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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RDY Mar 07. 2024

#1 사진 한 장이 가르쳐 준 행복

인생 사진 한 장이 생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과 장소에서였다. 내 마음을 위로하듯 햇살이 쏟아져 환하게 빛나던 어느 요양병원 병실에서 주어진 선물 같은 사진이었다.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이후 병원에서 예고 없이 오는 전화는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무덥던 8월 어느 날, 떨리는 마음으로 받은 전화는 엄마 상태가 걱정된다는 것이었고 보호자와 상담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식사를 거의 못 하고 계셨다. 며칠 전 면회 때도 걱정이 되어 영양제라도 놓아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도움이 안 되고 있었다. 눈을 뜨기도 힘든 것처럼 자꾸 눈을 감으셨고 말도 불분명하셨다. 아주 위급한 상황은 아니지만, 병원에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보호자의 결정을 듣고 싶어 했다.


식사를 계속 못 하시면 콧줄을 연결해서 영양분을 공급할 것인지,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 등을 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엄마는 연명치료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엄마의 뜻을 전했다. 콧줄은 엄마가 의식이 있으실 땐 엄마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엄마가 싫으시다면 하지 않겠다고 했다. 2년 전 대학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콧줄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나 고통스러워하셨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엄마의 동의 없이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은 고스란히 엄마 몫이니 당사자인 엄마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가족들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상담을 끝내고 엄마를 뵙고 왔다.  

    

인생 사진은 상담 후 며칠 뒤에 얻을 수 있었다. 남편과 언니 그리고 막내 손녀인 딸과 함께 다시 엄마를 뵈러 갔다. 약간 기운을 차리신 듯했지만 조용하게 눈을 감고 계실 때는 숨을 쉬시는지 확인하게 된다는 간병인 여사님의 말씀이 현 상태를 알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들처럼 엄마를 껴안고 볼을 만지고 수다를 떤다. 한 번 더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할매, 사랑해. 빨리 나아’하는 막내 손녀의 말에 ‘나도 사랑해’라고 나지막하게 대답도 해주신다. 몸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퇴원의 희망도 없는 병실의 공기는 언제나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간만큼은 엄마의 침대는 그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신다. 사진 속 엄마는 기운 없이 누워계셨던 엄마가 아닌 듯했다. 아마 자식들이 왔다고 온몸의 기운은 다 끌어모으셨나 보다.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찍힌 사진을 확인하며 가슴이 찡했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웃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 분위기도 아니었다. 머지않은 날에 엄마의 긴 인생 여정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사진 어디에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슬퍼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날 깨달은 것이 있다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말이다.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다는 것과 긴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있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그대로인 것이다. 죄책감에 빠져서 힘들어할 시간에 나는 어떻게 하면 주어진 환경에서 엄마와 잘 지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어떻게 면회 시간을 잘 활용할까 생각했고 병원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실 방법에 관심을 쏟았다. 직접적으로 간병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간호사, 간병인, 원무과에 계신 분들과도 좋은 관계를 쌓아나갔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엄마를 뵈면서 안타까움과 슬픔에 잠겨서 눈물과 울음으로 면회가 끝났을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지금을 즐겨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할 것’ 어디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은 그 자리에서 행복했다. 다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충만함이 있었다. 엄마를 뵈러 가면 사진을 많이 남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날처럼 빛나는 사진은 없는 것 같다. 마치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벅차오는 게 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세상은 어느 순간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와 행동을 바꿔보자. 우리 삶이 훨씬 행복할 것이다.    

  

내일도 나는 엄마를 뵈러 간다. 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항상 오늘은 좀 더 좋은 일이 있겠지 생각한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고,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음이 너무 좋다. 매번 인생 사진을 찍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순간이 축복임은 분명하다. 나는 사는 것이 즐겁다. 힘든 일도 있고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서 힘든 일이든 어떤 문제든 해결될 것임을 마음으로 믿는다. 즐겁게 살고 싶은가? 마음을 바꾸고 태도를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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