때 그려준 마을 지도를 간첩이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어촌이라고 해야 다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그가 직접 그려준 지도라 하니… 그로 인해 그는 어느새 남파되었던 고정간첩으로 몰렸다. 그 바람에 별다른 반항도 못한 채 그는 교도소에서 13년여 기간을 보낸다. 그리고 겨우 풀려나서 고향 같지 않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이 정도만 해도 여러분은 이 소설의 심각한 시대적 상황과 그 시류에 휩쓸린 불행한 개인의 운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읽어 보기 바란다. 이 소설을 읽으면 곧바로 최인훈의 <광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주인공의 모습. 김훈은 이를 연상시키는 내용을 아주 건조하고 간결하고 투박한 문체로 [광장]에 비해 훨씬 짧은 소설에 담았다.


이어서 읽은 것은 책 마지막에 실린 <저만치 혼자서>.


이 단편소설은 천주교인인 작가가 애써 조사하여 적은 작품이다. 충남 바닷가에 지어진 호스피스 수도원. 그곳은 죽어가는 수녀들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삶을 보내는 곳이다. 작품은 최대한 감정을 빼고 그곳에 들어온 수녀들의 생활을 담고 있다. 교구 신부와 주교가 수도원을 보살피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의 인생의 말미를 이렇게 담담하고 적나라하게 담아낸 글을 읽으려면 꽤 인내가 필요하다. 감정이 동요되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 인내 말이다. 김훈은 독자에게 아무 감정 동요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책 마지막 덧붙임 글에서 이 소설을 쓸 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쓰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그 작가 특유의 작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소설을 다 읽었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무자비하게 치밀어 오르는 인간적 슬픔을 나는 어쩔 수 없이 느꼈다. 여러분은 이 작품도 부디 읽어 보기 바란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늘은 이 정도면 꽤 많이 읽었군.

빨리 가서 밥이나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