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성경 필사 1년 차 아이넷 엄마, 무엇이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1. 영어성경 필사를 하면 영어실력은 는다.(집중과 순간 암기라는 조건이 붙는다)
2. 영어 필사만으로 극적인 실력 향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2020년 겨울,
영어 성경 필사를 해보아야겠다 다짐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잘하기를 계속 바라 왔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영어공부에 애를 쓰고는 있었다. 영어 원서를 읽어보기도 했고 집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영어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넷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부는 가능하지 않았다. 스스로 하는 영어공부는 여러 가지 환경과 상황에 따라 포기하게 되기 일수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던 것이 영어성경 필사였다.
'생명의 삶'이란 소스로 영어성경 필사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스케줄에 맞추어 필사를 하면 8년 안에 영어성경을 한번 필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정확한 끝이 눈에 보였다. 8년.
그날의 큐티 본문을 적으면 된다는 정확한 양이 주어졌다.
매일매일 챌린지를 하듯 채워나갔고 필사를 못하게 되는 날은 그날 큐티 본문이 어느 부분이었는지 범위를 적어주고 넘겼다.
나중에 노트를 돌아볼 때 그 부분을 찾아 필사할 수 있도록 말이다.
호보 니치 테초 A5노트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한 페이지에 딱 하루치 큐티를 필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영어성경 필사는 아니었다.
그 당시 아이들과 홈스쿨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하던 나는 새벽시간을 하나의 도피처로 선택했고 그 아까운 새벽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알차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궁리하며 새벽 루틴을 어떻게 구성할까 한참 고민하던 시기였다.
늘 하던 새벽 큐티 중 문득 영어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의 새벽 큐티 본문 말씀을 큐티 노트에 적어보는 건 어떨까 싶어 적어보기 시작했다. 하루에 딱 한 페이지에 그날의 큐티 구절이 다 들어갔다.
한글로 읽고 영어로 쓰면서 읽으니 말씀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어성경 필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장 쉬운 번역으로 된 성경인 Good News Translationd을 선택해 모르는 단어는 많지 않았지만 쉬운 스펠링들이 헷갈릴 만큼, 아이들을 키우며 내 머리는 굳어있었다.
한 달 정도 흐른 후, 필사 노트를 돌아보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필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습관적으로 성경을 보고 그저 베껴 쓰고만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오랜만에 펜을 잡고 길게 글을 쓰다 보니 오른손 중지에 굳은살이 배겨 아프기 시작했다. 일반 볼펜을 쓰다 필기감이 좋은 만년필을 구입했다. 앉아서 필사를 하는 동안 등도 굽는 듯하고 다리도 저렸다. 내가 이렇게까지 애써 필사를 하는데 시간 때우기 식의 필사가 된다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영어성경 필사로 정했으니 기왕이면 영어 공부가 함께 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때부터 다양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 필사를 하며 영어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찾아보았다.
그중 한 동시통역사 분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쓰는 것이 아닌 한 문장씩 암기하고 쓴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대로 실천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외워서 쓰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은 후 순간 암기를 한다. 그리고 종이에 적으려 펜을 들어 쓰기 시작하면 서너 단어만 생각나고 나머지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 머리가 이렇게까지 멈춰버린 건가.
여자들은 아이를 낳으며 뇌세포가 죽게 되어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았는데 아이넷을 낳은 내 뇌는........ 이미 평평해져 버린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또 어딘가에선 오히려 아이를 낳아 다양한 곳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엄마들의 뇌는 멀티태스킹에 용이하게 바뀐다고, 그 기능이 감퇴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기도 했었다.
아, 그렇다면 내 뇌는 기능이 감퇴된 게 아니고 아이들을 육아하며 멀티태스킹을 하는 쪽으로 더 발달이 된 것뿐이구나, 라며 스스로 위로하게 되었다.
심기일전 후,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한 문장 전체를 다 암기할 수 없다면 끊어 외우면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어느 부분에서 끊어야 하지?
우선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읽은 후, 끊어도 되는 적절한 점을 찾았다.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 Matthew 7: 14-
이 구절은 어디서 끊어야 할 것인가.
1차로 쉼표 앞에서 끊어준다.
그 후에도 그 끊은 문장이 외워지지 않는다면 that 앞에서 한번 더 끊어 주었다.
