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바람 Sep 17. 2022

걷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스토리텔링–조선을 담은 안동

짧은 안동 여행

속리산을 방문했던 참에 내쳐 안동을 보러 갔다. 어쩐 일인지 안동은 방문해 본 적이 없다. 지도를 보니 속리산에서 안동까지는 무척 가까워 보였다. 그런데 웬걸 내비를 찍어보니 2시간 거리이다. 법주사에서 속리산 IC까지는 한적한 국도이고 이내 30번 고속도로인 당진 영덕 고속도로를 탄다. 고속도로에 화물차가 많다. 왜 그럴까? 대구, 포항, 부산 방면으로 가기 위해서 동서고속도로인 30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화물차가 많은 것이다. 중부내륙이나 중앙고속도에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안동의 몇 군데를 보기 위해서 방문 계획을 세웠는데 처음 가볼 곳으로 부용대를 내비에 찍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내비가 국도로 가란다. 내비 말을 잘 듣는 나는 고속도로 IC를 나와서 국도로 접어든다. 아마 국도로 가는 것이 고속도로보다 조금 빠를지 모르지만 길이 험하다. 시골마을의 작은 소로를 지나고 높은 산고개를 두 개나 넘어서 어찌어찌 하여 부용대 근처의 화천서원에 도착했다. 화천서원은 작은 서원이다. 서원 유지가 어려운지 서원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단다. 화천서원 옆길로 잠깐 오르니 부용대다. 부용대는 안동 하회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낙동강 변의 높은 절벽이다.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회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오밀조밀한 마을의 기와집들과 강변을 따라 심어놓은 방풍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휘어 감고 흐르면서 감싸고 있는 넓은 평지에 조성되어 있고 주변은 논, 산,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더운 여름 날씨지만 부용대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다.   

 

[그림 1] 부용대에서 바라다본 하회마을 전경. 낙동강이 휘어 감고 돌아가는 너른 터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부용대를 다 보고 내려와 하회마을 주차장에 도착하니 점심때다. 안동에 왔으니 안동의 유명한 먹거리를 먹어보기로 한다. 점심은 안동 고등어구이, 저녁은 안동찜닭 거리에서 먹기로 했다. 1박 2일의 여행이라 헛제삿밥과 안동 한우는 먹을 시간이 없다. 주차장 근처에 형성된 하회장터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조금 이른 시간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곧 여러 여행객들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홀로 여행을 온 젊은 친구들도 보이고, 외국인들도 더러 보인다. 혼자 밥 먹으러 들어온 젊은이에게 서빙 아주머니가 눈치를 준다. 곧 많은 손님이 들어올 텐데 혼자 식탁을 차지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홀로 여행객이 늘어나는데 혼자 먹는 여행객을 배려할 수 있게 해야겠다. 안동은 내륙이라 옛날부터 염장한 자반고등어를 먹었나 보다. 냉장고가 없으니 부패를 막기 위해서 염장한 고등어를 먹은 것이 지금은 안동 자반고등어구이로 유명해졌다. 하회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 하회 장터에서 전기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입구까지 들어간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을 보존하려는 고육책이다.      


    [그림 2] 하회마을의 골목길과 제비.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멋들어진 한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긴 골목길은 왼쪽으로 돌면 삼신당 신목이 나온다.

    

하회마을은 대갓집 한옥과 일반인의 한옥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고 잘 보존된 마을이다. 마을의 초입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너른 길은 집들 사이의 좁은 길로 이어진다.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한옥을 개방해 놓았다. 우리는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구경을 한다. 어느 대갓집 처마에 새끼 제비들이 이소를 하여 앉아있다. 옆에는 진흙으로 지은 비어있는 제비집이 휑하다. 주변의 논이 많으니 제비가 많은가 보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제비들이 날고 있다. 어린 시절 남도의 고향집에서 보았던 그 제비다. 제비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나만 변했나 보다.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니 각 집마다 특색이 있다. 한옥의 처마의 모습, 가옥의 배치가 저마다 다르다.


