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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별 Oct 08. 2024

아버지의 그림 이야기 3화

<두 시선 한 공간> 전시 작품과 설명

 아버지의 글을 읽다 보면 해학적인 내용이 재미있기도 하고 베트남 참전과 같이 우리 역사와 맞물리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어 새롭다. 이번에 전시와 아버지 도록을 준비하면서 그림 소질도 뛰어나시지만 글을 쓰는 소질까지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림이 좋아 미대를 나오고 미술 교사로 일하며 브런치 작가로 조금씩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바로 아버지의 재능을 닮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12. 로마의 광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B.C 8세기경 로물루스 와 레무스 늑대 쌍둥이 설화로부터 시작된 로마는 왕정과 공화정을 거치며 카르타고와 3차례에 걸친 120년간의 포에니 전쟁을 치르면서 무서운 나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손꼽는다면 그림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첫째 B.C 27년에 아그리파에 의해 축조된 판테온(Pantheon)을 들 수 있다. 아치 돔 형식으로 중앙에 힘이 모이는 부분에 구멍을 뚫어 통풍은 물론 힘을 분산시키는 작용을 활용한 예술적이면서 기하학적인 아이디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용도로는 신전이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둘째는 콜로세움인데 B.C 2000년에 5만 명의 수용 인원과 아퀴닥트를 이용 해상전까지 벌일 수 있는 시설을 그 시대에 단 10년 만에 완공했다니 기상천외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도로와 수로 시설이다. 인구 100만 도시로서 필수적이었으며 기울기가 단 3%로서 수백 킬로미터 지점에서 끌고 다리까지 놓아가며 수축하였다. 도로는 85,000KM 길이에 200년 동안 파병 조달 통신 등을 위해 수축했다 하니 참 대단하다.     

로마의 광장, 종이에 수채, 116.8 x 80.3 cm, 2021


13. 향일암

향일암, 종이에 수채, 72.7 x 53 cm, 2019

 숨을 헐떡이며 바위 언덕을 넘었을 때 작가의 눈에 들어온 건축물은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지방문화재 제40호로 한국의 4대 관음 기도처 중 하나인 향일암이었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은 여수시 돌산읍에 644년(신라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하였다.

기암절벽 위에 동백나무와 아열대 식물의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해 수평선의 일출 광경이 특히 장관을 이루어 숙종 41년(1715년) 인목 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였다. 또한 주위의 바위들이 거북등처럼 되어 있어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년 12월 31일~1월 1일에는 향일암 일출제가 열려 관광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곳 해맞이 명소에 몰려든다.    


 

14, 춘천을 향한 길


 춘천이라 하면 파월을 앞둔 장병이 필수적으로 한 달간 예비 훈련을 하러 가야 하는 곳이었다. 일주일간의 뱃멀미와의 사투 끝에 조그마한 단정에 옮겨 타고 목이 터져라 ‘백마는 간다’ 군가를 부르며 아오자이 꽁까이 아가씨들의 환영을 받으며 나트랑 항에 입항했다. 당시의 기쁨도 잠시, 종일 들려오는 포성마저 지루해하며 토굴 벙커에 누워 낮잠을 즐기던 소대장 시절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매일 긴장 속에 지내는 소대원들에게 펜팔 대상 경쟁을 붙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초등학교 교사인 나보다 한 살 위 사촌 누이에게 교대를 막 나온 선생님 중 펜팔 희망자를 선택하여 소개하는 편지를 보내주기를 요청했다. 몇 주가 지난 후 예쁘게 봉해진 봉투에 든 두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곧 소대 게시판에 공고하여 알렸다.

대여섯 명이 경쟁자가 참여하였으며 소대 서무 담당인 김 상병이 선정되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소식만 듣고는 1년 4개월의 파월 생활을 마치고 1970년 중순 귀국길에 오른 이후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4~5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영등포 거리를 바쁘게 가고 있는데 우연찮게 베트남에서 소대 서무를 담당했던 김 상병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도 나를 알아보고 우리 둘은 반갑게 손을 맞잡고 찻집에 들어가 옛날이야기에 푹 빠졌다. 김 상병은 월남에서 귀국하자마자 숱한 편지를 주고받은 한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최우선으로 일정을 잡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청주행 고속버스를 탔단다. 학교를 찾아 면회를 요청했는데 한선생님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여선생님이 나타나 “죄송하지만 한선생님은 여기 안 계십니다.”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란다. 동생이 하도 간절하게 펜팔을 요청하길래 김 상병님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몇 분 선생님들과 합의한 후 소설을 쓰시는 남선생님이 한선생님 역할을 맡아 많은 편지를 보냈노라고.

“소대장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월남 생활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다음 주 용접공으로 일하러 인도네시아로 떠납니다”   

 

춘천을 향한 길, 종이에 수채, 53 x 72.7 cm, 2020

 

15. 런던 브리지


 영국 런던 시내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누구를 막론하고 유유히 흐르는 템스강 위에 세워진 낭만적인 이 다리를 안 거닐어본 이가 없을 것이다. 런던 중심부의 시티오브런던과 서더크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 유래는 고대 로마 시대의 론디니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중세 시대에 이르러 돌다리가 지어졌고 19세기에 다시 한번 석조교로 대체되었다. 현존하는 다리는 최근에 개통된 다리로서 콘크리트 철강으로 지어졌다 한다. 1750년대 만해도 템스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였고 지금은 런던의 명소가 되었다. 로마인이 최초로 세웠지만 얼마 안 가 무너졌고 그다음으로 색슨족이 목조 다리를 세웠지만 홍수로 인해 떠내려갔다. 그 후 1831년 대리석으로 된 다리가 놓였는데 폭이 좁다고 해서 또다시 개축하게 됐다. 그리고 1973년 현재의 런던 브리지가 완성되었다. 수많은 역사와 개축이 반복되며 지금과 같은 명소가 태어날 수 있었겠지?   


런던 브리지, 종이에 수채, 65.1 x 90.9 cm, 2020

   

16. 천 단(天 壇)

천단, 종이에 수채, 72.7 x 53 cm, 2020

 건물의 정식 명칭은 어화원 내의 長春亭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의 섭리는 인류가 어느 곳에 정착하여 살든 아무리 최첨단 시설을 꾸미고 살든 재해는 피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태풍, 홍수 같은 시기에도 다른 곳은 지독한 가뭄에 시달린다. 화산이 여기저기 폭발하기도 하며 지진과 쓰나미도 수많은 인명을 단숨에 집어삼킨다. 올해 여름만 해도 자연이 가져다준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는 오직 하늘에 제를 올려 신의 도우심을 간절히 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단 시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호화찬란한 시설인들 자연을 움직일 장사가 누구란 말인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항상 자기네 부족이 기우제만 드리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단다. 내용을 알고 봤더니 그들은 몇 날 몇 달이든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드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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