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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자의 서랍 Sep 02. 2023

오래된 가족사진





엄마네 집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오래전에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와 한복을 입은 엄마,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그곳에 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집에서 멀지 않은 사진관에 가서 큰 맘먹고 찍은 것이었다. 벌써 40여 년이 된 사진이다. 그것은 장식이 화려한 액자에 담겨 오래도록 집안 한 곳을 차지하고 걸려 있었다.






최근 엄마네 집에 간 어느 날, 가족사진액자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오래 걸려있던 시간만큼 액자크기 정도의 사각형 자리가 다른 곳 벽지 색깔과는 다르게 뽀얗게 남아있었다. 마치 여름 바닷가에 다녀온 뒤 그을리지 않은 하얀 살색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영복 흔적과 비슷했다. 가족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 말에 동생이 말했다.




"그거 얼마 전에 엄마가 부숴버렸어"


"왜?"


"자식들이 자기 고생한 생각은 안 해주구 죽은 아버지만 불쌍하다구 한다면서, 그런 아버지가 사진으로두 꼴 보기 싫다고 액자를 떼서 바닥에 동댕이쳤거든"


그때 액자 유리가 깨지면서 사진까지 군데군데 찢어졌는데 그것을 엄마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쓴 구식 결혼식 사진을 비롯해 누렇게 빛이 바래고 얼룩이 남은 오래된 흑백 사진들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평생 능력읍구 융통성읍는 느이 아부지 땜에 내가 얼마나 고생하구 살었는디 느덜은 아부지만 불쌍하다구 한다니? 왜 내가 고생한 거는 안 알아주구.. 이제 늙어서 자식들 한티 대우 못 받는 것두 다 느이 아부지 때문인디~ 난 지금두 느이 아부지 생각만 하믄 소름 끼친다'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되어 오는, 엄마와는 46년을 함께 산 아버지였고, 엄마의 말도 안 되는 패악을 그토록 오래 견디고 살면서 술도 담배도 평생 안 하시던 순하고 불쌍한 아버지였다. 항상  엄마에게 잘하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었다.


나도 이제 늙어가면서 '그땐 충분히 그럴만했어. 나라도 그런 환경이라면 그랬을 거야.'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하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은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버린다.  아무리 애써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액자 속 오래된 가족사진은 그렇게 사라졌다. 사진뿐 아니라 사진속 사람들도 사라질 것이다.  이렇듯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기억과 현실 속에서 사라진다. 잊히는 것 허망한  만큼 잊히기 전까지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문득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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