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녀와 같은 시기에 실습을 돌던 의대생 중 한 명이 기타를 들고 나와 ‘La Novia’란 노래를 불렀는데
그녀와 같은 실습조였던 여학생 3명 모두 그의 노래에 반했다
실습이 끝난 후 그녀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녀의 편지를 받아본 그는 이름만으로는 세 명 중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내용도 노래가 너무 좋았다는 것 외에 특별한 건 없었고 딱히 만나자는 말도 없었다.
그래서 무시했다.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자, 그녀는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내면서 공연 티켓 두 장을 동봉했다.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도 답장이 없자 그녀는 자존심이 상하면서 오기가 발동했다.
‘흥, 니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냐? 좋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
그녀는 답장이 올 때까지 일주일에 한 통씩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일곱 통의 편지 고문을 받고 나자 그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느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제가 지금 연애할 때가 아니잖아요? 제게 또 무슨 시련을 주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제발 좀 살려주이소!“
그도 그럴 것이 의사국가고시가 몇 개월 남지도 않은 데다 남들은 6년 다니는 대학을 8년이나 다니고 있다. 어릴 적 풋사랑도 해봤고, 대학에 와서는 첫사랑도 해봤다.
지금은 오로지 공부에 매진해야 할 엄중한 시기. 만에 하나 국시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내 인생은 그날로 종 치고 날 샌다. 그러니 내 어찌 한가하게 연애나 하고 있겠는가! 이것이 그의 절박한 심정이었다.
당시 신앙심이 그리 깊지 않았던 그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밤마다 기도했다.
그러자 7일 만에 응답이 왔다.
"이것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노라.“
그러자 바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제가 연애를 시작한다면 마지막 연애가 될 것이고 그것은 곧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만난다는 뜻인데, 그런 중요한 선물을 주시려면 먼저 제품 설명서 정도는 있어야지요.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생김새라도 확실히 알게 해 주셔야 받을지 말지 결정을 내릴 것 아니겠습니까?“
하느님이 답했다.
"내 어찌 너에게 나쁜 것을 선물로 주겠느냐? 나에 대한 믿음이 그렇게도 약한가?“
고심 끝에 그는 결심했다.
"그래, 가자! 믿고 가자. 하느님 한번 확실하게 믿어보자. 세 사람 중 누가 되더라도 그저 하늘이 내게 내린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꺼이 받아들이자."
때마침, 며칠 후면 그 대학 부속병원 방사선과에 실습을 나가게 되어 있는지라 그는 편지 대신 학교 기숙사로 직접 찾아가 확인하기로 했다.
편지를 일곱 통씩이나 보내던 그 용기는 다 어디에 저당잡혔는지, 그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그녀가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확신이 왔다.
'하느님 선물 맞네!샤론의 꽃이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저 사람과 사귀면 기타도 배우고 함께 노래도 부르며 참 재미있겠다.’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녀.
처음 몇 번은 그저 즐거웠지만 갈수록 진지함의 정도를 높여만 가는 그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드디어 헤어질 결심으로 그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가며 바람도 맞히고 이별을 통보하기도 했지만 그는 요동치 않았다.
한편 그는 너무나 자존심 상하고 고통스러웠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을 이 정도 대가도 치르지 않고 내 어찌 공짜로 받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 하나로 끝까지 버텼다.
그 결과 그녀는 가족을 등진 채 자신의 꿈이었던 대학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종교도 바꾸고, 한 장애인의 아내가 되어 서로 사랑하며 아들딸 낳고 고락을 함께 하면서 어언 45년이란 세월 동안 세파를 헤쳐 나왔다.
결국, 한 사람은 스쳐 지나가는 운명의 소매를 움켜쥔 채 놓지 않았고, 또 한 사람은 벗어나려던 운명에 사로잡혀 본인이 원하고 어머니가 닦아놓은 그 길에서 이탈하여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낯선 길로 들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