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파래가 알려준 인생의 비밀

연구원들이 실험 노트를 쓰는 이유?

파래로부터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다.


대학원 시절 내 실험 대상은 '파래'였다. 밥상에서 먹는 그 흔한 파래. 싱싱한 파래를 직접 따러 포항 바닷가를 한 달에 두 번씩 갔다. 도착하면 작업복 (장화 + 멜빵 세트)을 입고 무섭게 파도치는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간다. 얕은 바닷속 바위에 억세게 붙어있는 파래를 머리끄덩이 잡듯 뜯어 통에 마구 담는다. 그새 주변에 모인 관광객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한 채 실험실로 빠르게 싣고 간다.

포항 바다에서 파래를 뜯고있는 실제 모습

들고 온 파래는 은박지를 조금 덮고 꼬들꼬들할 정도로 말린다. 말린 파래를 바닷물에 넣어 손으로 미친 듯이 쥐어짜 주면, 파래가 괴로워하며 씨앗(일명 '포자')을 뿜어낸다.

실제 실험실에서 꼬들하게 말린 파래

그런데 이상하게 어느 날은 씨앗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또 어느 날은 아예 안 나오기도 했다 (포자는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선배에게 이유를 여쭤보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실험 노트에 모든 상황을 써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이후, 나는 실험 노트에 파래를 뽑으러 가기 전날과 당일의 날씨, 바다의 상태, 파래 색깔 등을 모두 적었다. 두 달 정도를 쓰고 나니 신기하게도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파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씨앗을 내보내는 특징이 있다. 전날 비가 많이 오거나 파도가 많이 치면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파래가 바다로 씨앗을 다 뿜어내, 실험실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험 노트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냈고, 이런 일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었다. 실제 연구원들이 실험 노트를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실험을 재현하기 위해 이다.


나에 대한 실험노트를 쓰다.


인생이란 (파래가 아닌) '나'를 실험 대상으로 하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 들 때가 많다. 이 여정 내내 최상의 컨디션으로 원하는 목표를 모두 수행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내가 하루 중 언제, 어디에서 또는 수면시간이 얼마나 됐을 때 가장 좋은 컨디션인지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다. 바로 나에 대한 실험 노트를 쓰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단순한 파래와 달리 최상의 조건을 재현해 주었다고 해서, 최상의 결과물이 나오진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기록을 통해 조건을 찾게 되면 최상의 하루를 재현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름 자체 모자이크 중

직접 실험 과정을 써보면 실제 실험실의 연구원이 된 듯하다. 이 실험노트는 본인의 생각을 적는 일기도 좋고, 또는 나만의 단기/장기 프로젝트 등을 기록해도 좋다. 나는 30일 간 '하루 한 장 글쓰기', '영어 패턴 4개 외우기' 등을 실험 노트에 썼다.


실험 노트 쓰는 원칙과 방법


실험 노트를 쓰는 원칙과 방법은 사실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아예 감이 안 오는 분들을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원칙과 방법을 적어보려 한다.


* 작성 원칙

1. 매일 기록 (실험 노트의 연속 기재)

- 실험을 하지 못한 날은 간단히 사유 적기 (ex. 술병남)


* 작성 방법

1. 제목, 일자 기록

2. 정해놓은 항목 채우기 (ex. 오늘의 기분, 수면 시간, 마신 물의 양, 장소 등)

3. 실험 내용과 후기 쓰기 (반복될 경우 특이사항만 적기)

- 독서: 마지막 몰입 30분 25분부터 잡생각이 들기 시작함. 20분 내로 줄여 집중하여 읽어보기. 점심 먹고 읽으니 집중 잘되는 듯.

- 명상: 10분 (유튜브 마OOO tv)  가이드라인보단 잔잔한 음악이 더 집중 잘됨.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명상이 가장 즐거움. 바닥보다 의자가 더 편함.


다시 말하지만 이는 한 예시일 뿐이다. 사람마다 본인 스타일로 적고 싶은 내용을 적어보면 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매일 꾸준하게 적다 보면, 실험 대상인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에 좋다. 실험 노트를 쓰다 보면 나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지지 않고, 최상의 조건들이 주는 과정 자체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로, 실험 노트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매 가능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