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선 한 공간> 전시 작품 설명
아버지와 함께 했던 2인 전의 도록 <창조의 꿈>에 수록한 아버지의 그림과 글을 브런치에 옮기는 마무리 작업까지 하고 나니 숙제를 끝낸 듯 속이 후련하다. 오랜만에 용기 내어 열게 된 전시, 그것을 위한 그림 작업에 큰 영감이 되어준 아버지의 집념이 담긴 수채화들과 인생을 압축한 글들이 전시에 오셨던 관객들 뿐 아니라 더 많은 분들께 꾸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장기 해외 출장으로 인한 부재로 어색한 부녀 지간인 상태로 자랐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지는 느낌이다.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예술에 대한 열정과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신 아버지를 한층 더 존경하게 되었고 부녀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 한 페이지를 남길 수 있어서 뿌듯했다.
17.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19세기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에 의해 지어진 성이다. 1869년 스탄베르크 호수 근처에 고딕 양식과 유사한 로마네스크 양식인 이 성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애초 3년이면 다 지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루트비히 2세가 워낙 완벽함을 추구한 탓에 그가 죽은 1886년에도 성 전체가 완성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독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성이자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힌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의 신데렐라 성을 구상할 때 모델로 삼은 성으로도 유명하다. 당시로서는 첨단의 시설을 갖춘 곳으로서 예컨대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고 전체를 순환하는 공기 난방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한편 루트비히 2세는 독일의 세계적인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내부의 많은 방은 바그너의 오페라 등장인물들에서 영감을 받아 꾸며졌다. 특히 성의 3층 공간과 4층 전체를 차지하는 싱거즈 홀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대한 감탄을 반영하고 있다. 또 성 이름의 백조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주인공인 백조 기사 로엔그린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1996년 4월경 독일 출장을 갔을 때 잠시 짬을 내어 황홀함에 도취된 기분을 느끼며 이 성을 관광했다.
18. 오금공원의 명상
집 근처에 있는 오금공원은 내가 다리가 아프기 전까지 우리 집 정원마냥 자주 산책을 즐긴 곳이었으며 출퇴근 시간 지나갈 때면 폭포수가 쏟아지는지 늘 확인하곤 했다.
어느 날 공원을 거닐며 명상 중 훈련 중인 헬기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과거 베트남 전쟁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당시 일찍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귀가 째지는 굉음을 내며 UH-1 헬기에 올라 막 이륙하려는 순간 민간 복장을 한 한국인이 허리를 굽히고 내게 다가와 “제 동생이 모모 중대에 파월 근무 중인데 만나고 싶어서요. 헬기를 탈 수 있도록 편리를 좀 보아주십시오”마침 행선지가 같고 군인인 내가 동행만 해주면 헬기 조종사들이 미군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가 없었다. 운행 중 소음이 심했지만 그가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을 하길래 주로 음악 테이프를 녹음기로 들으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는 자기도 음악 마니아 급이라 했고 서로 웃으며 대화하다가 기착지에서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 후 4개월이 흘러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아 한창 분주한데 병사 한 명이 사이공에서 강영호라 하는 분이 보낸 소포라며 건넸다. 그 속에는 영화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테이프 21개가 들어 있었다. 55년이 지난 지금도 옛날을 생각하며 가끔 그 음악들을 즐기곤 한다. 참 이상스럽다. 그 짧은 인연에 나를 어떻게 추적해서 알아냈을까?
19. 블레드 호수
처남 내외와 동유럽을 여행했을 때 수년 전만 해도 전쟁으로 시끄럽던 슬로베니아땅에 위치한 블레드 섬과 호수를 감동하며 둘러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때만 해도 이 그림과 달리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왕래하고 있었으며 마리아가 승천하셨다는 성당까지 우뚝 서 있어 아름다움을 더 해주고 있다. 그림의 배경을 받쳐주는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려 일 년 내내 호수를 넉넉히 채워주는 물은 세계적인 자연의 미를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림은 겨울에 그린 것으로 설경을 상상한 것이다.
20. 성 탄
매년 크리스마스는 왠지 나이가 들 만큼 들어도 기다려진다.
고등학교 일 학년 서울 생활 첫 해 크리스마스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또래 여학생으로부터 생애 첫 선물을 받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일, 처음으로 내 취향에 맞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는 데 참여하여 사수를 도우며 밤새워 일을 배우던 추억 등이 생각난다. 이 년 후부터는 교회에서 사수 책임자를 맡아 이 역할을 물려받아 담당하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공개하는 행사의 초보 인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내기도 했다. 요즘 크리스마스는 캐럴도 사라지고 카드 교환도 드물고 상업시설 여기저기 대형광고 트리만 호화찬란할 뿐이라 지난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길 때마다 마음이 허전해진다.
21. 북한산의 노을
북한산(北漢山)의 삼각산은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서서 깎아 세운 삼각과 같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인데, 지도 높이 810.5m 북쪽의 인수봉(仁壽峰), 과 남쪽의 836m. 만경대(萬景臺)와 함께 북한산 고봉 중의 하나이며, 화강암(花崗岩)의 험한 암벽을 노출하고 있다, 산마루는 천 명가량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암반(岩盤)으로 되어 있으며 기암절벽(奇岩絶壁)의 조망이 일품이다.
등산을 돕기 위한 철 사다리가 놓여 있으며, 남쪽 비탈면에는 백운사지(白雲寺址)를 비롯하여 작은 절과 암자들이 산재하고, 아래쪽에는 백운수(白雲水, 일명 萬水)라고 부르는 약수가 솟는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시대에 축성한 중흥산성을 보수축하여 북한산성을 축성(1711년)한 이후 한성의 북쪽이라는 의미에서 북한산(北漢山)이라는 산 이름을 별칭으로 사용해 오게 되었다고 한다. 해가 막 지려고 하는 순간 아름다운 노을이 북한산을 물들여준다. 딸과의 2인 전 <두 시선 한 공간>에 출품한 전시 작품들 주제가 건축이다 보니 인간이 지은 인공적인 소재들을 그렸는데 이 그림 속 북한산은 최고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자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