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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 Dec 16. 2023

손 윗 동서가 어릴 때

나의 손 윗 동서는 나보다 어리다. 결혼 초, 그러니까 10년

전에 둘째인 우리가 먼저 결혼을 했고, 내가 결혼한 후 4년 정도 뒤에 아주버님이 결혼을 해서 어린 손 윗 동서가 생겼다. 다 함께 보낸 첫 명절에 시어머니께서 우리에게 호칭정리를 해주셨다.

큰 애는 말 편히 해라. 그래도 네가 형님이잖니,


그때의 나는 설마 그래도 말을 놓겠나 싶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말을 따로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나의 동서는 나에게 말을 반쯤 놓게 되었다. 어른들이 계시거나 문자 연락을 할 때에는 존댓말을 서로 하는데, 전화 통화를 하거나 나랑 둘이 대화를 할 때, 그러니까 우리 둘이 있을 때에는 말을 놓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리가 띵 해졌다. 나는 단 한 번도 말을 놓은 적이 없었다. 누가 있거나 없거나. 그건 그냥 내 상식선이었다.



나의 친정 엄마와 큰엄마, 이 둘의 관계는 주변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유명하다. 동서지간에 어떻게 저렇게 사이가

좋냐고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할 정도이다. 우리 이모네 집에 놀러 갈 때면 늘 큰엄마도 함께 가시고, 엄마 친구들 만날 때에도 항상 큰엄마랑 함께다. 둘은 이미 동서지간을 넘어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큰엄마를 제일 편하게 생각하고, 큰엄마 또한 엄마가 베스트 프렌드라고 늘 말씀하고 다니신다. 호주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나를 대신해 나의 사촌언니는 우리 엄마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두 분을 모두 모시고 커피도 마시고 장도 보러 다닌다. 이 둘은 이렇게 41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 시집살이 심하던 시절,
1980년 대부터 지금까지 줄곧,
41년째 서로 존댓말을 하는 친구.



우리 큰엄마가 엄마보다 7살이 적으신대도 말이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느 한 사람이 말을 놓은 적이 없다.




2023년에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직도 이해 못 할 상황에 처해 있다. 누구 기준으로 장유유서인지, 왜 때문에 사람 간에 높낮이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호주 유치원에서 일하는 나는 가끔 놀랄 정도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서구문화에 놀랄 때도 있었다. 말 못 하는 어린아이의 의견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노인과 20대가 친구로 지내기도 하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이민을 했다. 더럽든 무섭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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