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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은 Oct 29. 2022

작으면서도 크고, 낮으면서도 높은

드라마 <작은 아씨들> 리뷰





    정서경 작가와 김희원 감독의 만남이라는 것만으로도 내게 이 작품을 볼 동기는 충분했다. 흔히들 '작감배'가 완벽한 드라마라고들 말한다. 작가와 감독, 배우가 만들어내는 최고의 시너지가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될 때 들을 수 있는 찬사다. 내게 <작은 아씨들>은 그런 드라마였다. 모든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집중하며,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여운을 곱씹을 수 있는 드라마.





1. 미워할 수 없는 세 자매






    가장 현실적이기에 때로는 푼수떼기 같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동생들을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지키려는 인주, 불타오르는 정의감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지게 할 때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인경이, 언니들의 사랑이 부담스러워 상처를 줬던 만큼 자신의 대담함으로 받은 사랑을 돌려준 미술 천재 막내 인혜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기에 사랑스러운 부분보다 결점들이 먼저 보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인주는 너무 푼수 같고, 인경이는 너무 무모하고, 인혜는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고. 그럼에도 우리가 이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너무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가장 큰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혜는 꿈을, 인경이는 신념을, 그리고 인주는 동생들을 위해서.


    때로는 인주의 오지랖을, 인경이의 무모함을, 인혜의 독립심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있어도 우리는 결국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세 자매의 오지랖과 무모함, 독립심 중 그 어떤 것도 나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주의 오지랖이 사람에 대한 믿음이고, 인경이의 무모함은 정의감이라면, 인혜의 독립심은 언니들에 대한 사랑이다.


    결국 <작은 아씨들>의 결말부에서 인경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하고 좋은 기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걸어가고, 인혜는 그토록 원했던 대로 언니들에게서 벗어나 효린이와 자신만의 삶을 살며, 언니들에게 돈을 돌려줌으로써 그간 받아왔던 애정을 갚는 것에 성공한다. 그간 동생들을 위한 인생을 살았던 인주는, 가난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원이었던 아파트에서 스스로를 위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곁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그들의 인생으로 마무리되는 <작은 아씨들>의 결말은 세 자매를 진심으로 응원했던 시청자들 역시 그들을 기분 좋게 떠나보낼 수 있는 마무리였다.






2. 원작과 닮아있는,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초반부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이 드라마가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원작의 설정을 시청자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인주는 이혼한 상태로 나오지만 그녀에게 결혼 이력이 있다는 것은 원작의 메그와 닮아 있는 지점이다. 자매들 중 가장 똑똑하고, 고모할머니와 가장 가까웠으며 옆집에 자신을 좋아하는 소꿉친구를 둔 인경이는 원작의 조와 닮았다. 원작에서 일찍 죽은 베스는 아기 시절 죽은 셋째 인선이로 작품 중에서 언급되며 막내 인혜가 미술을 아주 잘하는 것까지 에이미와 닮아 있다. 원작 <작은 아씨들>을 무척 사랑했던 나로서 이런 부분들은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이 워낙 유명하고 인기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드라마 초반부 원작과 닮은 지점들은 시청자들에게 금방 보여졌고,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원작 <작은 아씨들>이 가족과 사랑, 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은 휴머니즘 스토리였다면, 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족, 사랑, 꿈에 더해 푸른 난초와 돈을 둘러싼 욕망, 권력, 살인과 미스터리까지 더해진 블록버스터였다.


    커다란 권력과 사람의 욕심 앞에서 사랑이나 우정 같은 것은 한없이 작아질 것만 같지만, 실은 그런 상황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바로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작은 아씨들>에서도 견고해보이기만 했던 높고도 큰 권력을 무너뜨린 건 그런 것들이었다. 작으면서도 큰 이야기, 작은 것이 결국 가장 큰 것이 되는 이야기.






