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중학생 엄마의 흔들리는 마음
"자녀를 좋은 학원에 보내려고 이사를 간다구요?"
첫째가 유치원 6세 반에 올라갈 때쯤 동네 지인들이 하나 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둘러 학군지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었다.
아니, 무슨 유치원생이 좋은 학원을 다니겠다고 이사까지 가는 거지?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유치원생이 다닐 학원이라면 피아노, 미술, 태권도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학군지는 아니었지만, 나름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였기에 도로 하나 건너면 학생수 천 명이 넘는 초등학교가 있었고, 초등학교 주변과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에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이 넘쳐났다. 그런데 학원 때문에 이사를 가다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군지를 찾아 이사를 간 지인들은 피아노, 미술, 태권도 학원이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찾아간 것이었음을.
초등 저학년 때부터 국어,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닌다고? 한글 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국어 학원을? 알파벳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인데 영어 학원이라니. 구구단이나 외우면 될 것을 수학 학원까지? 게다가 국어, 영어, 수학 학원에 들어갈 때 레벨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는 진심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스스로 책가방을 챙기고, 학교에서 스스로 교우관계를 형성해 가고, 방과후학교 수업이나 예체능 학원 한 두 군데 다니고, 책 좀 읽고, 학교 수업 열심히 따라가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너무 시대에 뒤처진 것이었던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게다가 초등 공부는 학교 수업만 열심히 들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초3이 된 아이의 수학 단원 평가 점수를 보고 위기감이 들었다. 아,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게다가 초등학교 연산 문제도 틀릴 수 있는 거구나.
그때쯤 교육열이 높은 내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학원보다는 엄마표 집공부를 고수하던 친구들 덕분에 괜찮은 교재와 노하우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표로 자녀들의 학습을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표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기에는 민망하고. 기탄국어, 브릭스영어리딩, 디딤돌 기본응용 수학 문제집 정도를 꾸준히 챙기는 정도였다.
성실함 하나는 갖추고 있었던 첫째는 곧 가정에서의 학습 루틴을 챙겨갔고 학교에서의 단원평가 정도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해 갔다. 휴~ 다행이다.
초6이 되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느 중학교에 보낼 것인가, 국영수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군지로 이사를 가야 할까?
<2025 대한민국 교육 키워드>라는 책을 읽다 보면, 학군지행을 고민하는 학부모를 위한 조언이 나온다.
"만약 대치행을 고민한다면 흔들리는 이유가 대치동 학원 때문인지, 로드맵 때문인지, 학교 때문인지 꼼꼼히 따져보세요. 학원 때문이라면 이사하지 않아도 방학 때 대치동 학원에 다니는 방법, 로드맵 때문이라면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우는 방법 등이 있잖아요. 만약 대입 실적이 좋은 고등학교로 자녀를 진학시키기 위해서라면, 명문대 진학의 상당수가 N수생이라는 것을 반드시 고려한 뒤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2025 대한민국 교육 키워드, 방종임, 이만기(2024). 21세기북스 69쪽)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니 학군지로 유명한 수성구로 이사를 가야 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학군지로 가려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사실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대입 실적이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우선 '공부하는 중학생'으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공부는 중학생부터라 생각했기에.
사실 지금처럼 고등학교 내신이 대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 하에서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고 다짐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고1 입학하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중간고사를 시작으로 각종 수행평가를 정신없이 치르다 보면 어느새 기말고사가 코 앞에 다가오는 것이 현실인지라.
그렇다고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게 너무 무리하여 선행학습을 하다 보면 공부를 즐기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만 느껴 지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영재적 모먼트가 있어서 즐기며 해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내 아이에게서는 그런 영재적 모먼트는 발견하지 못하였으니.
이제 중학교 입학을 한 학기 앞두고 있는 초6 여름방학. 서서히 엄마의 마음에 긴장감이 찾아온다. 이제는 공부에 마음을 좀 더 써야 할 텐데. 게다가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 학군지와 비학군지 사이에 학업격차가 벌어진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어왔다. 학군지가 아닌 곳에서도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자녀가 '공부하는 중학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는 오늘도 고민하며 검색한다. 학군지의 부동산, 학군지의 학원들...
십여 년 전 이런 고민 없이 그저 살기 좋은 환경만을 생각하며 선택했던 신혼집은 어느새 구축이 되었고, 이제 학군지 부동산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당장 이사를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방학 동안 학군지의 학원이라도 보내볼까 하고 또다시 검색해 본다.
하지만 중학생 때 사교육만 의지하다 보면 고등학생이 되어서 절대적인 학습량이 많아지고 난이도가 높아질 때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기가 힘들기에, 이 고민 많은 엄마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보며 욕심을 부려본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되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워갈 수 있길, 그저 '시키는 대로 공부하는 중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중학생'이 되어가길... 플래너를 쓰면서 스스로 학습계획도 세워보고 자신만의 학습 루틴을 차근차근 만들어서 뿌듯함과 성취감도 맛볼 수 있길.
예비 중학생인 자녀가 '스스로 공부하는 중학생'으로 성장해 가길 바라며, 오늘도 엄마는 흔들리며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