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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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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Feb 27. 2024

바라나시 화장터

 인도 여행하면 다들 무엇이 생각나는가? 나는 갠지스강이 떠올랐다. MBC 여행예능 프로그램 「태계일주」에 나왔던 바라나시가 궁금했다. 힌두교인들은 바라나시에서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는 게 소원이라지 않는가. '인도? 거기는 돈을 줘도 안 간다. 더럽고 위험하고.', '너 유튜버 할 거냐? 조회수 뽑으려고 가는 곳 아니냐' 등 주변 사람들의 멸시(?)를 무릅쓰고 인도에 놀러 간 이유는 사실 갠지스강에서 인도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라나시의 모습은 여러 유튜브 영상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바라나시로 들어가는 초입은 걷기도 힘들 정도의 엄청난 인파와 차량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어렵사리 갠지스강 유역으로 들어온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매연, 그 와중의 호객행위, 가축들의 분변들로 정신이 쏙 빠진다. 골목은 어찌나 좁은지. 일부러 이런 고생을 하려고 왔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감당해야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간 것도 아니고, 다행히 난 비위가 좋은 편이라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사람의 시선과는 다르게, 바라나시는 인도 사람들의 로망이다.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죽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다. 갠지스 강가에는 화장터가 있다. 이 화장터는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화장터에 시신이 도착한다. 시신을 천으로 감싼 다음, 나무장작을 쌓아 올린 다음에 불을 붙인다. 그래서 망자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지 않아도 되었다.


 바라나시 화장터는 우리나라 장례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장례식장이 외진 곳에 위치한다. 유족이 아니면 다른 사람의 장례를 구경할 일이 없다. 그리고 유족은 고인을 위해 슬퍼하는 게 예의다. 반면 인도의 장례는 누구나 구경할 수 있다. 관광객들도 멀찌감치서 시신이 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에 화장터가 있다.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게 있다. 장례에서 절대 울면 안 된다. 고인이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아이들은 화장을 할 수 없어서 강가에서 간단한 의식을 치를 후 물에 흘려보낸다고 한다. 눈을 감은 어린 소녀와, 그를 둘러싼 유족들의 모습을 보았다. 울 수도 없이 소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모습. 겉으로 슬픔을 표현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국적이 달라도 이해할 수 있다. 고이 잠든 표정을 한 소녀 옆에서 합장하고 명복을 빌었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가장 의아했던 건 바로 옆에 있는 신축 사원이었다. 바라나시 건물들은 모두 낡았다. 도시 자체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도시라 난개발 되어있다. 반면 최근에 새로 문을 연 이 사원은 크고 화려해서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선다. 이 사원에서 사람들은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는다. 젊은 남녀가 이곳에서 사진 찍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좀 비슷하다. 여자는 골반을 살짝 뒤로 빼고 요염한 포즈를 취한다. 남자는 색감 보정한 필터를 사용해서 여자친구의 모습을 여러 번 촬영한다.


 사원뿐만이 아니다. 화장터, 옆에 사원, 사원 옆에 빨래터. 빨래터 옆에는 목욕하는 사람들, 목욕하는 사람들 옆에는 사생대회 나온 학생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에 양념처럼 흩뿌려진 사기꾼들. 이 삼라만상이 한 공간에 있다. 이게 바로 바라나시.


 묘하다. 슬픔이 있는 화장터와 기쁨이 있는 사원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성스러우면서 세속적인, 다양한 면을 가진 공간이 바라나시였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사는 세상도 바라나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날, 코미디쇼를 할 수밖에 없었던 희극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냥 슬퍼할 수도, 기뻐할 수도 없는 게 인생사. 나라고 다르겠나. 엄마가 암수술하던 그날 아침에도 토익학원에 가서 공부를 했다. 이직 면접 직후, 회사에 돌아가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같은 모임자리에서 왼쪽친구에게는 위로를, 오른쪽 친구에게는 축하를 해주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삶도 여러 모습이 한 공간에, 한 시점에 펼쳐진다.


 희로애락은 함께 있다. 그래서 슬픈 일이 있다고 해서 마냥 슬퍼하지도, 기쁜 일이 있다고 해서 영원할 듯 기뻐할 수도 없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진다. 바라나시의 삼라만상을 보면서 느낀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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