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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조각보 Aug 10. 2023

엄마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리지어의 왕 미다스의 이야기를 동화로 그린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아폴론의 저주를 받은 미다스왕은 자꾸만 자라는 귀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고 살았지만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에게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왕의 비밀을 말할 수 없었던 이발사는 비밀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대나무 숲으로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백성들과 임금님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인정하면서 이야기는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감출 때에는 약점이 되지만 인정하면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된다.


내게 이곳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비밀을 견딜 수 없었던 프리지어 이발사의 '대나무 숲'과 같은 곳이다. 주로 못된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쓴다. 렇지만 내가 가볍고 후련해 지기를 기대하는 대나무 숲의 효과는 아직 다. 엄마와 딸이라는 질긴 관계의 이야기는 다른 주제와 달리 쓰면 쓸수록  묘한 마음의 무게가 더해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처럼 한 마디로 나를 표현하지 못해서일까? 이제 좀 더 긍정적인 나의 이야기를 쓰려고 매번 생각하고 시도하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엄마의 괴롭힘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바로 그런 엄마의 딸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이라는  그냥  인정해 버리면 벗어날  수 있을까?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어느 순간 갑자기 업무나 일상 등 모든 일에 무기력해지는 현상' '번아웃증후군'이라고 한다.


능력이 없어 변변한 직업 한 번 가져보지 못한 내가 요즘 우습게도 '번아웃상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적 탈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엄마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큰 까닭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것들의 원인은 불행하게도 '기승전 엄마'다.




엄마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엄마의 발이 부었다. 어느 한 군데 안 아픈 없을 만큼 온몸 이곳저곳이 아픈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눈에 보일만큼 발이 많이 부었다.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걱정스러워하면서 관심을 보일수록 엄마의 반응은 청개구리와 같다. 치료시기가 더 늦어지기 전에 병원에 가보자고 이리저리 설득을 하고 달래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죽을 때가 되었으니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진심이 아니다. 더 많은 관심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화가 났다. 그렇다고 반려견처럼 이동장에 넣어 강제로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를 잘 아는 나는, 알아서 하라는 말을 끝으로 내버려 두기로 한다. 남을 심하게 의식하는 엄마는 주변에 사람이 없고 무관심해야 조용해진다.


"병원에서 너무 늦게 왔다구 나 보구 다리 잘라야 한다믄 어쩐다니?"


며칠 후에, 죽어도 병원에 안 가겠다던 엄마로부터 극단적인 표현과 함께 원인이나 알아보자며 전화가 왔다. 나는 가고 싶지 않지만 너희들이 걱정하니까 특별히 한 번 가주겠다는 투의 말과 함께. 늘 그렇듯 며칠 동안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검사를 위해 입원을 했고 그날 밤늦게 전화가 왔다. 자신은 너무 잘나고 대단한 사람인데 병원에서 그저 평범하게 늙은 아픈 할머니로 대하는 것에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엄마는 항상 무슨 자신감인지 자신 특별하다고 착각하고 있다.


"내일 아침 일찍 퇴원할란다. 뭔 병원이 약두 안 , 이리저리 검사다구 끌구만 다니구..멀쩡한 사람 기저귀를 채워 놓구는 꼼짝두 못하게 한다니? 의사는 코빼기도 안 디밀구.. 이런 병원에는 있으나 마나다.  나 집에 갈테니 그르케 알구 얼른 데리러 와라~"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기침만 심하게 해도 골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심한 골다공증 진단을  받은 엄마는 '낙상위험군' 환자였다. 게다가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하니까 기저귀를 채우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대화가 될 리 없다.


엄마는 시간 날 때마다 전화를 해댔고 그때마다 큰 소리로 악을 다. 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달램과 설득도 소용없었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이 병원은 나 아니믄 먹구 살기 힘들다니? 내가 집에 가겠다는디 왜 퇴원을 안 시킨다니? 퇴원을 안 시킨다구 내가 못 갈 줄 안다니? 기어서라두 갈껴~ 다 비켜! 집에 못가게 하믄, 나 여기 9층에서 뛰어 내릴테니까.. 내가 못할 것 같으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여~"


천식으로 기관지와 폐가 나빠서 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빼서 동댕이치고 팔에 꽂아둔 링거바늘도 잡아 빼면서 다리를 침대 난간 밖으로 뻗어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런 때 나는 참으로 난감하다. 어쩌란 말인가? 엄마는 대체 왜 저러는 것인가? 저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인가? 조용히 대화로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신장의 기능이 안 좋아져서 이대로 관리를 안 하면 투석을 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투석을 하던 아버지에게 '생전 들어 보지두 못한 괴상망측한 병이 들어서 내 속을 썩인다'라고 말했던 엄마가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일주일쯤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병실에서 악다구니를 써 대던 엄마를 열흘 만에 퇴원시켰다.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 요양보호사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었다. 갑자기 하는 퇴원이라 심의가 늦어지는 동안 병실에서 엄마는 한 번 더 난리를 쳤다.






퇴원 후 이틀 만에 엄마가 전화를 했다.


"호호~ 얘! 경자야! 이번 병원 입원은 잘 한 거 같어! 발에 부기도 쏙 빠졌고 이빨없다구 죽 맛있게 나왔구~ 그동안 먹던 진통제를 안 먹어두 아픈데두 없구. 내가 이번에 땡깡을 부리며 을 들었다 놨더니  좀 효과가 있는  거 같다"


병원에 다녀와서 생긴 효과가 자신이  진상을 부려서라는 듯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말투였다. 나를 낳아준 엄마가 틀림없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쌀쌀맞게 전화를 끊었다. 그랬더니 내가 자신을 살갑게 대하지않았고 '병원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그랬을까'라고 이해해주지 않다며  또 한번 화를 냈다고 한다.


"내가 죽으믄 고이 죽을 줄 안다니? 자식들이 밥두 안 주구 학대했다구 유서 써 놓구 니들 괴롭히고 죽을꺼여~ 병원에서 싫은 소리 좀 했다구  어떻게  그런다니? 그게 어때서? 뚫린 입으루 하구 싶은 말두 못한다니? 내가 증말 고이 죽을 줄 알어? 어떤 게 망신스러운 건지 내가 꼭 보여주구 죽을라니께~"



내가 글로 표현하는 것은 엄마가 하는 행동과 말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씨 못 받을 종자 씨를 받았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엄마는 그나마 그 씨를 조금이라도 받은 자식들 때문에 지금 이렇게라도 사는 것을 모른다. 자식들이 자신만을 닮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엄마 이야기를 하며 동생이 말했다.


"그래두 다행히 우리 자식들 중에 엄마 닮은 사람은 없지?"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내가 엄마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가장 많이 닮은 까닭이다. 그렇지만 내가 엄마딸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인정하기 싫다. 마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때가  얼른 왔으면 한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 또 엄마이야기인 것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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