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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길온 Gilon Feb 23. 2022

두 번째 산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


이 책의 저자는 인생을 두 개의 산으로 비유한다. 첫 번째 산은 개인의 성공과 자아실현이 자신의 주된 목표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산에서는 개인이 아닌 ‘이웃 &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작가는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 개인의 성공보다는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더 나은 삶이라는 의견을 책의 도입부터 마지막까지 고수한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생판 남인 다른 사람들을 위해 왜 헌신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일까?



데이비드 브룩스는 개인주의의 단점을 언급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개인주의는 모든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개인의 사회적 역할과 계급이 정해져 있던 중세 시대 봉건사회와는 달리 근대 사람들은 타인한테 물리적 그리고 심리적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실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비록 개인주의는 개인한테 선택의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했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들 간의 관계를 신뢰가 아닌 긴장과 불안으로 구성했다.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선택의 책임을 지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무의미함과 불확실성으로 뒤덮인 삶을 스스로 해석하는 모험을 떠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의 의견과 선택이 존중되기 때문에, 삶의 의미에 대한 정의는 개인의 가치관과 선언에 달려있다.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은 점점 모호해지고 많은 부분들이 상대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을 돌볼 의무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면 타인을 견제해야 된다. 개인의 성공에 또 다른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그 누구도 마음 놓고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결국, 개인주의는 고립과 불안만을 초래한다. 물론, 개인주의 사회에서도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듯한 행동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자발성에 의해 행해진 게 아닌 이익을 위한 또 다른 수단이었다면 그 선한 행동이 과연 진정으로 선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에 반해, 두 번째 산에서는 타인이 개인의 인생에 방해가 되는 성가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더 필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서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모두가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기 때문에 나의 헌신이 타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곳에서는 선이 또 다른 선을 낳고, 결국 개인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인해 기쁨은 일시적이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게 된다.



정리하자면, 작가는 개인이 자신의 성공만을 쫓을 때보다 주위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면 더욱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기에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어느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타인을 위한 헌신이 자발적일 때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런 의심의 여지없이, 남을 돕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순전히 자발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압박과 그리고 개인의 또 다른 이익 때문이라면 남을 돕는다는 일은 마냥 선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남을 도움으로써 다른 사람의 고통이 줄어들고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만약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신이 받은 도움의 원래 목적을 깨닫는다면 일종의 배신감을 경험할 테니 말이다.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 사람을 도와준 게 아니라, 그저 개인의 성공을 위한 많은 방법 중 선택된 한 가지였으니까.



가장 궁금한 것은 개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깊게 뿌리내린 지금 시대에 자발적인 헌신과 연대가 가능한가이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을까? 그 누가 다른 사람과 우리 전체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까. 타인을 위한 헌신은 자발적일 때 가장 빛이 나기 때문에 단순히 이것이 좋다고 헌신을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집단주의보다는 차라리 개인주의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위한 헌신은 사회를 전체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들을 불러온다. 근데 어떻게 하면 공동체 일원 모두가 타인을 위해 압박이 아닌 자발적으로 헌신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직은 나도 못 찾은 것 같다.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하고 찾아가려고 하는 과정이 더 나은 사회 구축의 핵심이지 않을까. 꼭 기억했으면 좋을 것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고 비록 그것이 자발적인 마음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도움이 우리한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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