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자의 조각보 Mar 13. 2023

내가 버려야 하는 것 1




나도 요즘 트렌드에 맞게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살림살이라는 것이 플라스틱 반찬통 하나라도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다. 쓸데없지만 예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사은품 같은 것을 잘 받아오지 않는데도 그렇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SNS의 발달로 모델하우스보다 멋지게 꾸며 놓은 좋은 집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내 집은 왜 그렇지 못한 지 반성도 하게 된다. 버리는 것도 수납의 한 가지 방법이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나는 버리는 수납을 잘 못하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집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팬트리'공간에는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오래전 각종 행사가 녹화된 비디오테이프와 음악 CD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옛날 그릇들, 변덕이 나서 이제는 벽에 걸지 않는 액자, 그중에도 최근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한쪽에 곱게 싸놓은 노란색봉투다. 거기에는 오래된 액자에 부모님 사진을 대신한 초상화 그림 들어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시가 쪽 사람들의 기념일 사진들 있다. 사진관에 나란히 서서 찍은 시동생 부부 흑백 약혼사진이나 시누이 결혼사진, 이제는 사십 대가 되어버린 시누이 딸 백일과 돌 기념사진들, 남편에게 큰 어머니가 되는 분의 회갑잔칫날 시골집 마당에 병풍을 펼쳐놓고 한복을 차려입은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도 있다. 누군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진도 더러 있다.



옛날 시골집 대청마루 위,  파리똥 잔뜩 앉은 액자에 넣어 걸어 놓았던 사진들이다. 이 사진이 내게 있는 것은 혼자 사시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남은 살림들을 장남인 남편이 수습한 까닭이다. 오래된 만큼 사진들은 낡고 바랬다. 무엇보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내게는 별 의미 없는 물건이라는 것이 내가 이것의 처분을 걱정하는 이유다. 당사자들에게는 가슴이 촉촉해질 추억의 물건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간직하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것일 뿐이다.



본인들에게 돌려주는 방법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지만, 남편이 없다고 그와 관련된 것들까지 쓸모없이 버리는 냉정한 일을 하는 것 같아 실천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그냥 조용히 버릴 수도 있지만 그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버릴 것은 그것뿐이 아니다.  남아도는 시간 활용을 위해 한동안 유튜브를 보면서 털실로 작은 블랭킷 뜨기에 열중한 적 있다. 색 조합을 맞추어 한 조각씩 뜬 다음 그것들을 이어 붙여 화려한 조각보처럼 한 장씩 완성하고 나면 뿌듯하고 흐뭇했다. 시간을 보내기에 그만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떠서 완성시킨 여러 장의 블랭킷을 볼 때마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이것을 왜 만들었을까?' 힘든 과정과 만만치 않은 재료비가 들지만 내겐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나에게 화려한 무릎담요가 왜 필요한가?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후회하는 것이다. 배우러 다니며 구웠던 도자기 들도, 화실을 드나들며 그렸던 그림들도, 아마도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옷과 사진들과 함께 제일 먼저 버려질 물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어쩌면 버려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쓸데없는 생각과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지나친 걱정들, 넘치는 열등감,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나쁜 기억들도 나는 버려야 한다. 하등 쓸모없을 뿐인 것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내게만 의미 있고 소중한 것 들을 서서히 정리할 때가 된 것을 느낀다. 그런 것 일 수록 다른 이에게 쓸모가 없는 것을 깨달은 까닭이다. 내가 애착을 가졌던 물건일수록 나를 잊는 수단으로 제일 우선순위로 버려질 것이다. 남은 사람이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내일은 혼자 찍은 사진들부터 조금씩 정리할 생각이다. 나 젊었을 적 모습과 시간에 도대체 누가 관심이나 갖겠는가? 공연히 남겨두었다가 지금 나처럼 간직하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것들이 되어 아이들에게 괜한 죄책감 느끼게 하는 '애물단지'는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늙어가는 건 참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이제 다 잊었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