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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한 Jul 18. 2024

성장억제제가 꽃을 피운다

역경이 그대를 꽃피우게 하리라

 일하는 곳이 인구 소멸지역의 농촌이다 보니 함께 일하는 분들도 나이가 드신 60대와 70대 형님들이 많습니다. 같이 지내다 보면 형님들이 살아오면서 얻게 된 다양한 경험과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에 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 지반이 약해진 민가 주변의 산비탈에 있는 나무들이 쓰러져 피해목 제거를 위해 출동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피해목 제거 민원을 받아 출동한 어느 집 마당에 작은 대나무 군락이 있었습니다. 일조량과 영양 등 생장환경이 좋지 않아서인지 크게 자라지 못하고 왜소한 모습으로 서 있었고, 그중 몇 그루의 대나무에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모든 나무는 꽃을 피울 텐데 대나무꽃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형님들도 정말 보기 힘든 꽃이라며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죽을 때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죽기 전에 번식을 위해 마지막 힘을 내는 것이라고요. 밭농사를 지으시는 형님은 작물에 성장억제제를 주면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작업하러 가서 만난 대나무 꽃입니다. 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소박하고 수수합니다.


 집에 돌아와 대나무꽃 사진을 보다가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일단 대나무꽃이 보기 힘든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나무꽃이 피었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가 됩니다. 하지만 대나무가 꽃을 피우면 죽는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주기가 60년에서 100년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꽃을 피우는 주기가 길다 보니 나무의 생애주기에 한번 꽃을 피우는 것도 힘들 수도 있는 것이겠죠. 어찌 되었든 죽기 전에 한번 꽃을 피우고 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작곡가 윤이상 님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라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제 스승님께서는 이 구절을 사람의 인생에도 비유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해야 할 즈음에, 지금의 일이, 직장이 만족스럽지 않고 스스로 정체되어 있다고 느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다가 길을 잃었을 때, 내가 무엇에 재능이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몰라 방황할 때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는가 보다 하며 재미없고 무료한 인생을 받아들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됩니다. 이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찾은 한줄기 빛이 제게는 저 글이었습니다.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


 찾아보면 드물게 꽃을 피우는 나무는 대나무 말고도 많습니다. 나무들의 최대 지상목표는 번식이라고 합니다. 번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자원과 지혜를 이용합니다. 느리고 조용하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프로세스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꽃을 피워내고 씨앗을 날려 번식을 합니다.

 한 번 태어나면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숙명을 안고 사는 나무들이지만 봄이건 여름이건 가을이건, 죽기 전에 한 번은 꽃을 피웁니다. 인간이 비록 허점이 많은 동물이지만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을 잘 활용하면 자신의 꽃 한 번은 피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 꽃의 모양은 지구상의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할 것이고요.

 문제는 남이 내 꽃을 피워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이 피워주는 내 꽃은 조화나 마찬가지입니다.

향기가 나고 아름다운 색을 가진 나만의 꽃은 내 힘으로 피워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성장억제제를 맞고, 생명이 다 해감을 느끼는 역경을 이기고자 꽃을 피워내는 것이라면 인간은 역경을 이겨내야지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20대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30대에 직장에 들어가 경험을 쌓고 40대에 관리자가 되어 그동안 배운 것을 활용해 커리어의 정점에 오르게 되면 50대부터는 어떻게 이 직을 유지할 것인가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이 많은 직장인들의 고민입니다. 저도 40대에 열심히 일을 하며 인정을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내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느냐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막상 허무해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색과 모양의 꽃을 피우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됩니다. 인간이 그렇게 태어나지도, 살아오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저는 아직도 제 꽃이 다 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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