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이라는 재앙
아래의 글은 대한민국법원에서 매달 2만부 가까이 발행하는 월간 《법원사람들 》2월호에 실린 저의 글입니다.
비극의 시작
복부초음파 검사를 어시스트하는 여직원이 판독 실로 와서 보고한다.
“40세 여자 환자 초진(初診)입니다.”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침대 위에는 배가 산만한 환자가 누워있다.
‘아이고, 아침부터 진 다 빼게 생겼네.’ 싶으니 한숨부터 나왔다.
탐촉자를 배에 갖다 대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심한 지방간이 와있었다.
검사하는 동안 질문을 던졌다.
“고지혈증 없어요?” “약 먹고 있습니다.”
“고혈압은요?” “있습니다.”
“당뇨는요?” “있습니다.”
“허리는 안 아파요?” “안 그래도 디스크 수술했습니다.”
재앙이 따로 없다.
앞으로 본인은 말할 것 없고, ‘그 가족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아침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 ‘비만’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일까? 돈? 명예? 지위? 학문?
그것은 사람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 모두가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건강의 뒷받침 없이 취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 저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이 질문에도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망설임 없이 ‘비만’이라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만은 보기 싫은 외모와 생활하기에 좀 불편하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위의 환자에게서 보듯이 그 뿌리로부터 심각한 질병의 열매가 줄줄이 맺히기 때문이다.
술도 안 마시는 40세밖에 안 된 젊은 여성이 중증 지방간에, 고지혈증에, 고혈압에, 당뇨병에 허리 디스크까지 왔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만약 이 환자가 지금껏 해온 생활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20년 후쯤 과연 그녀는 어떤 상태가 되어있을까?
역류성 식도염에, 소화불량에, 변비에, 치질에, 코막힘에, 얕은 호흡에, 코골이에, 수면무호흡증에, 야뇨증에, 불면증에, 급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에다, 걷기만 해도 숨이 가쁘고, 심장에는 스텐트 박고, 양 무릎은 인공 관절에, 운 나쁘면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까지 와 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비만은 어디서 기인할까?
유전적 요인, 내분비계 이상, 약물, 정신적 요인 등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가장 흔한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에 있다. 한마디로, 음식에 대한 무지와 식탐(食貪)과 게으름이 만들어낸 합작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곧 100세 시대가 온다. 60세 환갑이 지나 도 40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전에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이런 사람에게 장수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런 인생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정녕 이렇게 살고 싶은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필자가 이끄는 길로 한번 따라가 보자.
혀를 홀리는 음식에 길들지 말라
비만 예방을 위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할 식물(食物)에 대한 인식과 절제다.
기름진 것, 튀긴 것, 단 것, 정제된 하얀 밀가루로 만든 먹거리,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가공식품 등.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삼겹살, 치킨, 새우튀김, 감자튀김, 팝콘, 아이스크림, 밀크 초콜릿, 햄버거, 피자, 파스타, 케이크, 쿠키, 각종 스낵, 라면 등이다.
이들은 모두 혀를 홀리는 맛이라 현대의 젊은이들은 어릴 적부터 이런 맛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니 필자가 이런 것을 먹지 말라 하면 당장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맛있는 것도 못 먹고 건강하느니 차라리 먹고 죽자.”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라.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것 절대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런 것에 길들여질 만큼 과하게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세상에는 이런 것 외에도 맛있는 게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순수한 맛, 담백한 맛, 슴슴한 맛에 혀가 눈뜨고 나면 순간적으로 황홀케 하는 자극적인 인공(人工)의 맛은 어느덧 잡스러운 맛으로 변하고 지금껏 맛없다고 외면했던 음식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그대 앞에 다가올 것이다.
진정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은 혀를 자극하는 음식이 아니라 혀가 스르르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음미하는 음식, 위와 장이 편안한 음식, 몸이 반기는 그런 음식이다.
천천히 오래 씹어라
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면 의사고, 간호사고, 일반 직원이고 간에 앉아서 10분 이상 먹고 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들 내가 밥 먹고 있는 중간에 들어와서는 내가 숟가락 내려놓기도 전에 나간다.
방금 들어왔다 싶은데 벌써 나간다.
