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선택 과목도 상대평가를 한다고?
고교학점제 1년 차! 아직은 평화롭다.
1학년은 전교생이 공통과목을 동일하게 이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선배들의 9등급제 내신 시스템에서는 상위 4퍼센트 안에 들어가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데, 이제 5등급제 내신 시스템에서는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어가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단다.
입학생이 200명쯤 되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보았을 때 과목별로 20등 안에 들어갔다면 일단 한시름 놓을 수도 있다. 확실히 5등급제 내신이 9등급제 내신에서의 치열함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하지만.. 학교에서 앞으로 어떤 과목을 선택해서 이수할지 교육과정 안내를 받다 보니 이제 슬슬 고민이 찾아온다. 원래 선택이라는 것이 인간을 고뇌에 빠지게 만드는 것인데.. 인생최대의 고민이 찾아오고 있다. 물론 살다 보면 인생최대 고민이 계속 갱신되겠지만..
일반선택과목, 진로선택과목, 융합선택과목..
선택과목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다니. 대학생이 된 선배들은 수강신청을 할 때 서두르지 않으면 마감이 되기도 한다던데... 우리 고등학생들은 폐강되지만 않는다면 듣고 싶은 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니 그건 다행이다.
"선택과목? 그거 우리도 다 해봤어!"
현재 고2, 고3을 포함하여 최근 몇 년간 선배들도 2, 3학년 때 선택과목 시스템을 경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배들과의 큰 차이점이 있으니, 그 선배들은 진로선택과목이 상대평가등급이 아니라 절대평가(A~C)로 성적산출이 되었다는 것!!
선배들의 경우와 달리 고교학점제 하에서는 진로선택과목도 5등급제 상대평가로 성적산출이 된다는 사실!! 가히 충격적이다! 흥미와 적성에 따라, 희망 진로에 따라 듣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들으라더니, 상대평가를 한다고?
과목명을 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수학교과에서는 일반선택 과목으로 '대수', '미적분 I', '확률과 통계'가 있다. 이렇게 일반선택 세 과목만 수능 공통 시험 범위라길래 이전 선배들보다 수능 수학준비 부담이 줄어들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진로선택과목으로 '기하', '미적분 II', '경제수학', '인공지능수학'이 있고, 이 과목들 모두 상대평가를 한단다. 2학년 2학기~3학년 1학기에 이수할 수학과목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부담인데, 이걸 다 5등급제 상대평가를 한다니.. 어려운 과목은 수강생도 적을 테니, 그러면 변별력을 위해 내신 시험 난이도가 높아지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과목을 피해 갈 것인가? 그러기엔 고등학교에서의 전공 관련 선택과목 이수 여부가 대입에 반영된다고 하니 그럴 수는 없다.
학교에서도 교육과정 편성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에 가려면 '기하'도 이수하고, '인공지능수학'도 이수해야 할 것 같으니 이 둘을 다른 선택군에 배치해야 할 것 같다.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비하느라 다들 과목별 세부능력특기사항과 창의적 체험활동 특기사항을 공들여 쓰다 보니 생기부의 질적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방학을 온통 생기부 기록에 쏟아붓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ChataGPT의 영향으로 생기부의 글자 수준이 너무 상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학에서는 그럴수록 이수과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전공 관련 과목을 많이 이수할수록 대학에서 전공과목 공부를 잘 해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수는 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다면 이것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어쩌라는 건가.. 이수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무엇보다 진로선택과목은 말 그대로 진로에 관련된 과목을 선택해서 이수하는 것이다. 살짝 과장해 보면,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전교 1~10등 학생만 이전의 물리 II에 해당하는 '역학과 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과목을 신청했다면 그중에 딱 1명만 1등급을 받게 되고, 그중 1명은 5등급을 받게 된다. 그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수강신청을 해야 할 것인가.
그들의 등급을 변별해야 하는 교사의 부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전 수능 과학탐구 선택과목에서 킬러문항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1, 2학년 내신 등급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학생들이라면 고3 때 내신 등급을 지키기 위해 사회, 과학 융합선택과목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회융합, 과학융합 선택과목은 상대평가 등급이 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이런 선택을 반기지 않을 테지.
고3은 예로부터 수능을 준비하는 학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3이 되어서도 내신등급에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에도 고3 내신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신과 수능 출제범위가 대체로 일치할 때의 이야기다.
이제는 내신 따로, 수능 따로의 큰 부담을 안고 고3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서울대의 경우 대입에서 역량평가면접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를 이미 하기도 했다.
고교학점제 세대의 2028 대학입시를 앞두고 고등학교의 현실이 얼마나 살벌하고 팍팍할지.. 학생들과 교사들은 앞으로 2년 후가 두렵다.
그럼에도 우리 학생들이 자신의 고교생활과 자신의 꿈을 위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