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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Oct 07. 2024

아버지의 그림 이야기 2화

<두 시선 한 공간> 전시 작품과 설명

 아버지는 평생을 건축, 건설 분야에 종사하셨기 때문에 수채화를 그리실 때 건물들의 견고한 형태와 묵직한 양감을 표현하는 실력이  누구보다 탁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의 겉과 속, 지을 당시의 공법 등까지 훤하게 알고 계시며 작은 창문틀 하나하나 꼼꼼하게 확인하고 완공하셨던 경험 덕분일 것이다. 당신의 그림과 함께 그간 살아오신 삶을 압축한 글이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듯하다.




6. 신라의 발자취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불국사는 7세기 초 신라 경덕왕 때 석굴암과 같이 김대성이 소암자로 창건하여 혜공왕 때 완공하였다 한다. 토함산에 자리한 불국사는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예술품이다. 연화교와 칠보교의 돌기둥과 돌난간은 정교함과 장엄함 부드러움이 감탄을 자아낸다. 불국사의 석탑은 간결하고 장중한 멋이 있고 다보탑은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마치 목재 건축처럼 짜 맞추어 예술성이 매우 뛰어나다.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작가가 처음 경주 지역 땅을 밟은 것은 단기 4293년 중학교 2학년 때인 4.19 직전 해 수학 여행길에 올라서다. 조치원에 와서 일제 시대에 만든 화통 기차를 타고 세월아 네월아 달리는 기차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경치는 마음을 들뜨게 했으나 터널을 지날 때면 왕바람이 세차게 들어오곤 했다, 잠을 잔 듯 만 듯 하룻밤을 자고 나니 전체 학생이 밤새 굴뚝을 청소하고 나온 듯 숯검댕이가 되었는데 자신의 모습은 의식하지 못하고 서로를 보며 웃음보를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석굴암에서 해맞이한다고 선생님들이 새벽 3시부터 깨워 어린것들이 비몽사몽 간에 비실비실 거리며 그때만 해도 좁디좁은 산비탈 길을 올라가 석굴암 해맞이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녹초가 되었던 추억이 생각나는 경주 여행!


신라의 발자취,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19


7. 역사의 향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위대한 역사의 모습은 1979년 쿠웨이트 현장 PM 시절 발주된 건설자재를 점검하기 위한 이태리 방문 시 볼 수 있었다. 당시 여러 군데를 돌아볼 수 없는 사정이었으나 가는 곳마다 보이는 찬란한 역사의 현장은 정말 놀라웠다.

이 작품 중 가운데 아치로 된 흰색 대리석의 건축물은 쎕티미우스 세베르스로 로마의 20번째 황제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이 세웠다 하며 오른쪽에 웅장하게 기둥만 서있는 쌔턴이란 이름의 파괴된 대형 건물의 일부분만 남은 것으로서 볼 때마다 전체가 유지되지 못한 것에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기술자인 본인이 만든다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이러한 위대한 문화를 로마가 이룰 수 있던 것을 유추해 보았다. 논리적으로 볼 때 아마도 로마가 힘을 가진 제국을 이루었기 때문이며 당시 베이징과 더불어 세계에 두 곳밖에 없었다는 백만이 넘는 대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많은 나라를 침략해서 획득한 물자와 노예가 풍부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역사의 향기,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18

8. 이삭 대성당  


 이 건물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이 아니라 정교회의 성인 중 한 명인 ‘달마티아의 성 이삭’에게 봉헌되었다. 건물을 지을 사람을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프랑스의 20대 후반 젊은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Auguste de Montferrand 1786.1.23.~1858.7.10.)이 공사 책임자로 선정되었다. 몽페랑은 신고전주의를 바탕으로 성당의 평면 구조를 그리스 십자가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공사는 1818년 2월 20일에 황제의 승인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는데 몽페랑이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바로 성당의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습지대를 매립해 세운 도시기 때문에, 공사 현장의 지반을 충분히 다지지 않으면 건물이 완성되기도 전에 스스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땅을 파서 물을 퍼내고 길이 6.5 m, 두께 26~28cm인 나무 말뚝 10,762개를 수직으로 박는 기초 공사에 5년이 소요되었다.