3.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인 음악과 미술





    작감배가 완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본, 연출, 촬영, 연기 등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드라마가 바로 <작은 아씨들>이었지만,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 차원 높게 만든 것은 바로 미술과 음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커리어를 쌓아온 류성희 미술감독과 박세준 음악감독이 이 작품의 미술과 음악을 맡았는데, 이들은 <작은 아씨들>을 그야말로 눈과 귀가 즐거운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박세준 음악감독의 음악은 드라마의 적재적소에 자리하며, 극의 몰입도를 올리고 긴장감을 유지했다. 드라마의 장면들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음악에, 본방송으로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도 감탄했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그 명성에 걸맞게 드라마에서도 본인의 실력을 십분껏 발휘했다. 극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긴장감을 부여하는 욕망의 상징 푸른 난초 같은 소품들부터, 재상의 집이나 닫힌 방, 자매들의 집과 같이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수준 높은 세트들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였고 완벽에 가까운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완성도 높은 음악과 미술이 드라마를 더욱 빛냈고, 연출과 연기 외에도 즐길 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듯 하나의 드라마 속에 담긴 풍성한 요소들만으로도 <작은 아씨들>이 왜 좋은 드라마인지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4. 다양하고 매력적인 여성들




    각각 30대, 20대, 10대인 인주, 인경, 인혜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들은 모두 어린 시절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자랐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어릴 적 몇백 번이고 닳도록 읽었던 책이 바로 <작은 아씨들>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여성들에게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여자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여성들의 꿈과 사랑, 우정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는 더욱 더 많은, 그리고 더 매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주인공도, 빌런도 모두 여성들이다. 고전적인 스토리 속에서 주로 여성들이 맡았던 조력자의 역할을 오히려 남성들이 수행한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늘 인주의 곁에 있었던 도일, 상아를 위해 망설임 없이 인생을 바친 재상, 묵묵하게 인경을 믿고 도와주는 종호 등이 그런 존재다.





    인주와 인경, 인혜가 각기 다른 매력의 주인공들이라면, 원상아는 잔인하고 악한 존재지만 매력적인 빌런으로 등장한다. 원상아를 유쾌하고, 장난스럽고, 그래서 매력적이지만 그래서 더 잔혹한 빌런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배우 엄지원의 연기였다. 본래 엄지원이 가진 유쾌함과 배우의 매력이 캐릭터에까지 녹아들었다. 드라마의 처음과 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는 화영 역시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극의 중후반부 인주, 인경, 인혜가 힘을 모아 상아의 권력을 무너뜨리려 할 때, 세 자매와 상아, 수임, 마리 셋의 대립이 보여지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많은 여자 아이들에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원작 <작은 아씨들>이 또 한 번 더 매력적이고 평범하지만 가장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돌아와주어 기뻤다.






5. 작으면서도 크고, 낮으면서도 높은 이야기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기획의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자매들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는 아주 높은 곳에선,
커다랗게 성장한 [작은 아씨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작으면서도 크고,
낮으면서도 높은 이야기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 기획의도 中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어쩌면 결점이 먼저 보이는 자매들이지만 그들이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인 이유는 그들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장하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지만, 인생의 수많은 벽과 시련들 앞에서 멈추거나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자매들의 이야기는 더욱 빛난다.


    12회라는 짧은 분량 속에서 거대하고도 복잡한 이야기를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풀어낸 정서경 작가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배우들의 열연, 시나리오를 아름다운 장면으로 영상화해준 연출까지, 몰아치는 전개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장르 속에서 12회를 보는 동안 한 순간도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몰입도 높은 작품이었다.


    좋은 드라마를 떠나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12부작이 너무 짧다고 불평하기도 했지만, 정말 <작은 아씨들>다운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한다. 가난에서 벗어나 본인들이 꿈꾸는 삶을 위해 달려나갈 자매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삶을 살길 응원한다. 얼마 남지 않은 2022년, <작은 아씨들>보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길 드라마가 나올지 궁금해지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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