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네 집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오래전에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양복을 입은 아버지와 한복을 입은 엄마, 그리고 우리 삼 남매가 그곳에 있었다. 내가 결혼하기 전, 집에서 멀지 않은 사진관에 가서 큰 맘먹고 찍은 것이었다. 벌써 35년이 넘은 사진이다. 그것은 장식이 화려한 액자에 담겨 오래도록 집안의 한 곳을 차지하고 걸려 있었다.
최근 엄마네 집에 간 어느 날, 가족사진액자가 사라진 것을 보았다. 오래 걸려있던 시간만큼 액자크기의 사각형 빈자리가 다른 곳의 벽지 색깔과는 다르게 뽀얗게 남아있었다. 마치 여름 바닷가에 다녀온 뒤 그을리지 않은 하얀 살색이 그대로 남아있는 수영복 흔적과 비슷했다. 가족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 말에 동생이 말했다.
"그거 얼마 전에 엄마가 부숴버렸어"
"왜?"
"자식들이 자기 고생한 생각은 안 해주구 죽은 아버지만 불쌍하다구 한다면서, 그런 아버지가 사진으로두 꼴 보기 싫다고 액자를 떼서 바닥에 동댕이쳤거든"
그때 액자의 유리가 깨지면서 사진까지 군데군데 찢어졌는데 그것을 엄마가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평생 능력읍구 융통성읍는 느이 아부지땜에 내가 얼마나 고생하구 살었는디 느덜은 아부지만 불쌍하다구 한다니? 왜 내가 고생한 거는 안 알아주구.. 이제 늙어서 자식들한티 대우 못 받는 것두 다 느이 아부지 때문인디~ 난 지금두 느이 아부지 생각만 하믄 소름끼친다'
돌아가신 지 이십 년이 되어 오는, 엄마와는 46년을 함께 산 아버지였고, 엄마의 말도 안 되는 패악을 그토록 오래 견디고 살면서 술도 담배도 평생 안 하시던 순하고 불쌍한 아버지였다. 항상 엄마에게 잘하라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했었다.
나도 이제 늙어가면서 '그땐 충분히 그럴만했어. 나라도 그런 환경이라면 그랬을 거야.'라고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하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은 아무리 그렇다 해도 범위를 벗어나버린다. 어떻게든 이해하려 애써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렇게 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억울함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 아버지의 오래된 흑백 결혼사진이나 여행 사진과 같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것도 이제 알 것 같다. 그렇게 액자 속 가족사진은 사라졌지만 내가 남은 한 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도 참으로 허망한 일이지만 어떻게 기억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것을 오늘 문득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