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에 곰이라니》를 읽다가 떠오른 수학교육 이야기
《열다섯에 곰이라니》(추정경, 2022)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에서 '열다섯'은 15세, 바로 그 무섭다는 중2병 사춘기를 이르는 것이었고, 주인공 태웅이는 어느 날 이름 그대로 '곰'이 되어 방황한다.
곧 사춘기가 다가올 초등6학년 자녀를 위해 도서관에서 냉큼 빌려온 책이었으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엄마인 내가 먼저 빨려 들었다.
동물이 된 아이들이라니.. 곰, 비둘기, 하이에나, 기린, 나무늘보 등 학생들이 평소 성향에 따라 여러 동물의 모양으로 등장하는 스토리가 흥미진진했다.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성향의 학생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수업 안 들어가?"
"몸이 커서 어차피 못 들어가. 대신 창문으로 고개만 넣으면 출석 인정이래. 우리 반은 2층이라 창문에 얼굴만 걸치고 있으면 되거든."
"부럽다" (118쪽)
교실 안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창밖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출석인정을 받는 기린의 모습조차 현실에 있을법한 학생의 모습이겠구나 하는 마음에 짠하기도 했다. 그걸 은근히 부러워하는 친구의 모습까지도 현실 고증인 듯.
그런데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주인공 태웅이의 수학점수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수학교사 아니랄까 봐.
"56점이란 점수는 마치 수학과 '썸'을 타는 듯 애매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점수였다.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귀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한 사이의 결과물. 뜨겁게 사랑했다면 펄펄 끓는 100도를 찍었을 텐데, 어정쩡하게 수업 시간과 학원 시간에만 만나 잠시 데이트하는 사이에선 최선의 점수가 아닌가" (9쪽)
"억울하게도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닌, 놀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공부했다는 걸 증명할 수도 없는 난감한 숫자였다." (9쪽)
100점 만점에 56점이라고? 에이, 그건 거의 절반을 틀린 거잖아?
수학 단원평가를 치면 90점 이상을 척척 받아내는 초등학생들이 보기엔, 중학생의 56점이라는 수학 점수는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일 수 있다.
그렇다면 태웅이는 수학공부를 포기한 '수. 포. 자'인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름 학교수업시간과 학원수업시간에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태웅이 스스로 고백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태웅이의 수학점수는 어쩌다 56점이 되었을까? 고등학교 수학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걸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등비수열'이다.
(현재 고2. 고3들은 <수학 I>에서 등비수열을 배웠고, 현재 고1들은 <대수>라는 과목에서 등비수열을 배울 예정이다.)
등비수열은 말 그대로 비가 같은 수열이다. 이웃하는 두 항 사이의 비가 같다는 말은, 일정한 수를 곱해서 다음 수를 찾아간다는 말이다. 그 일정한 수를 '공비'라고 부른다.
첫째항이 2, 공비가 2인 등비수열이라면,
2,4,8,16,32,64,128,256,512,1024,2048...
이렇게 나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꿀타래의 가닥 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첫째항이 100이고, 공비가 0.8이라면 어떻게 될까?
100점
100X0.8=80점
100X0.8X0.8=64점
100x0.8X0.8X0.8=51.2점
수학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전에 공부한 내용이 심화되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면서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전 내용(선수학습)을 80퍼센트 정도만 이해하고 다음 학년 공부로 넘어가고, 거기서 또 80퍼센트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다 보면 80점, 64점, 51점.. 이렇게 점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학에서는 공비가 0.8이라면 무한히 반복할 때 그 값이 0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매 학기마다, 매 단원마다 80점 정도 받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고 여겼다가는, 어느 순간 수학이라는 과목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만 느끼게 된다.
태웅이의 수학 점수가 56점이라고 무시하거나 비웃지 말자. 그리고 수학개념과 공식들을 80퍼센트만 이해한 채 무리하게 선행학습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배우는 수학 개념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해 보자.
곰이 된 태웅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면, 특히 중학교의 연산과 도형의 성질들을 꼭 복습하고 고등학생이 되길... 그리하여 고3 때는 수학을 '뜨겁게' 사랑하고 펄펄 끓는 100°C를 찍을 수 있길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