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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이로스엘 Mar 31. 2022

아들은 열공 중, 엄마는 춘곤증?

바쁜 아들, 게으른 혹은 피곤한 엄마

  4월 28일부터 아들의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이제껏 제대로 성적이 나오는 시험을 안 보다가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진짜' 시험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자유학기제라고 해서 시험이 없었다. 시험도 안 보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다가 갑자기 각 잡고 시험이라는 걸 본다고 하니 아이들도 부담스러울 것 같다.


  아들은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시험이 아직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제법 빨리 시험 모드에 들어간 듯하다. 영어는 학원에서 시험 준비를 도와주지만 기타 과목은 자기가 알아서 공부 계획도 짜고 필요한 문제집들도 구입했다. 정말 나와 남편은 하나도 여를 안 하고 있다. 이렇게 여를 안 해도 되는 것인지 다소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들에게 맡겨 보기로 했다.


  사실상 여(아들에게는 '잔소리'가 되겠지만)를 좀 해 보고 싶어도 요즘 중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이나 시험 방식 등이 내가 공부했던 때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아는 척하며 끼어들기도 애매하다.  




  지난 주말에 아들은 우리 집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큰 칠판을 거실로 가져다 놓고 화학 원소 기호들을 정리해가며 외웠다.



  나름 나도 열심히 외웠던 것들인데 몇 개밖에는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메테인, 플루오린화 이온...? 이런 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제는 여러 면에서 아들의 지식이 나의 지식을 뛰어넘은 것 같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은 이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되어 버렸다.  




  가끔 꾸는 악몽 중에 정말 몸서리치도록 싫은 것이 고등학교 때의 시험 시간으로 돌아간 꿈이다. 당연히 이러한 경우 시험 과목은 90% 이상이 수학으로 나오고 꿈 속에서의 나는 고등학생 때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고등학교 수학 같은 건 별나라 이야기가 되어버린 나)로 나온다.


  이것이 바로 그 꿈이 악몽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수학 문제지를 받아 들었는데 지금의 나로서는 하나도 풀 수가 없고,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고... 정말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깨서 꿈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안도감이란!


  그런데 우리 아들은 이제 시험이 시작이다. 중학교 2학년. 슬슬 입시 전쟁의 지옥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은근히 시험을 기다린다. 자기가 어느 정도로 성적이 나올지 궁금한 모양이다. 시험을 잘 보면 엄마, 아빠한테 무언가 보상을 받을 궁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요즘 사고 싶은 레고가 있다고 자꾸 말하는 게 왠지... 의심스럽다.




  아들은 이렇게 시험 준비를 시작하며 바쁘게 지내는데 나는 요즘 너무 게을러진 것 같다. 봄이라서 춘곤증이 생긴 것인지 예전보다 잠도 늘고(누가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다고 했는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아니 자주 찾아온다.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점심을 먹고 조금 뒤에 깜박 잠이 든다. 하지만 마냥 잘 수는 없다. 주부로서의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저녁을 거의 안 먹지만 아들과 남편은 먹여야(?) 하니 바쁘다. 아들과 남편이 같은 시간에 저녁을 먹으면 일이 훨씬 수월하련만 아들은 학원 때문에 일찍 먹어야 하고, 남편은 퇴근 후에 늦게 먹는다. 그것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아들과는 다른 메뉴를 준비해야 한다. 남편의 저녁 메뉴는 두부, 각종 야채 등으로 그다지 힘든 것은 없는데 요즘은 야채를 씻고 썰기도 상당히 귀찮다.  

  



  중학생이 되어 첫 중간시험을 본다고 열공 중인 아들을 보면 잠이 온다고 잠만 잘 수는 없다. 그러고 보면 아들에게는 글을 쓰게 하고 그 곁에서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그것도 어둠 속에서!) 떡을 썰었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사실 나도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다. 잠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온 생명체들이 푸릇푸릇한 기지개를 켜고 잠에서 깨어나는 이 계절에 하품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품'이라는 단어를 쓰니 진짜 또 하품이 나온다. 잠과 게으름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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