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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kiN Dec 07. 2024

패션 독서

책을 읽는 척합니다.

 2021년, 연말모임 약속장소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날씨도 춥고 어딘가 들어가서 기다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시린 바람을 피할 곳이 마땅찮았다. 그러던 중 길 건너편에 알라딘 서점을 발견하고 책의 온기나 느끼고 싶어 들어갔다.


 책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인가. 아마도 군대에서 읽었던 해리포터,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마지막으로 생각된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대던 와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멀리하는 나조차 이 책은 들어봤다. 제일 깨끗한 책으로 골라 의자에 앉아 열 페이지 정도 읽었을까. 약속시간이 다 되었다. 읽던 책은 책꽂이에 넣어두고 제일 낡고 저렴한 책을 계산하고 나왔다.


 그렇게 즐거운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여 가방을 정리하던 중 엉겁결에 산 책 한 권이 눈에 보인다. 내가 이걸 왜 샀는지 모르겠다. 침대 협탁에 던져두고 마저 씻으러 갔다.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워서 휴대폰을 보며 잘 준비를 하는데 옆에서 누가 계속 눈치를 주는 것 같다. 흘긋 곁눈질을 하니 던져놓았던 책이 보인다.


 10년 만일까, 팔을 뻗어 책을 집었다. 그렇게 홀린 듯이 책장을 넘겼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금방 잠이 몰려온다. 읽은 부분에 표시를 하고 잠을 청한다. 그날은 모임으로 피곤했기 때문일까. 웬일로 뒤척이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다. 그다음 날, 자려고 누우니 다시 또 협탁에 책이 보인다. 하려던 핸드폰을 던져놓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요한 가운데 사락사락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그렇게 그날도 책을 덮고 뒤척이지 않고 바로 잠에 들었다.


 새해가 밝고 드디어 개미 1편을 독파했다. 후반부에는 책이 언제 끝나는지 뒤 페이지를 계속 뒤적거린다. 끝나는 게 아쉬운 까닭은 아니다. 한 권을 끝내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1편이 마무리되고 주말에 다시 알라딘 서점에 갔다. 개미 2편부터 5편까지 모두 샀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으나 1권이 마무리되는 기분이 썩 좋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스탠드 조명도 하나 주문했다.


 고요한 밤에 잠에 들기 전 책을 읽는 루틴이 생겼다. 뒤척이는 시간은 짧아졌고 보다 가뿐한 다음 날을 보낼 수 있었다.  2편부터 5편까지 읽는 시간은 1편을 읽는 시간보다 곱절은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알라딘 서점에 가서 다음 읽을 책을 찾아봤다.


 이번엔 조금 멋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 것 같았고 완독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랩실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선배 중 책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가 꽤 오랜 시간 들고 다니던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의 이름은 '총균쇠'였다. 그 책을 들고 다니던 선배가 멋있게 보였었다.


 너무 무모한 선택이었을까. 이해가 안 가는 부분, 별도로 찾아봐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끝까지 읽는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읽은 책은 다시 알라딘 서점에 재판매를 하지만 총균쇠는 아직 내 초라한 책장에 아직 남아있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읽어야 할 책이다.


 총균쇠를 읽고 나서는 한동안 교양서적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추리, 판타지 위주의 소설들만 찾았다. 장르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책이 좋아서 읽는 것인가?"

 "책을 읽을 때 나는 행복한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조금 오래 걸렸다. 최근에야 찾을 있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같지는 않다. 특별히 선호하는 책도, 작가도 없다. 그렇다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 요청한다면 역시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면 나는 책을 읽는 것인가?


 내 나름대로의 결론은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차분한 느낌이 좋았고 적막이 좋다. 책을 덮고 일어설 때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뿌듯함,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성취감, 읽은 책이 쌓여갈 때의 웅장함.


 나는 게으르다. 끼니건 청소건 여행이건 무계획으로 대충 하지만 책을 읽을 때만큼은 조명도 키고 음악도 키고 의자에 앉아 공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어느 날은 모닥불 소리, 또 어느 날은 잔잔한 재즈 등의 음악을 틀고 책을 넘기고 있자면 어느 순간 행복감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 이른 아침에 동네 카페에 오픈런하여 소금빵과 커피를 먹으면서 두 시간 정도 책을 읽고 나오면 그날은 더 이상 무언가를 안 해도 되는 그런 날이 된다. 오후에 빈둥빈둥 소파에 누워 드라마를 정주행 하더라도 나는 이미 책을 탐독하고 온 사람이니까.


 그렇게 침대 머리맡에서 시작한 책 읽기는 생각보다 꽤 오래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전문학을 열심히 읽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고전문학이 유행이거든. 아마도 내년이 되면 개미를 시작으로 100권의 독서를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저 수박 겉만 핥아대는 패션 독서가임에는 틀림이 없고 반박할 여지도 없다.

 하지만 오늘도 책장을 넘기면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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