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 리뷰
<안나라 수마나라>라는 원작 웹툰을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드라마를 보게 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안나라 수마나라>가 판타지 뮤직 드라마라는 점이었다. 뮤지컬 영화나 뮤직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지만, 장르 특성상 성공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특히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였다. 그랬기에 <안나라 수마나라>가 뮤직 드라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고, 기대만큼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완성도 있고 좋은 작품이었다.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한 작품이었음에도 충분히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1. 쉽지 않았을 도전, 뮤직 드라마의 가능성
뮤직 드라마, 어쩌면 대중들에게 아직 생소한 장르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나 음악이 사용된 영화, 드라마를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이너한 장르에 속한다. 제대로 개척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대중은 알라딘 실사 영화나 라라랜드 등의 뮤지컬/음악 영화에는 열광하면서도 국내 작품에 대해서는 평가가 박한 면이 있다. 오글거리고 유치하게 느껴진다는 게 그 이유다.
<안나라 수마나라>가 뮤직 드라마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르의 팬으로서 반갑고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그 뒤에 이어진 건 걱정이었다. 웰메이드 드라마이길 바라는 기대감이 혹시나 실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기도 했다. 실제로 <안나라 수마나라>는 공개 전부터 흥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을 감당해야 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은 대부분 스케일이 크고 소재가 무거운 장르물에 속했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결의 작품인 이 드라마의 흥행 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안나라 수마나라>가 뮤직 드라마로서 꽤 좋은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다 본 뒤에 이 작품이 뮤직 드라마가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뮤직 드라마만이 담아낼 수 있는 신비로움과 동화 같은 느낌, 현실 속에 판타지 요소들이 섞여 있는 드라마의 연출과 조화롭게 섞여들었다.
넘버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부터 '회전목마', '아스팔트의 저주' 등 각 회차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넘버들이 정말 좋았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건 커튼콜이 있었다는 거다. 커튼콜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면 퇴장한 배우들이 다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연극이나 뮤지컬 등 무대 작품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드라마의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난 후 마치 하나의 뮤지컬이 끝난 것처럼 모든 배우들이 나와 함께 노래를 한다.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던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이야기 속 함께 울고 웃었던, 때로는 싸우고 서로를 미워했던 모든 인물들이 함께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드라마의 마지막에서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2. 현실 속의 동화, 몽환적인 판타지
작품 속에서 아이가 만나게 되는 '리을'이라는 인물은 스스로를 진짜 마술사라고 칭하고, 실제로 아이에게 진짜 마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트릭을 알 수 없는 마술이란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만으로 충분히 버거운 아이는 리을의 마술을 유치하고 터무니 없는 것이라 여기지만,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현실 속에서 자꾸만 자신을 웃게 하는 마술에 마음을 열게 된다.
작품 속에 가미된 뮤지컬적인 요소들은 판타지 드라마를 한층 더 신비롭고 동화적으로 만든다. 넘버가 진행되는 동안의 자연스러운 배경 전환들과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장면들이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리을이 아이를 위해 본인의 집인 문 닫은 유원지를 놀이공원으로 만들어주는 장면은 아이 뿐만 아니라 시청자 모두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아스팔트의 저주' 넘버가 흘러나오는 장면의 연출은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였다. 끝없이 늘어진 아스팔트 위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일등의 앞에 깔린 아스팔트길이 탄탄대로 같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진 길대로만 걸어야 하는, 다른 곳으로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저주와 같다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드라마 속에서 아이와 일등이 처해 있는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에 비해 스스로를 마술사라 칭하는 리을과 그의 마술,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지극히 동화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과 동화가 공존하는 드라마다. 그렇기에 현실 속에 녹아드는 동화는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우리의 앞에도 우리에게 마법 같은 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리을이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다.
3. 자신의 꿈을 가질 수 없었던 이들에게
"그 꿈이라는 거 말이에요. 그냥 좀 없으면 안 되나? 꼭 뭐가 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아요?"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 中
<안나라 수마나라>는 계속해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윤아이'는 집에 오지 못하는 아빠와 챙겨야 하는 동생, 직접 생활비를 벌어야만 하는 고된 현실을 버텨내기 바빠 꿈을 꾸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보다 열심히 풀면 답이 나오는 수학 문제를 더 좋아하는 아이에게 꿈은 뜬구름 잡는 소리와도 같다.
아이의 반 친구이자 공부를 잘하는 '나일등'의 상황은 좀 다르다. 그는 좋은 대학에 가 판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을 하고, 또 그만큼의 성적을 내는 우등생이다. 그러나 일등이의 꿈과 목표는 그가 스스로 꾸는 것이 아니다. 일등의 부모님의 꿈이자, 강요된 꿈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자신의 꿈을 꾸지 못하는 소녀와 소년은 마술사 리을을 만나며 점차 변화해간다. 아이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잊지 않는 법을, 일등은 자신만의 꿈을 찾아나가는 법을 배운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꿈에 있어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렇다할 꿈이 없는 이들에게는 꿈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을, 스스로 꿈을 꿀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이들에게는 꿈을 꾸어도 괜찮다는 말을 전한다.
4. 너무 일찍 어른이 된 모든 어른에게 전하는 힐링 드라마
"언제부터 이 세상은 꿈도 규격에 맞추어 꿔야 하는 곳이 되었을까요? 인정받는 어른이 되려면 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요? 나는 그냥 나다워야 하는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과의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쓸까요?"
드라마 <안나라 수마나라> 中
어른의 나이지만 여전히 아이와 같은 동심을 품고 살아가는 리을은 아이의 이름이 '아이'인 것이 부럽다는 말을 한다. 어른이 되어도 평생 아이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정작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 속에서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리을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에게, 더 큰 어른이 되려는 아이에게 조금은 아이답게 굴어도 된다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토닥거리는 마음을 전한다. 반면, 아이의 주변에 있는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우리는 어떤 어른인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직은 조금 더 아이여도 괜찮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과, 때로 어른이라는 위치가 버겁게 느껴지는 어른들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안나라 수마나라>는 뮤직 드라마라는 장르적인 도전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작품이 가지고 있는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까지 훌륭하게 전달해냈다. 최근의 넷플릭스 시리즈 작품들과는 다른 경향을 가진 드라마를 보게 되어 반가웠다. 이 드라마를 본 이들이 아이처럼, 일등처럼, 혹은 리을처럼 자신만의 꿈과 행복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때로 지치는 하루들 속에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지만 여전히 스스로가 아이처럼 느껴지는 어른들에게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판타지 뮤직 드라마'라는 이 드라마의 장르에 특별한 불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쯤 틀어봐도 좋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 마술을 믿습니까?
안나라, 수마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