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습관 결정을 내려라.
결정은 '떠난다'는 뜻이다. 결정은 곧 '결단'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떠나는 결단의 형태를 취한다. 인생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어김없이 '변화에 성공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담겨 있다.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평범한 과거를 싹 지웠기 때문이다. 평범함 속에 파묻혀 있던 새로운 기회의 입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에 필요한 것은 이별하는 용기이다(page. 14-15 중 발췌).
인생은 머무름과 떠남의 연속이다. 사실 머무름과 떠남은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함축한다. 지금은 떠남의 시간인지 머무름의 시간인지, 떠난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떠나야 하는지, 머무른다면 언제까지 머물러야 할지. 몇 가지 쓰지 않았지만 머무름과 떠남은 상징성이 커서 내포하는 의미는 방대하고, 이 때문에 직면하며 해치고 나가야 할 인생 문제는 산재한다.
위너로 살기 위한 첫 번째 습관이 체화되기 위해서는 이 '떠남'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떠남과 머무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는 이야기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살고 있는 땅, 부모와 친지들이 있는 친숙한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더욱이 그 땅에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신다.
평범한 일상 속에 만족하고 있을 때, 때로는 나른하지만 내 삶의 쳇바퀴가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 '떠나라'는 명령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새로운 여정을 떠날 수 있을까?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서 뜨끈하게 배를 대고 편안함을 즐길 때, 심부름을 다녀오라는 엄마의 명령에 신나서 이불 밖으로 나오는 어린아이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는 보상으로 올 때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와도 좋다는 말씀을 뒤통수로 흘려주시는 그림이 그려진다. 아마도 누구든 비슷하게 상상해 볼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모습일 것이다.
또 하나의 상상을 해보자.
만약 내가 하루의 일상을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고, 나는 별 걱정 없이 내 삶이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에 자족하는 것도 지혜일 텐데, 어느 날 불현듯 한 생각이 스친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면 어떨까?'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산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책에서 만난 어느 주인공처럼 나도 현재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산다면 내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지금처럼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 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 스친 생각 뒤에 당신은 이전처럼 만족하면서 '괜찮아~'라고 자신을 쓰담쓰담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마음을 품는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다이어리에 적어 둔 것들 10년 지난 후 꺼내 보며 잊고 산 줄 알았는데 시간 차가 있었지만 대부분 이루어져 있었다. 써두면 가장 확실하겠지만 뇌리에 스쳤던 생각들 중에도 이미 이루어졌거나 오랜 시간 잊은 듯 지났어도 다시금 떠올라서 이제는 내 삶의 중요한 버킷리스트가 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을 품는 일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나답지 않은 나의 생각이 들면 소중하게 다루려고 한다. 인간을 통제하는 뇌는 그렇게 선하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익숙한 것을 지속하기를 원하고 새로운 시도를 고통으로 감지하여 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간은 안주하고 머무르며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니 나답지 않은 생각, '어떤 댓가', 주로는 일정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의지는 나답지 않은 것으로 일단 분류하고 본다. 크리스천인 나는 이럴 때 다시금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 마음이 나에게 익숙한 '내 뜻'이 아니라면 혹시 아브람에게 나타났던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요즘의 나는 40대에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위치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책임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그냥 얻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쉽지 않았다.
20대의 격변기도 지났고
30대의 몰입과 돌파로 눈물을 흘렸던 시간을 기꺼이 감내했고
40대에 비로소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도 돌아보니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 노력도 중요했고 운도 좋았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사회적 지위나 물질만으로는 가슴 깊이까지 삶의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돈도 사회적 지위도 일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 일시적이고 위험천만한 것들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가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 삶에 중요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자유', '선택' 이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굳이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여 매진한 것도 자유도가 높은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결정한 것은 '아님 말 GO' 하며 살아왔다. 이런 배짱으로 살다보니 책임질 일이 많았고 사는 게 수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침 없이 "Go!"를 외치며 인생의 오르막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언제든, 어디든 머물러야 할 때는 떠나고 싶어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마침내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인내가 필요하고, 떠나야 할 때는 현재의 온기가 아무리 좋아도 문을 열고 나가 차가운 땅에 발길을 옮기는 도전이 필요하다. 차갑기만 하면 다행이고, 낭떠러지를 만날지, 들짐승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길지, 칠흑 같은 어둠의 숲을 지나야 할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을지라도. 그래도 한 걸음을 옮겨 내디뎌 보는 것이다.
길이란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겨져 있다지만 오랜 전 누군가가 밟았던 길은 교훈만 남겨두고 의지하며 요령을 피울 흔적을 기대하진 어렵다. 그래서 내 삶에서 중요한 자유와 선택은 익숙하고 평범한 것에서 탈출하면서 가슴에 더 웅장하게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인생이 꽃길이기만 하면 나는 재미없을 것 같다. 오히려 고통은 기쁨을 증폭시키는 마법이다.
어딘가 가장 만족할 만한 어떤 조건을 축적하거나 달성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파랑새를 찾아 밤새 꿈속을 헤매는 일일 뿐이다. 오히려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언제든 자유롭게 선택하며 떠날 수 있는 용기, 모두 버리고 철저히 이별할 수 있는 용기를 챙기며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