기와집 자체도 아름답지만 둘러쳐 저 있는 담장, 뒷 곁에 서 있는 굴뚝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와의 사이 사이 골에는 작은 양분을 취하면서 와송과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롭다. 삼신당 신목 골목길의 끝을 돌아서면 삼신당 신목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면서 서 있다. 수령이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당산나무이다. 사람들의 소원 기도문이 신목을 한 바퀴 돌면서 걸려있다. 사람들의 기원이 저리도 많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도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가지를 넓게 펼치고 있었는데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선사했다. 어린 동생을 나무 아래 내려놓으면 기어 다니면서 지나가는 개미를 주워 먹곤 했는데 삼신당 신목을 보니 그때가 선하다.  나도 동생을 따라서 커다란 검은 개미의 꽁지를 빨아먹곤 했다. 개미산의 시큼한 맛이 지금도 선하다.


[그림 3] 한옥 굴뚝, 기와에 피어 있는 와송과 삼신당 신목.     


안동 하회 마을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쉬엄쉬엄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짧은 오후 시간에 급하게 마을을 구경한다. 누가 떠밀지도 않는데 너무 급하다. 가끔 그늘이나 카페에서 쉬었다가 느릿하게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오전에 부용대에서 내려다 보았던 낙동강 강가로 내려가 보았다. 물이 깊고 물살이 빠르다. 어린 시절 익힌 물수제비를 던져 본다. 가장 멀리 나간 물수제비는 일곱번을 튕긴다. 막내 딸아이가 연신 넙적한 돌맹이를 주워다 준다. 너무 세게 던졌는지 어깨가 뻐근하다. 아내와 딸아이가 던진 물수제비는 튕기지를 못한다. 겨우 두번 세번이 최고다. 어린 시절에 물수제지를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가끔은 아날로그적 삶도  필요하다.


하회마을 근처에 병산서원이 있다. 병산서원도 낙동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큰 서원이다. 외국인들이 서당의 툇마루에 앉아서 쉬고 있다. 아마 옛 선비들이 이 툇마루에서 서책을 펼처놓고 공부를 했을 것이다. 툇마루에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공부하다 가끔 강과 앞산을 바라다보면 눈의 피로가 씼겼을 것이다. 병산서원은 배롱나무(목백일홍)가 일품이라고 한다. 서원 주변이 온통 배롱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꽃이 한창일 때가 아니지만 분홍색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서원의 정문에는 팔괘가 그려진 비석이 서 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건곤감이 괴는 태극기에 그려져 있어 익숙하다.  


안동에 큰 하회마을과 큰 서원들이 즐비한 것은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낙동강 주변으로 생각보다 많은 논이 형성되어 있어서 양반들의 경제적 기반이 튼튼했을 것이다. 농토가 넓고 햇볕이 좋으니 소출도 높았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물이 많다는 것이다. 낙동강과 그 주변의 천이 많아서 맑은 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농경에는 물이 최우선인데 안동 근처에는 물이 흔하다. 세 번째는 외부의 간섭이 거의 없는 내륙지방이다. 외부의 침입이 있어도 안동은 보존될 수 있었을 것이다. 네 째는 학문을 하는 양반들이 많아서 조선 중기, 후기에 많은 관료를 배출하였다. 조일전쟁 때 유성룡은 영의정을 지내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번 째는 학문을 하려는 우수한 인재들이 영남지방에서 몰려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서원이 많고 기와집을 위시한 토속적인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림 4] 병산서원 대문과 서원 둘레에서 꽃을 피운 배롱나무


저녁에는 안동댐 아래에 조성되어 있는 안동에서 유명하다는 월영교를 걸어 보았다. 낙동강을 가로질러 사람만 다니는 나무다리를 걸쳐 놓았다. 월영공원과 안동민속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데이트하는 남녀, 운동하는 시민, 여행객이 운치 있는 다리를 보기 위해서 걷는다. 달이 떠 있었다면 월영교 가운데 서 있는 정자에서 달맞이를 했을 것이다. 달이 없어 몹시 아쉽지만 나무 난간에 예쁜 거미들이 경쟁하듯이 거미줄을 치고 붙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 누구도 거미줄을 해지치 않는다. 바쁜 거미를 뒤로하고 안동과 작별을 고한다.    



안동에서

2022년 8월 17일


작가의 이전글 걷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스토리텔링-속리산 법주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