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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길온 Gilon May 30. 2022

 느려

2022.05.30 - 파주 어느 풋살장에서 -

"길온아,

왜 이렇게 느려졌냐."


힘들고 피곤한 훈련  끝나고 오늘 새로운  시작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4 전까지 군대 동기들과 함께 열심히 일한  풋살장으로 집합했다. 간부님들과 다른 포대 사람들과 함께 재밌게 공을 찼다. 오늘도 수비 포지션으로 경기에 참여했는데 골도 넣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스스로의 플레이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경기장을 넘어 저 멀리 쉬고 있는 간부님이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길온이 왜 이렇게 몸이 커졌냐? 느리네.”


이번뿐만이 아니라, 저번부터 계속 간부님들이 풋살을  때마다 살이 쪄서 너무 느려졌다고 장난 같은 농담을 하시곤 했다. 익숙한 이야기이기에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려 들었는데, 알고 보니 오늘은  번도 얘기를 꺼내신 적이 없는 새로운 간부님 입에서  얘기가 나왔다. 아무리 느려졌다는 소리를 여러  들어도, 일종의 친밀감의 표시(?) 장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똑같은 말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1:0으로 경기를 이기고 교대  휴식을 취하면서 같은  동료한테 물어봤다.


"나 그렇게 많이 느려졌냐?"

"어. 상체는 움직이는데 느려서 다리로 공 못 받던데."


확인 사살당했다.  이상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적잖은 충격과 함께 곧바로 이성적 사고를 시작했다. 달라진 것은 겨우 2kg 체중 증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실력 부분에서는  많이 향상되었다. 계속해서 고민을 하던  대충  스트레칭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재빠른 뇌의 자기 합리화 결과였다.


믿기지 않는다. 느려졌다는 그 자체가 믿기지 않는 게 아니라, 느려졌다고 남들은 알지만 나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더 이상 느리고, 안 느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성찰력과 객관화 그리고 나의 메타인지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으로 확장되었다. 이제는, 뭐가 맞고 틀렸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뭐가 정답인지 보다 대립된 두 세계의 충돌이 더 크고 중요해 보였다.


과연 내가 느려진 걸까 아니면 타인의 주관적인 관점과 기준에 의한 오해였을까.


단순하게  문제를 봤을 , 2kg 무거워진 나는 2kg만큼 느려질 수밖에 없다. 속도 변화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느려졌다는   자체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나의 세계에서는 합의될  없는 타인의 피드백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눈으로  세상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없다는 사실은 명백히 알고 있다. 애초에 관점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느려졌다고 인정하는 순간  인생이  관점 혹은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아니라 온전히 다른 사람의 기준과 평가에 달려있다고 믿어지게 된다.    


 순간, 나의 주장이 아니라고 해도 타인의 생각을 믿어야 될지 아니면 상관없이 나의 생각을 고수해도 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느려졌는지, 아니면 느려지지 않았는지 나는 모른다. 애초에 내가 인지하지 못한 세계 밖 일이니까. 그러나, 확실한 것은 타인의 말로 인해 인지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만 항상 우리는 우리가 틀릴  있고 타인이  내가 맞을  있다는 사실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둬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느려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체감한 일이 아니어서 깊은 내면에서 동의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맞다고 인정하기는 싫다. 그렇다고 나는  느려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타인의 객관적인 피드백을 수용할 조그마한 공간을 남겨놔야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있어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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