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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은 May 22. 2022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영화 <우리들> 리뷰






    피구를 하기 위해 두 친구가 가위바위보를 해 원하는 팀원을 고르고 있는 도중 마지막까지 선택을 받지 못한 선이 짓고 있는 어색한 웃음. 피구가 진행되는 도중 선이 금을 밟았다며 몰아가는 친구들, 선은 밟지 않았다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보지만 결국 다수의 목소리에 밀려 나가게 된다. 선 밖에 혼자 멀뚱히 서 있는 선의 모습으로 영화 <우리들>의 오프닝 시퀀스는 마무리된다.





    첫 장면부터 관객을 끌어당기는 느낌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 아이들이 함께 피구를 하는 장면에 익숙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팀을 선택하는 동안 어색하게 친구들을 사이에서 애써 웃는 선이의 모습, 어정쩡하게 공을 피하는 모습, 금을 밟았다며 몰아가는 친구들에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되는 모습 역시 대부분의 이들이 한 번쯤은 겪어본 상황 혹은 감정일 것이다.




    다양한 운동들 중 영화에서 '피구'를 장치로 사용한 것 역시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공을 던져 죽이고,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걸 피해야만 하는 피구는 아이들 내의 경쟁, 혹은 강약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선이가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의 초중반부터 선이와 지아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은 순수하고 예쁘다. 방학의 시작과 함께 전학 온 지아는 방과후에 청소를 하고 있던 선을 마주치고, 둘은 방학 내내 함께 즐거운 추억들을 만들며 서로의 비밀과 고민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같이 그네를 타고, 봉숭아 물을 들이고, 근처 계곡에 놀러가 물장난을 치고,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둘의 우정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엄마와 떨어져 지내고 있는 지아가 엄마와 화목하게 장난을 치는 선의 모습을 보고 심술을 부린 것부터였다.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서로 다른 가정 환경이나 경제 사정이 불편해지고, 지아가 학원에서 보라와 친구가 된 후 학교가 개학을 하자 지아는 선을 모른 척하기 시작한다.









우리끼리 노는데 왜 자꾸 끼어들려고 해

영화 <우리들> 中




    영화 속에서 보라가 선을 괴롭히는 가해자의 위치에 있다면, 지아는 이전 학교에서 피해자의 위치에 있었다가 전학 이후 가해자가 된 경우에 속한다. 선은 보라네 무리와의 관계에서 피해자이지만, 영화의 중후반부 보라에게 지아의 뒷담화를 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지아와 서로를 헐뜯으며 크게 싸우기도 한다. 쉽게 변하고 틀어지고 화해하는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영원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의 '우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아이들의 감정은 격해지고, 갈등 역시 심화된다. 끝내는 서로의 가정사나 약점들을 들추고 비난하며 서로를 할퀴고 상처 입힌다. 어리고 서툴기 때문에 날것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폭발시키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때로 더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속의 여러 시선들이 그렇고, 싸우고 따지는 과정에서 오가는 말들이 그렇다. 친구 관계 내에서 갑과 을이 생겨나고, 계속해서 친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연우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영화 <우리들> 中




    동생 윤이가 매일 친구 연우에게 맞고 오는 게 속상했던 선이 너도 다시 때렸어야지, 하며 타박하자 윤이가 내놓는 대답이다. 이 말을 들은 선이의 표정이 그랬듯, 나 역시 마치 뒷통수를 맞은 것마냥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영화 속에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다시 가해자가 되었다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인물들에게, 현대사회를 살면서 같은 편이 되어 서로를 적으로 돌리고 경쟁하기 바쁜 우리에게 이 대사는 윤가은 감독이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존재로 그려진다. 엄마와 선생님이 모두 하는 대사가 있다. "말을 해야 알지."  아이들이 표현하고 얘기하기 전까지 어른들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알 수 없었던 걸까, 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아이들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애들이 일 있을 게 뭐가 있어.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그럼 되는 거지.'라고 얘기하는 아빠의 대사는 아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어른들의 태도를 대표한다. 영화는 어른들을 한 번도 클로즈업해서 잡지 않는다. 어른들이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이들을 잡거나, 풀샷으로 잡으며 관객들이 계속해서 아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아이들의 세계 속에 함께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한지아 금 안 밟았어. 진짜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

영화 <우리들> 中




    엔딩 시퀀스에서는 오프닝 시퀀스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반 아이들이 함께 피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는 친구들이 지아가 금을 밟았다며 몰아간다. 지아가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던 중 선이 용기를 낸다. 지아가 금을 밟지 않았다고, 자신이 봤다고 얘기한다. 고작 한 명의 목소리지만 선의 말에 다른 친구들은 몰아가는 것을 멈춘다. 결국 지아는 곧 아웃되지만, 오프닝 시퀀스가 선이 혼자 서 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과 달리 엔딩 시퀀스는 지아와 선이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서 있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에서는 선의 손톱을 총 세 번 강조해서 보여주는데, 나는 이 손톱이 선과 지아의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바로 선과 지아가 함께 봉숭아물을 들였을 때다. 둘이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던 시절이다. 두 번째는 선과 지아의 관계가 변해버린 이후 선이 보라에게 받은 하늘색 매니큐어로 봉숭아물을 들인 손톱을 덮어버리는 장면이다. 봉숭아물 위로 서툴고 부자연스럽게 칠해진 매니큐어는 당시 선과 지아의 틀어진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제는 봉숭아물이 왼손의 약지 손톱 하나에만 아주 조금 남아 있는 선의 손을 보여준다. 나는 이것이 엔딩 시퀀스의 상황과 맞물려 앞으로 지아와 선의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했다고 느꼈다. 둘이 사이 좋은 친구가 될지, 또 싸우게 될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둘이 함께 쌓았던 좋은 추억들을 상징하는 봉숭아물이 아직 선에게 남아 있음을 보여주며 영화를 마무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자, 어쩌면 어른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와 너, 서로에게 속해 있지 않은 개인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이기까지 우리는 어떤 과정을 겪어 왔고, 어떻게 함께 성장해왔나. 사랑, 우정, 이해, 애정, 미움, 슬픔,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 <우리들>을 추천하며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다.


    우리는 어린 시절 선이였을까 보라였을까 지아였을까. 혹은 그 모두였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번쯤 고민해보게 된다.





*타플랫폼에 기재했던 리뷰 재업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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