 파사드에 세울 원기둥 48개는 핀란드에서 채석한 화강암 원석을 바지선에 실어 운송해 왔는데, 기둥 하나의 무게가 125톤에 달했다. 기둥들을 제자리에 세우는 데에만 3년 가까이 걸렸고(1828~1830) 매끄럽게 연마하는 데 다시 4년여 기간이 더 걸렸다. 각 파사드마다 12개씩 원기둥을 세웠고, 그동안 벽돌공들은 성당의 주요 벽체와 볼트 천장을 마무리 지었다. 40년간 계속된 공사 끝에 마침내 1858년 5월 31일 네 번째 대성당이 완공되었는데, 신성한 건물에 동물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사 기간 내내 40만 명 넘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오로지 인력으로만 건물을 지었다. 책임자인 몽페랑은 그로부터 한 달 남짓 지난 7월 10일에 72세를 일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삭 대성당,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20

9. 경복궁 후원  


“여기 청년회장 계신가요?” 몇 번을 반복하여 외치니 담배 연기가 꽉 찬 소굴 같은 장파리 다방에서 “전데요”하고 문을 열고 내다보는 이는 어딘가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약 16년 전 고등학교 시절 나를 교회로 인도한 친구였는데 갑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는 편지 한 통만 남겨놓고 말없이 떠나버려 나를 수업 시간에 혼자 눈물을 훔치며 슬퍼하게 만들었던 친구다. “지금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고 행사가 있는데 의자 몇 개가 급하게 필요해서.....우리 이야기는 행사 끝나고 저녁에 만나서 하자,”

 그날 저녁 식사를 같이하며 그동안 궁금했던 사실부터 하나둘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고2 때 학업을 중단하며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한 이유는 갑자기 발병한 폐결핵이 가장 큰 원인이었으며 나를 마음 아프게 했던 편지의 내용은 아마도 그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친구가 사과를 했다. 나보다 세 살 위인 그와 마음을 열고 처음 만난 1961년 10월 3일에 이 작품의 무대이기도 한 경복궁 후원을 거닐며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또 한 가지 궁금했던 사실인 당시 교회 내 같은 그룹에서 활동했던 여학생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길 애틋한 관계까지 발전하기는 했으나 그녀를 친모 대신 키워주신 할머니의 반대로 결합을 성사시키지 못했으며 이듬해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당시 나는 결혼하여 애가 둘이나 있는 처지였는데 그 이야기에 섭섭함을 왜 느꼈을까?      

경복궁 후원, 종이에 수채, 65.1 x 90.9 cm, 2019

10. 팔라우 섬


“아빠 별일 없어요? ”사무실 전화로 낭랑한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날 아침 식사까지 같이한 딸이 웬 전화인가. 궁금했다.

 내용은 내가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 휴가 기간에 팔라우섬에 관광을 가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나는 당시 인도네시아의 모 건설회사 간부로서 일 년 이상 일하고 곧 귀국하기로 예정된 상태였고 딸은 아빠의 요청에 의해 외롭게 지낼 아빠를 돕고 자신도 해외 체험이나 할 겸 대학원을 휴학하고 같이 체류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팔라우라는 말은 섬이라는 뜻이다.

 2주 후 우리는 배를 타고 망망한 바다를 지나 자카르타를 떠난 지 두 시간을 못 가 시원한 바람이 끝나고 눅눅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 하선했다. 광고 그림에는 조용한 섬으로 표현되어 있었으나 실제 팔라우섬에는 관광객이 적지 않았다.

 한 일본인 부부가 우리를 보고 “Is she your wife? She’s beautiful. ”라는 말을 하여 이십 대의 딸이 당황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 정도로 젊어 보이나 싶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팔라우 섬은 어디를 가나 친절한 사람들뿐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며 휴가 기분이 났다.

 인도네시아에서 일 년 넘게 지내보니 인도네시아인을 ‘천년의 미소를 가진 사람들’이라 표현하는 게 이해가 간다. 평상시에 만나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들은 화를 잘 내지 않고 친절하다.

 딸은 물놀이와 제트스키 등을 하며 즐겁게 지냈지만 다른 가족들이 함께 하지 못한 부녀 둘만의 여행이라 좀 적적하기도 했다. 딸은 혼자만의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인도네시아에 체류할 때도 여러 곳을 다녔으며 혼자 40일이나 유럽을 여행한 전력이 있어서 그런지 심심해하지 않고 잘 적응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팔라우 섬,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20


11. 해지는 센트럴파크

해지는 센트럴파크, 종이에 수채, 72.7 x 53 cm, 2019

 그림 속 장소는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 있는 도시 중심부의 공원이다. 해마다 2,50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으며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힌다.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공원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센트럴 파크를 유명 장소가 되는 데 일조하였다. 센트럴 파크는 처음으로 1853년에 778에이커(315헥타르)의 공원으로 승인되었다. 1857년 경관 설계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와 건축가 및 조경 디자이너 칼베르트 바우스(Calvert Vaux)가 "Greensward Plan"이라는 계획을 가지고 공원을 설계하기 위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건설은 같은 해에 시작되었고, 공원의 첫 번째 지역은 1858년 후반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부분 개장으로 계속해서 추가 공개되었으며 공원은 1876년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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