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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still Jan 04. 2023

인도에서 삶의 속도를 줄이고 있는 중입니다

인도 여행 푸쉬카르에서의 시간

이곳 푸쉬카르에 도착한 지 오늘로 6일째 인가보다. 라자스탄주의 조그만 시골인 푸쉬카르에 예정보다 더 머물기로 했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명상을 하고 아침이든 오후든 시간이 되는대로 요가수업에 들어가서 요가를 한다. 그 외에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는 것 외에는 먹고 자는 게 다이다.


인도에 오고 나서 바로 명상센터를 갔었고 거기에서 나오고 난 후에 며칠은 미친 듯이 잠을 잤었다. 늦은 시간까지 늘어지게 잠을 자는 나를 영상통화로 본 엄마는 그렇게 잘 거면 왜 인도까지 갔냐고 했다.


그냥 나는 이곳 인도에서 내 삶의 속도를 늦춰 가고 있다. 오랜만에 얻은 휴가라는 기간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랴 내가 그냥 편안하고 좋으면 되는 거지.


아침에 길거리에서 짜이(Milk tea) 한 잔을 마시고 나서, 요가수업에 참석하고 길거리에서 인도 길거리 음식을 사 먹는다. Poha를 사 먹기도 하고, Samosa를 사 먹기도 하고, 그날그날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사 먹는데 금액이 20루피(약 300원) 정도이다. 그다음 방으로 와서 간단하게 청소를 하고 나서 내가 생각하기에 푸쉬카르에서 가장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카페에 가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다. 이제는 내가 주문하지 않아도 카페 주인은 매일 내가 원하는 더블샷 아메리카노를 자연스레 건네준다.


이 카페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인도를 여행하는 젊은 인도인들도 만났고, 러시아인으로 3년째 푸쉬카르에 머물면서 보석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이리를 만났고, 이스라엘 아버지와 인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서 인도로 여행을 왔지만 한국을 너무나 좋아하는 이엘도 만났고, 한국 화장품이랑 피부관리법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물어보던 체코에서 온 요한나도 만났다. 40일째 25킬로짜리 배낭을 메고 자전거로 여행온 미국에서 온 한 중년 남자도 만났으며, 3살과 5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인도를 여행하는 프랑스 가족도 만났다. 4개월이 넘게 인도 여행을 하고 있고 요가를 참 좋아하는 프랑스인도 만났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싶을 때면 푸쉬카르 어디에서든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푸쉬카르 호수에 가서 멍 때리며 앉아 있거나 길거리에서 나오는 요가 만트라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된다. 햇살이 비추는 계단 어딘가에 앉아 짜이 한잔을 마시며 햇살을 즐기기만 해도 편하고 좋다.  




한국에서 삶의 속도가 5G라면 여기 인도 라자스탄 주의 시골 동네 푸쉬카르는 2G 정도일까?


팬데믹으로 인해 미얀마에서 급히 귀국하고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하다가 미얀마의 쿠데타 소식을 듣고 미얀마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한국에 예정보다 오래 머물 것 같아 새로운 일을 찾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중고차 한 대를 구입한 것이었다. 인도에서 5년, 그리고 한국에서 잠시 1년, 미얀마에서 약 1년 정도 있으면서 운전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운전하는 것은 생소했었다.


내가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하면서 신기하리만큼 생소하게 여겨졌던 것이 바로 신호등과 교통카메라였다.


한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인지한 것 중에 하나는 전과 달리 내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뒤쳐진 것들을 빨리 따라잡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다. 한국에 내가 없었던 기간에 상용화된 새로운 것들을 배워야 하고 변화된 시스템들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때 무심결에 운전하다 신호등을 보고 내 머릿속에도 신호등과 교통카메라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삶의 속도에 빨간 신호등과 초록 신호등으로 적절하게 신호를 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적정한 삶의 속도로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 멋진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무기력이 넘쳐날 때나 게으르고 싶을 때는 생산적인 일을 위해 초록 신호를 보내며 열심히 살게 하고, 욕심이 넘쳐  빨리 달려가는 삶의 속도가 위험하다고 느낄 때는 경고 같은 교통카메라의 도움으로 속도를 늦추며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도 대도시에 신호등이 있지만 시골에는 신호등이 없다. 푸쉬카르는 신호등이 필요 없는 작은 시골 동네이다. 여행 중에 굳이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뭐 있는가? 못 가본 곳은 다음에 또 와서 가면 되는 것이지.


내가 살아가는 인생도 때에 따라 빨리 갈 때도 있고 천천히 갈 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여기 인도 푸쉬카르에서 잠시 그 속도를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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