뚱뚱한 사람일수록 빨리 먹고 빨리 사라진다.
오전 내내 열심히 일했으면 점심이라도 느긋이 맛을 즐기며 먹어야 할 터인데 밥 먹는 것을 마치 100m 달리기 경주하듯 한다.
빨리 먹는 게 어때서?
인간의 뇌는 많이 씹으면 많이 먹었다 인식하여 비록 들어온 양은 적어도 포만감을 느낀다. 그 반면, 적게 씹고 빨리 삼키면 적게 먹었다고 인식하여 과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 씹어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조물주는 인간을 만들 때, 이 작은 입안에 평생토록 사용할 영구치(permanent teeth)를 스물여덟 개씩이나 박아놓았다. 그것도 뼈 중에 가장 단단한 뼈로 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의도는 자명하다.
그 이빨로 다양한 먹거리를 물고, 베고, 찢고, 씹어서 맷돌 같은 어금니로 잘게 부수고 갈아 소화되기 쉽게 만들라는 뜻이다. 그리고 씹을 때마다 침샘으로 하여금 소화효소를 함유한 침을 분비하게 하여 장에서의 흡수를 돕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성능 좋은 이빨의 직무를 유기한 채, 밥 덩어리고 고깃덩어리고 대여섯 번 대충 씹고는 불법 쓰레기 투기하듯 위장으로 톡 던져 주면 말랑말랑한 가죽 주머니로 된 위(胃)가 얼마나 열받을까?
온몸으로 주물럭거리다 지친 위장이 “아이고, 이제 나도 모르겠다.” 하며 남은 놈을 소장으로 밀어버리면 소장은 또 무슨 죄냐? 소장의 역할이라는 것이 소화가 잘된 음식물을 받아다가 영양분을 족족 빨아들인 후 찌꺼기를 대장으로 내려보내는 것인데 힘겹게 소화까지 시켜가며 흡수하려니 음식물이 정체될 수밖에.
이렇게 장 내에 적체된 음식물에는 대장균 같은 유해균이 달라붙어 음식물을 부패시키고 그 과정에서 다량의 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리되면 속은 더부룩해지고, 입으로는 “꺼억꺽” 트림이 나오고, 항문으로는 구린내 나는 역한 방귀가 독가스처럼 새 나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민폐를 끼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 내 유해균들이 득세하면서 유산균 같은 유익균들을 잡아먹어 인체 면역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점이다.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각종 질병과의 싸움에서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만은 내 몸만 뚱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지키는 인체 방어군까지 뚱보로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필히 명심하자.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 할 때 숟가락 내려놓아라
딱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 할 때 숟가락 내려놓는 것.
처음엔 그 한 숟가락 내려놓기가 손에 쥔 돈다발을 내던지는 것만큼이나 아쉽고 힘들다.
먹어도 먹은 것 같잖고, 한두 시간만 지나면 배가 고파죽겠다.
하지만 이 고비를 일 년만 잘 넘기고 나면 배가 약간 촐촐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고, 끼니때마다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고통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만 도달하면 비만의 예방과 탈출에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
두 세상도 아니고 한 세상 살다 가는데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평생토록 맛있는 것 실컷 음미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파야 한다.
안 아프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무엇보다 장이 튼튼해야 하고 장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식탐(食貪)에 대한 절제가 필수적이다.
이제 우리, 혀를 홀리는 서양식 정크푸드, 맛이 강하고 느끼한 중국 음식, 인스턴트 가공식품, 기름진 육고기 등은 되도록 멀리하고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한식 맛에 혀를 길들여보자.
100번을 목표로 해서 밥 한술 입에 넣고 50번 이상 씹어보자.
그리고 딱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 할 때 딱! 그 숟가락을 내려놓자.
그리하면 속은 편 해지고 면역력은 증강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젊어서는 돈 번다고, 즐긴다고 건강 해쳐놓고, 늙어서는 잃어버린 건강 되찾겠다고 여기저기에 돈을 갖다 바치며 꼬랑꼬랑 살아간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현실인가?
나의 배 들레는 내 건강의 지표(指標)이자 절제와 인내심의 바로미터(barometer)란 사실을 명심하고 젊어 건강할 때 그 건강 잘 지켜 오래도록 누리며 즐겁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