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음악사에서 ‘고전주의’가 베토벤에 의해 마무리되면서 ‘낭만주의’을 맞이한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부르주아 시민들, 즉 부유한 중간계급이 늘어남에 따라 계급사회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고 신과 종교보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더 중요해졌다.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고전주의의 규칙과 형식을 즐기지 않았다.
음악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악기들, 특히나 관악기들이 개량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작곡가들은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고, 그로 인해 더 다양한 양식들이 발전하며 작곡가 개개인의 개성도 강해졌다. (그리고 사생활의 개성도 더욱 강해졌다.)
때문에 낭만주의는 그 안에서도 ‘전기 낭만파’와 ‘후기 낭만파’로 나뉘며, 후기 낭만파에는 고전주의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의 주요 작곡가들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주로 활동한 것과 달리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 러시아에서는 국민악파가 등장하는 등 음악 안에서 지리적인 특징도 더욱 강해졌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 1797.01.31~1828.11.19, 오스트리아
또한 전기 낭만파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있다. 가곡의 왕이라고 불렸던 그는 무려 6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했다. 가곡이란 시에 반주와 노래를 붙여 부르는 짧은 성악곡이다. 가곡은 보통 3분 내외의 음악 작품이기 때문에 슈베르트는 약 1800분, 30시간가량의 가곡을 남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향곡, 실내악, 소나타 등등을 포함하면 31년이라는 짧은 인생 동안 1,0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슈베르트가 사망한 뒤에 출판되었다. 생전에는 약 200곡의 작품만이 출판되었는데, 이는 슈베르트의 성향 때문이었다. 평생 소탈했던 그는 자신이 유명해지거나 거장이 되는 꿈보다는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슈베르트는 인생에서 마지막 1년, 그것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공공 연주회를 연 적이 없고, 자신이 속한 예술가 모임 앞에서 한 번씩 작품을 연주했을 뿐이었다.
2006년에 성악가 조수미 데뷔 20년 기념으로 이루어진 콘서트에서 연주 도중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하자 장례식장으로 갈 준비를 한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께서 “청중들과 한 너의 약속을 지키는 게 너의 본분이고 아버지도 그걸 바랄 거다.”라고 조수미를 멈춰 세운다. 결국 조수미는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눈물을 꾹 참고 ‘Ave maria’를 부르게 된다.
“저희 아버지를 위해 기도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버지가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오늘 아침, 한국에서 제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에 저와 여러분을 위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곳에 가수로 와 있고 아버지께서는 하늘에서 저와 여러분이 함께 있는 것을 굉장히 기뻐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오늘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 번도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콘서트를 아버지께 헌정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슈베르트 아베마리아를 바칩니다."
가곡 마왕의 가사로 이용된 시의 내용은 굉장히 섬뜩하다. 당시에는 영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가 죽으면 ‘내 아이가 너무 예쁜 나머지 마왕이 데려갔다.’라는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 ‘마왕’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지려는 마왕과 이를 뒤쫓는 아버지의 추격전을 그려낸다. 짧은 시임에도 불구하고 마왕/아이/아버지-이렇게 3명의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노래 안에서는 각 인물의 특색을 살리는 것이 관건이며, 피아노 반주자는 광적인 터치로 첫 도입 반주에 죽어나가는 곡이다.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Louis Hector Berlioz, 1803. 12. 11~ 1869. 3. 8, 프랑스
또한 선대 작곡가들이 악기를 시작으로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었던 반면에 피아노를 전혀 칠 줄 모르는 ‘베를리오즈’라는 작곡가는 “재가 만약 피아노를 칠 줄 알았다면 쓰레기 같은 피아노곡에나 매달렸을 거야! 피아노를 칠 줄 몰랐으니까 교향곡이라는 100개의 악기로 연주하는 작품에 전념할 수 있었건 거지!”라며 낭만적인 발언을 남긴다.
사실 그의 대표곡이자 표제 음악(다양한 표제, 예를 들어 문학 작품, 작곡의 동기, 곡의 성격, 기타 곡과 연관된 여러 정보 등과 관련된 음악에 붙여진 기악곡)의 원조라고 불리는 <환상 교향곡>의 작곡 동기는 사실 환상이 아니라 환장이다. 영국 극단의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드손’이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오필리아’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홀딱 반한 베를리오즈는 여배우에게 러브 레터를 수십 통 보내지만 사실 베를리오즈는 그리 호감인 인간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않는 답으로 인해 슬퍼진 베를리오즈는 아편을 통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결론적으로 <환상 교향곡>의 악상을 남기게 된다. (베를리오즈가 지금 우리와 동시대의 작곡가라면 이 작품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고전음악에 비해 확실히 기괴해짐(?)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정형화된 즐거움과 아름다움보다는 이런 기괴함 역시 예술로 승화되었다.
자 이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파가니니를 모셔보자. 일단 그는 바이올린 전공자들에게 길이 남을 천하의 나쁜 놈이다. 2중 트릴, 2중 플라지올레트 등 생각치 못했던 고난도 바이올린 기술을 선사하심에도 모자라 작품으로도 남겼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의 작품 <24 caprice>는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역경을 안겨주는 고난도의 작품이다.
*파가니니의 인생과 업적을 다룬 영화 <파가니니> 속 주인공 ‘파가니니’로 등장하는 David Garrett은 실제 실력파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가수나 아이돌로 활동한 연예인들이 영화까지 진출하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가 자신의 본 직업을 통해 영화 주인공으로 발탁된 유일한 사례이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영화 속 음악들도 실제 그의 연주이다.
파가니니의 인기 시절은 베토벤과 잠시 맞물려있었는데, 당연히 그의 미친듯한 기교는 신들린 것을 넘어서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라는 평이 자자했다. 연주 도중에 갑자기 바이올린 줄을 자르고 저음현 한 줄만으로 연주를 진행하기도 하고, 광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클래식 음악 역사상 첫 ‘아이돌’을 배출한 것이다. 모든 여성들은 그를 쫓아다녔고, 실로 화려하고 극적인 여성 편력을 자랑했다. 베토벤은 그런 파가니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뭐, 여자들한테 인기 있다고 그러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 역시 말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탈리아 태생의 파가니니의 죽음 곁에는 가족도, 사랑도 남지 않았고, 그의 시신 역시 ‘악마를 들여놓을 수 없다’는 의견으로 자신의 고향(이탈리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