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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Jul 08. 2022

# 정의의 시공간

- 우리가 거쳐온 그 어떤 시간, 공간에도, 정의는 없었다. -

[위도 x도, 경도 x도, 시간 x시 x분. 정의가 시작되는 시공간.] 


 “서울역 한복판, 흡연부스 옆 긴 줄을 거쳐 오늘도 하루를 버텨줄 밥 한끼를 얻어 돌아간다. 터벅터벅. 의자는 일찍 줄을 선 사람들이 선점했고, 겨우 계단에 앉아 숟가락을 든다. 202x년 x월 x일. 서울역 플랫폼 전광판을 통해 날짜만 알 수 있을 뿐, 이제 내가 며칠 있었는지 세는 것은 포기했다. 1987년, 정의라는 이름에 뛰던 내 가슴은 IMF 때 멈추었다. 그리고 고동치는 배가 이곳으로 날 데려왔다. 이 시간, 이 공간, 어디에서도 자유와 평등의 향기는 나지 않는다.” 


 서울역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봤을 법한, 서울역의 한 시민의 입장을 상상해 글을 적어보았다.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정의에 따라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복지를 누려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것이 지켜지지 않음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사람일 것이다. 


 세상은 평등하고 정의로울 수 없다고 혹자가 얘기한다. 지금 우리 시대의 상황은 수많은 불평등한 시공간의 축적이고, 이 속에 있는 우리는 축적된 불평등을 다 고칠 수 없는 개인일 뿐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정의를 포기하라고 한다. 


 롤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일본군과 엉켰던 진흙탕 속에서, 오히려 정의의 필요성을 깨닫고 정의를 꿈꿨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던진다. 


 X시 X분, 경도 X도, 위도 X도, 그 어떤 역사도 없었던, 그리고 지리적 차이도 없는 가상의 시공간. 진정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한 이 시공간에서 사람들이 합의할 만한 정의의 원칙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시공간을 ‘원초적 상황’이라고 한다. 


 이 시공간에서의 합의는 그 어떤 정보의 치우침, 권력의 치우침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오는 정의의 원칙, 법, 그리고 사회제도는 모두가 인정한 정의로운 결과일 것이다. 이런 상상은 우리가 헌법을 읽으며 막연하게 떠올렸던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이상형이 어떨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도와준다. 


 혹자는 이런 가정이 불가능한 현실인데, 상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되물을 수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평소에 1+1과 같은 산수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것과 같다. 실제 세상을 분자 단위까지 들여다보면, 그 어떤 것도 정확히 1로 나눠지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로 더해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1+1의 산수를 우리가 하는 이유는, 세상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꽤나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시공간, ‘원초적 상황’은 우리의 정의감을 설명하는데 꽤나 유용한 도구이다. 진정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시민이라면 어떤 제도와 법을 정하고 살아갈지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무엇을 정의롭다 생각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설명에서 나오는 ‘정의의 기준’이 우리가 앞으로 지침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 되어줄 것이다. 


 이 미지의 시공간과 추가적인 가정들을 더하면 나오는 정의원칙이 바로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원칙’과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그리고 ‘차등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사람들은 기본적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받고, 직업과 권력을 가질 동등한 기회를 가진다. 그리고 최소수혜자를 불리하게 만드는 불평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미지의 시공간에서 나오는 롤즈의 정의의 원칙들은 정의의 이정표가 되었고, 사회 곳곳의 제도에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이정표 끝, 20xx년 x월 x일, 서울역에서 벗어난 시민이 본인의 집에서 책을 펼치며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정의의 시공간"

아티스트 단디가 바라본 시공간


“Spacetime of Justice”

by artist Dan-D looked at space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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