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랙버드 Sep 27. 2022

나는 어쩌면 괴물일지도 몰라

당신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나요?

(‘기묘한 이야기’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 시간도 다 쓰고 딱히 할 게 없을 때 아이는 “엄마, 우리 영화 보면서 수다 떨까?”라고 슬쩍 말을 던지곤 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똑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게 지겨워서 거절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더 기다린다. 요즘엔 ‘유미의 세포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고 있다. '유미의 세포들'은 아이가 연애를 하고 싶어 해서 골랐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친구들이 재밌다고 추천해줬다며 아이가 먼저 보자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남성 청소년과의 수다는 흔치 않은 일이다. 문을 열어줄 때 얼른 들어가야 한다. 우영우의 아버지 말대로 ‘대화는 노력’이다.


우리는 얼마 전 '기묘한 이야기' 시즌4를 봤다. 자기혐오와 불안이라는 괴물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물리치는 이야기다. 주인공 ‘엘’은 초능력을 가졌고 국가의 비밀조직에서 살인 병기로 이용당한다. 자기의 초능력으로 사람을 죽였던 기억 때문에 자기가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엘을 괴롭힌다. ‘나는 사람을 죽였어.’ ‘어쩌면 나는 괴물일지도 몰라.’ ‘소중한 사람들을 다치게 할지도 몰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죄책감과 수치심은 괴물이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다. 소중한 이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엘은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아픈 말을 내뱉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괴물이 엘의 마음을 차지하는 동안 엘은 힘을 잃어갔다.



괴물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 또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엘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되돌아간다. 거대한 캡슐 안에는 물이 가득 차있고 엘은 물속으로 들어가 괴물을 만난다. ‘어쩌면 나는 ‘진짜’ 괴물일지도 몰라.’ 몇 번이고 물속에 들어가 기억을 재생하지만 엘은 그 말에 저항하지 못한다. 괴물을 만나 무력함을 느낀 엘은 숨이 멎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가 된다. 엘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니체의 심연을 연상시킨다. 니체는 자신의 내면으로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가면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을 만큼 심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하고 잘못을 들춰내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며 심판하는 내 안의 괴물을 수도 없이 만난다. 엘이 물이 담긴 거대한 캡슐 안에 들어가듯 나도 상담을 하면서 기억을 다시 꺼내고 있다. 꺼내보고 아프면 멈췄다가 다음에 다시 꺼내서 살펴보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힘을 되찾고 있다. 내가 괴물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나를 괴롭혔는지, 그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게 됐을 때 해방과 함께 분노가 덮쳐왔다. 각성의 순간이다.


“나한테 화났겠지. 하지만 이 방법밖에 없었다. 이게 최선이었어. 이것만은 알아다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너는 내 가족이야. 내 새끼. 나는 그저 너를 돕고 싶었고 너를 보호하고 싶었다. 내가 한 일은 다 너를 위한 거였어. 꼭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제발 이해한다고 말해줘.”


‘파파’가 마지막으로 엘에게 한 말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닮았다. 불안과 불신을 걱정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괴물은 ‘파파’가 만들었다. 자기를 믿지 못하게 하는 말,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말로 엘의 마음속에 괴물을 자라게 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아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런 말이 ‘가스라이팅’이며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엄마가 너를 아프게 했다면 화내도 되고 울어도 된다고 했다. 자기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자기를 믿으며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현재의 삶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과거의 사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엘은 과거로 돌아가 괴물을 본다. 나도 직면하는 중이다.  여기저기가 아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출  없다. 억울하고 분하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런 감정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한다. 아침에 일어나는 , 씻는 , 밥을 먹는 , 집안일을 하는 , 남들에겐 당연한 일들이 나에겐  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같아 죄스럽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괴물을  이상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살아갈  있다. 이제는 나도 안다. 나는 괴물이 아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거야.

내가 어쩌면 괴물일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진실을 알아.

내가 아니었어.

당신이지.

당신이 괴물이야.

이제 저 문을 열고 여길 떠날 거야”


“잘 있어요, 파파.”





작가의 이전글 최고의 유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