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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역이민자의 "꿈"

2024년 여름 12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의 마더로드라 불리는 루트 66을 따라 북미 횡단 여행을 떠났다.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장거리 로드트립을 하는 것은 어느덧 우리의 전통이 되어버렸다. 2015년 캐나다, 2016년 호주,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장거리 로드트립이다. 하루 평균 6시간씩 운전하면서 총 약 1만여 km를 여행했다. 미국 중부지방을 지날 때쯤엔 음악도 지겨워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이때 인상 깊게 청취한 책이 바로 김혜남 선생님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었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해남 선생님은 2001년 마흔세 살에 몸이 점점 굳어 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병마와 싸우며 경험하고 느낀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로 정리하여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좋은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떻게 살까?' 미국을 달리며 많이 생각했다. 결론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는 나의 "일상"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어바웃타임'에서 시간여행 능력을 가진 아버지 빌은 같은 능력을 물려받은 아들 팀에게 죽기 전 자기가 찾은 "행복의 공식"을 알려준다. 시간여행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똑같이' 두 번 살아보라고 말이다. 그러면  첫 번째에선 긴장과 걱정으로 보지 못하고 놓쳤던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이 영화의 초반부를 다시 생각해 보면 팀이 본인의 가족들을 묘사하고 회상하는 신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일상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팀은 매일 아버지와 함께 탁구를 치고 가족들과 해변에서 티타임을 가졌다. 금요일엔 가족과 항상 영화를 본다. 날씨에 상관없이 말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보려고 여러 번 노력했던 아버지의 빌이 내린 결론은 결국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내가 캐나다로 이민 간 첫해 겨울에 개봉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 100번은 본듯하다. 대본을 프린트해서 영어공부도 이 영화로 했다. 


뒤 돌아보면 영화 속의 팀처럼 나도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바꿔보려 부단히 노력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꼭 이민생활자가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 회의감 같은 게 드는 시기가 누구나 한 번쯤은 오기 마련이다. 나는 머나먼 타지에 그런 감정을 강하게 느낀 적이 한번 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그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유년시절이 있었고,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든든한 가족들이 곁에 있었다면, 그래서 내가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사랑했다면 굳이 더 나은 인생을 찾아 이 머나먼 나라 캐나다까지 날아오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말이다. 어릴 때는 내가 모험을 좋아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절반정도는 맞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구질구질했던 나의 일상을 어떻게라도 조금 바꾸어보고 싶어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다. 


필리핀 카모테스섬 여행 때 내 나를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나를 쫒아다니던 아이들, 이런저런 장기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늘 행복하다. 그들의 특별한 능력은 항상 자기가 재밌는 일들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것에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볼 때는 보는 이도 정말 행복해진다. 어른 시각에선 가끔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소파를 넘고 싱크대에 올라타기라도 하면 아이가 다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자꾸 "안돼"라는 말을 반복한다. 외국 사는 동안 한국과 현지 부모들의 훈육 방법을 비교해서 보다 보면 한국 부모들은 유독 "안돼"라는 이야기를 더 자주 하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배운 육아법의 핵심은 아이들 주변에 위험요소를 모두 차단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였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본 아이들은 넘어지면 어떤 기분인지를 안다. 하지만 부모의 걱정과 보호 속에서 한 번도 넘어져보지 않은 아이들은 '넘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은 강하게 가지고 있지만 그게 왜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아이들이 넘어지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때 그들이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때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도전을 지지하고, 울며 안기면 따스하게 토닥거려 주는 것이다.


어릴 적 많은 제한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결국 성인이 되어 본능을 거세당한 부자연스러운 어른이(어른+어린이)가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부정하고 회피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뒤늦게 나이 들어 모으는 레고 같은 장난감을 모으는 건 그 시절 발현하지 못했던 애정에 대한 반증이다.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경험해 본 필리핀, 호주, 캐나다, 미국 모두 그 특징이 너무 다르다. 그 나라들의 역사, 기후를 알고 현지인들이랑 직접 대화해 보면 그 나라달의 문화나 라이프스타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당연히 나라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으니까. 작은 개구리로 태어난 내가 살던 우물 안을 뛰쳐나오기란 참 쉽지 않았다. 뛰쳐나온 뒤론 더 쉽지 않았다. 우물 안과 밖 중 어디가 더 좋다고 단순하게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또 우물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다. 한국에서 내 꿈이 있다면 여러 외국생활하며 경험하고 배운 다른 문화들을 공유하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 안에서 자기의 본능(혹은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어른들의 놀이터 같은 공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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