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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Oct 06. 2024

아버지의 그림 이야기 1화

<두 시선 한 공간> 전시 작품과 그림 설명

  9월에 성남아트센터에서 열었던 <두 시선 한 공간> 이라는 제목의 아버지와의 2인 전을 잘 마치고 보니 브런치 매거진에 나의 작품 설명만 있는 모습이 영 미완성같이 보여서 아버지의 작품 설명도 추가하기로 했다. 실제 전시장에는 아버지의 글과 그림이 수록된 번듯한 도록을 비치하였고 관객 분들께 나누어 드렸기 때문에 전시를 관람하신 분들은 아는 내용이지만, 브런치에 남기는 일도 의미 있을 것 같아 나의 아버지 권순영 작가님의 작품 21점에 대한 내용을 4화로 나누어 매거진에 싣겠다.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인생이 파란만장했고 건축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셔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 롯데 월드 타워

롯데 월드 타워, 종이에 수채, 72.7 x 53 cm, 2020

 아내가 부지런히 챙기고 나간 곳이 어딘가 했더니 바로 본 그림에서 휘황찬란한 밤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한국의 랜드마크, 세계에서 높이가 다섯 번째인 롯데 월드 타워였다. 아내는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수다 떨다가 영화를 감상하기로 약속이 되었다고 기분 좋아하며 나갔다. 롯데 월드 타워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기능과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전망대, 아쿠아리움, 콘서트홀, 판매 시설 등 복합시설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잠시 건축물의 이력을 소개하다면 높이가 555m에 123층인데 이렇게 뽑아 올릴 수 있는 것은 기술적으로 마치 대나무가 마디를 틀며 가늘고 높게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Out Rigger)다. 한편 저 높은 물체가 태풍이나 지진에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염려되는데 지하의 엄청난 기초와 지하 구조의  뿌리 내림은 물론 꼭대기 층에 설치된 대형 물탱크의 물이나 공 모양의 쇳덩어리가 중심을 잡아 주기 때문에 지진에도 안전하다.







2. 향수  


 나의 고향은 충북 진천 산골짜기 동네인 트미실이다. 지금은 인근에 신도시가 들어서 있지만 트미실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다. 아주 어렸을 때는 좀 짓궂어서 남의 집 담장 잘 익은 호박에 말뚝을 박아 혼이 나기도 했고 같이 놀던 여자아이에게 돌을 던져 이마에 큰 상처를 내고 지혈을 우선 해야 함에도 무서워서 도망쳐 우리 집 커다란 빈 항아리 속에 숨어 있다가 아이의 할머니로부터 벼락같은 야단을 맞기도 했다. 물론 나무를 맞추려다 저지른 실수였지만 치료가 우선인데 겁에 질려 도망을 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하루는 할아버지의 둘째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같이 들어온 나보다 한 살 위인 근식이와 같이 우물가에서 놀던 중 물방개를 잡는다고 하다가 내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우물에 빠지고 말았다. 대여섯 살쯤 되었던 근식이는 오십여 미터 가까이 되는 거리를 아장아장 걸어가 할아버지께 “아빠, 순영이가 샘에 빠졌어.”라고 알렸다. 할아버지는 쏜살같이 달려왔으나 잔잔한 우물만 찰랑거리고 있었다. 다급한 할아버지는 우물만 빙글빙글 도실 뿐 구할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에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난 할아버지의 일꾼 조외환 씨가 장대를 넣어 저을 때 뭔가 묵직이 걸리더니 장대 끝을 내가 꼭 잡고 나오더란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4학년 때인 53세에 작고를 하셨고 나의 생명을 구해주신 분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서울 어디엔가 계셨다는 데도 뵙지 못해 한스러웠다.

그때 다시 살아난 인생, 산딸기를 따며 소를 끌고 들판에 나가 풀을 뜯기던 고향이 항상 그립기만 하다.

    

향수, 종이에 수채, 60.6 x 80.3 cm, 2020


3. 범종루의 단청


 봄이 깨어나는 4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멤버들이 용문사 관광에 참여하여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봄을 즐기고 있을 때 용문사의 온갖 봄꽃이 만발한 가운데 특히 멀리 보이는 단청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과연 멀리 보이는 단청을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으며 아울러 수령이 천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도 있어 마음에 드는 몇 장의 사진을 봄 향기와 함께 담은 뒤 일행과 내려오면서 문득 1965년 서울에서 대학 2학년 초를 보낼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해 겨울 지금은 고인이 되신 민목사님의 심부름으로 바로 이 동네까지 와서 쌀을 한 말 사서 어깨에 지고 눈이 내리는 초행길 어둠 속에서 무서움을 쫓기 위해 소리 높여 찬양을 부르며 용문산 깊은 능선 위를 올라가 최상래 전도사 부부를 만나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온 에피소드였다. 그 후 30여 년이 흘러 어렵게 수소문하여 신길동 모처에 계신 최 목사님께 연락하였더니 “3년 전에 담임목사님 작고 하셨어요” 라며 수화기 너머 모깃소리만 소리로 답변이 들려왔다.


범종루의 단청,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18


4. 매직 아일랜드


 회사에서 CEO로 상근 하던 시절 손님이 찾아오거나 출장 나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석촌호수를 한, 두 바퀴를 걷는 운동을 습관처럼 즐겼다. 호수 건너 햇빛에 반사되어 환하게 비치는 이국적인 매직 아일랜드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항상 다른 얼굴을 내밀며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특히 야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워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아마도 석촌호수의 이곳을 지나며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지나간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직원들과 함께 걷게 되었는데 건강 이야기를 하며 같이 걸었던 C 전무가 무남독녀 딸 내외가 천만 원이나 들여줘서 유명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아무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고 온 가족이 기뻐했다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부럽기도 하고 그렇게 고가의 검사도 있나 해서 의아하기도 했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 나 역시도 건강 문제로 재택에 들어갔고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다른 일로 회사에 들러 안부를 물으니 C 전무는 몇 개월 전 폐암으로 회사에 병가를 낸 후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한다. 같이 즐기던 이 세상의 아름다운 매직 아일랜드를 비롯한 아름다운 산천이 얼마나 보고 싶어 아쉬울까? 그의 가족도!


매직 아일랜드,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19


5. 아치로 보는 선암사

 전남 승주군 승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유물로서 아름다운 다리를 배경으로 한 보물 제400호 선암사이다. 소위 무지개다리라 불리는 아치교의 둥근 틈 사이로 보이는 암자는 특이한 앙상블을 자아내어 많은 관광객들의 그림과 사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특히 아치교는 서양식 건축에 많이 활용되며 건물 외관에 많은 조각물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가끔 해외 공사 시 아치 공사를 하려면 생각 이상으로 힘이 들고 어렵다. 소형은 넓은 판 위에 원척으로 본을 그려 거푸집을 만든 후 든든하게 현장에 설치하여 마름모로 깎은 돌을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잡아 몰타르나 본드를 사이에 삽입하며 굳히는 과정을 반복하여 끝을 낸다. 승주읍에 있는 무지개다리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통나무를 사용하여 비계 틀을 힘들게 설치하거나 흙으로 받침대를 메워 다진 뚝을 쌓아 그 위에 마름모꼴의 돌을 놓아 완성한 다음 흙을 파내는 식으로 어려운 공사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무지개다리를 투시해서 보이는 선암사가 볼수록 더욱 아름다운 이유이다.


아치로 보는 선암사,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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