주어 동사 서술어 부분은 최대한 연결해서 외워 써보려 노력했다.
자연스럽게 문장을 보면 눈으로 한번 읽고 소리 내어 한번 더 읽어보며 암기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암기는 계속 달달 외우고 있는 것이 아닌 '순간 암기'를 말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1년간 영어성경을 꾸준히 했다.
그저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대충 하는 날들도 있었고 필사를 하지 못하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비어있는 페이지에 죄책감을 갖지는 않았다. 아무리 빨리 필사를 한다 해도 저 방법을 써서 필사를 하면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나는 새벽 6시면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정도 큐티를 하고 한 시간을 필사 시간에 투자를 해도 새벽이 모자라다. 새벽시간에 큐티와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습관들도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 시간을 뒤로 늦추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놓치지 않고 채워나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필사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필사를 매일 했는데 변한 게 1도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필사 5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우선 영어성경을 제외한 다른 원서를 펼쳐 보았다.
우리 큰 아이가 읽는 Dork's Diary를 펼쳤다. 잠자리 책으로 읽는 책이었는데 사실 필사 전에 펼쳐보았을 땐 영어 문장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몇 장 읽다가 포기한 책이었다.
영어 필사 5개월 후 그 책을 다시 펼쳤다. 어라. 문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이 책이어도 모르는 단어는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와 별 무리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Petey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애를 가진 한 남자가 태어나서 살면서 겪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Dork's Diary보다는 한 단계 높은 책이었다. 이 책도 재미있게 읽혔다. 심지어는 영어 원서를 읽으며 '감동'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영어 필사를 한 것이 헛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원서를 펼친 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알파벳이니라~라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다음 단계인 문장이 읽히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자 발전이었다.
그 확신은 영어성경 필사를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영어 필사를 지금도 꾸준히 해가고 있다.
영어성경 필사를 하게 되며 원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동안 욕심에 사두었던 원서를 하나 둘 읽어보기 시작했다. 청소년 대상의 챕터북들도 읽기 시작했다. 원서 읽기의 최종 목표는 Classic Book을 읽는 것이었다. 영어 성경 필사가 조금 익숙해진 후엔 '원서 읽기 챌린지'에 동참해 다양한 수준의 원서를 읽어보는 것을 시도했다. 지금 내 수준은 딱 미국 초등학교 5학년 정도까지였다. 그 이상의 책은 읽히기는 해도 문장 구조나 단어들이 너무 낯설었다.
다른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영어성경 필사 1년 후,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하지만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살을 빼기 위해선 적절한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식이요법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지 않는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다 보면 균형을 잃기 마련이다. 그렇게 뺀 살은 다시 요요가 되어 건강을 더 악화시키거나 안 좋은 결과를 나타낸다.
영어 필사만으로는 영어 실력이 느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영어 성경 필사 1년 후, 난 나에게 어느 부분의 공부가 더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가장 부족하다 느낀 부분은 문법이었다. 이 전까지는 왜 문법을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가 없어 문법을 공부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면 지금은 문법책을 보며 그동안 필사했던 구절들을 떠올려 보고 또는 새벽에 필사를 하며 당일날 공부했던 문법을 적용해보기도 한다. 또 남의 글을 베껴 쓴다는 수동적인 필사를 넘어 창조적인 글쓰기와 말하기가 필요하다 느꼈다.
영어성경 필사는 앞으로 7년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그와 함께 영어성경의 난이도도 조금씩 높여나갈 것이다. 지금은 가장 쉬운 GNT를 사용하지만, 조만간 NIV로 바꿀 것이다. 영어성경 필사를 시작할 당시 NIV를 사용했었는데 너무 어려워서 선택한 성경번역이 GNT였다. 얼마 전 아이들과 성경통독을 하기 시작하며 큰 아이의 성경인 NIV를 함께 읽기 시작했는데 성경이 생각보다 잘 읽히며 동시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 내가 늘었구나. 이제는 NIV를 필사해도 되는 시점이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성장이 너무나도 반갑고, 하루하루 쌓여갔던 습관이 미비하지만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참 대견하다.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내게도 작은 습관이 모여져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영어성경 필사 이외의 다른 부분들은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는 [습관의 힘 시리즈]를 연재하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