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단단 Jul 02. 2023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오사무 요코나미 Osamu Yokonami


1000 Children (출처: shashasha.co)



여기 아이들 천 명의 초상이 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제철의 탐스런 과실을 왼쪽 어깨 위에 올리고, 순백의 벽 앞에서 차렷 자세를 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사진가는 이 아이들에게 무표정을 주문했지만 막상 아이들은 '표정이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듯 하다. 때문에 하나같이 미소와 울상으로 가기 직전의 미묘한 얼굴이다. 아마 멀리서 이 사진들을 본다면 누가 누구인지 쉽게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가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전부 끼어들어 아이들을 비슷해 보이도록 연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단풍이 저마다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한 장 한 장 가까이 다가서서 마주한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감추지 못할 자신만의 모양을 띠고 있다.       



1000 Children (부분) (출처: juxtapoz.com)



일본의 사진작가 오사무 요코나미 Osamu Yokonami. 산과 바다로 둘러쌓인 교토 북부에서 태어난 그는 조화와 개성이라는 양극의 개념을 탁월한 감각으로 한 작품 안에 담아낸다. 촬영을 위해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겉모습에 혹해 품었던 막연한 사진가의 꿈은 아버지가 사주신 카메라 덕분에 절반은 실현되었고, 이후 사진 학교를 졸업한 뒤 어시스던트 생활을 거쳐 27살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1000명의 아이들, 1000 Children>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무려 6년이란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100명은 너무 쉬운 것 같아 이에 제곱인 1000명으로 정했다는 그의 패기는 결국 세계가 주목하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다른 건 오직 헤어스타일 뿐. 게다가 모델이 된 아이들의 나이는 세 살에서 다섯 살 남짓. 아직 2차 성징도 찾아오지 않은 어린 나이이기에 신체의 사소한 차이 마저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이 특별한 아이디어를 태국에서 진행되었던 한 촬영에서 떠올렸다. 현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아동전문잡지 작업이었는데, 처음엔 '신선한 과일들을 이용해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다면?'이라는 단순한 착상이었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그는 아무런 외적 장치 없이도 아이들 각자가 가진 선명한 색깔을 목격했고, 나아가 이 놀라운 개성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고민했다. 같은 포즈, 같은 옷, 같은 환경이라는 치밀한 설정을 계획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간섭 속에서도 한 개인이 가진 고유의 아우라는 결코 지울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는 작품이 시작되기 전부터 확신 했었다.



Kid A (출처: metalmagazine.eu)




이후 모국으로 돌아온 오사무는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 조건에 맞는 일본의 아이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대로 100명은 쉬웠지만, 1000명은 어려웠다. 그 중엔 아무 연결고리도 없었으나 서로 닮아보이는 소녀들도 있었다. 작가는 일부러 그들을 같은 페이지에 넣어 두었다. 어깨에 올려둔 과일은 소녀들의 첫인상과 어울리는 직관적 선택이었다. 낯선 현장 안에서 잔뜩 긴장한 아이들의 얼굴은 잘 익은 열매를 쥐어주자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맛있는 걸 떠올리는 그런 표정. 모두 같은 감정이었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얼굴은 전부 달랐다. 아이들을 관찰하는 건 오사무 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렌즈를 응시하는 순수한 두 눈이 오히려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고 고백한다.



사진가 오사무 요코나미 (출처: profoto.com)




오사무의 흥미로운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1000명의 아이들>의 작업을 병행하며 또 다른 연작인 <어셈블리, Assembly>를 기획하게 되는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비슷한 연출로 접근하여 전혀 다른 주제를 포착해냈다는 것이다. 전자가 결코 지워낼 수 없는 개인의 자아에 집중했다면 <어셈블리> 연작은 집단 속에 숨어든 ‘익명성’에 대해 다룬다. 같은 옷과 같은 포즈를 한 여고생들을 소규모 그룹으로 묶어 촬영을 진행했는데, 이번엔 카메라를 절대 응시하지 못하도록 했다. 뒤돌아 서거나, 아주 멀리서 찍어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든 것이다. 



Assembly (출처: ignant.com)



그는 이 작품으로 필연적으로 사회적 시스템에 진입하게 되는 성장기의 인간을 그려낸다. 집합성과 익명성은 젊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여고생들이야 말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매우 좋은 모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선택은 적중했다. 미숙함과 나약함을 보완해 주는 집단의 힘은 그들에겐 긍정의 에너지이자, 서로에게 보내는 응원이었다. 또한 흰색 배경 대신 대자연의 풍경을 배치하여 통제불능한 위력에 맞서는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그 안에서 인물들은 자연과 어우러지기도, 대비되기도 하며 다중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Assembly (출처: ignant.com)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사무는 이 한 문장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대변한다. 장황한 그의 작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순하고 뻔한 문장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편한 친구를 대하듯 그의 작품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한정되어 있고, 집단은 개인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한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있음을 존중하는 것. 이 공생의 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삶의 기본이 아닐까?       



필자: 주단단


   







작가의 이전글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