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알고리즘 시대. 우리는 수많은 알고리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며 듣고 있는 음악, 알고리즘의 파도 속에서 발견한 진주 같은 음악들.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하면서 이게, 알고리즘의 힘인가? 감탄하면서도 옛 MP3에 담긴 음악들이 떠오른다.
역시 대기업의 기술은 다른가, 어렸을 때 세뱃돈을 받아 큰맘 먹고 마련한 자그마한 MP3가 아직도 작동한다. 그 속에는 직접 하나하나 셀렉한 음악들이 잠자코 있었다. 한때 무한 반복하며 들었던 음악들. 이제는 가사 없는 음악을 선호하게 된 나로서는,그 시절이 많은 음악의 가사를 외우고 다녔다는 사실이신선하다.
지금은 듣지 않는 음악들이지만, 다시 들어도 여전히 좋은 노래들이었다. 주 단위로 업로드되는 인기차트 100에서는 그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몇몇 곡들이 있었고 그런 음악들은 한 곡만 듣기로 주구장창 들었다. 여전히 음악 취향이 비슷하지만 현재는 그 폭이 조금 더 넓어진 느낌이다. 지금의 음악 취향은 몇 명이, 얼마나 들었는지, 언제 업로드되었는지, 어떤 앨범 커버로 유입이 되었는지, 누가 어떤 느낌과 방식으로 해당 음악을 듣는지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MP3를 쓰던 그 시절의 음악들은 대부분 알 수 없다. 오로지 내 귀로 들리는 것과 간략한 제목 그리고 가수 정보. 그뿐이다. 다시 줄 이어폰이 유행하고 MP3 플레이어나 카세트테이프가 다시 떠오르는 것. 그 시절의 y2k 감성이 그리운 것도 있지만 어쩌면 알고리즘을 타지 않는 나의 고유한 취향을 따르던, 개성 넘치던 그때 그 시절의 방식이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취향', 진열된 것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기 너무 쉬운 세상이 됐어요.
한 BBC 인터뷰에서 김이나 작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게 취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냐면 단순히 취미와 여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의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취향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지키고 찾지 않으면 진열된 사람들, 진열해 놓는 것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만들어지기에 너무 쉬운 세상이 됐어요. 온통 알고리즘 투성이인 이 무서운 세상이라 내 성향, 취향에 맞추어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다 허구 같은 평균치에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알고리즘의 편리함에 그간 잊고 있었던 불편함이 떠올랐다. 사실 그 불편은 알고리즘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불편한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행동 방식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불편을 오히려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할 하나의 중요한 행동 방식이 되고 있다.
내 취향은 그간 내 뇌에 쌓인 데이터들이 결정하는 것이고 또 그것은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들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외부와 연결된 존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취향'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존재가 된다. 자신을 감싸는 수많은 이 세상의 데이터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하나의 방향성. 그리고 그 방향성은 고립된 것이 아닌 세상 속에서 얻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인의 고유성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속성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는 속성 중 하나로 머지않아 미래에서는 큰 무기로써 작용하게 될 것이다.
별과 하늘과 해, 오늘 또는 내일의 날씨, 도로 위 깜빡이는 신호등, 심지어 가족까지도. 내가 선택한 것은 없다. 그저 주어진다. 우주는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의 '나'가 선택하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고유한 선택으로서 하나의 특수성을 지니게 된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지금껏 대한민국은급격한 변화와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 속에는 집단주의 그리고 경쟁사회가 있었고그 결과로 우리는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를 얻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고 집단 속에서 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고 곧 이익이었다. 나는 이것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현재는 달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중요하게 여기던 평균치는 결국 AI가 대체하기 시작했고, 이에 고유한 색채를 지닌 '개인'이 주목받고 있다. 결국 연대라는 것도 모두 '개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집단이 만들어낸 연대는 겉껍데기에 불과할 뿐, 개인에서 비롯되지 못한 연대는 오래지 않아 흩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넷플릭스를 켜보자.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이름을 3명 정도 꼽을 수 있는가? 나는 그간 소홀히 했던 고유한 '취향'에 대해서 다시금 떠올렸다. 가까운 시일 내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그날은 베스트셀러에서 벗어나 수많은 책 사이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문체의 책 하나를 찾는 날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