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어리 Oct 30. 2022

에밀리 디킨슨

그 누구도 아닌

2017년 2월, 뉴욕의 모건 도서관&박물관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조명한 전시를 보았다. 19세기 미국의 천재 시인이자, 은둔의 여류 작가라 알려진 그녀의 시집과 서신 원본들, 사진들, 소장품들이 함께 전시된 그 전시의 제목은 그녀의 시 한 구절을 딴 것이다. "I'm Nobody! Who are you?"


당시 고답적이고 억압적인 청교도적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종교적 전통에 저항했으며 친밀한 소수의 지인들과만 교류했생전 천여점이 넘는 시를 집필했지만 소수의 시집만 공식 출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공개된 시집들은 그녀의 사후 여동생이 다락방에 감춰져 있던 원고들을 발견해 출간한 것이라고 한다.


40대 이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의의 질병으로 모두 곁을 떠나고, 건강이 악화되자 매사추세츠주의 생가에서 정원을 가꾸며 은둔했다고 한다. 생전에는 시인이라기보다 정원사이자 식물채집가로 더 알려졌을 정도였단다. 전시실에는 그녀가 채집해 말려 붙인 '압화' 앨범이 디지털화되어 함께 전시된다.


시인과 그녀의 지인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와 디게레오타입 사진들, 해독이 쉽지 않은 필체로 쓰인 필사본들, 시를 투고했던 신문 지면, 지인들에게 보냈던 서신과 함께 동봉했던 머리카락까지... 넓지 않은 전시 공간은 작은 크기의 유물들, 전시물들에 담긴 한 시인의 삶의 궤적이 궤적이 담겨있다.


미국 최초의 여자대학교로 알려진 마운트 홀리요크 신학대학(Mount Holyoke College)을 중퇴하고 자택에 은둔하며 글쓰기에 몰두하던 시절, 그녀의 시는 파격으로 가득하다. 독실한 크리스천과 회의주의자 사이를 오갔던 그녀의 시에 보수적인 학교의 분위기가 그녀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 창작에 방아쇠를 당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6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그녀는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위치 지우며 살아갔다. 그것을 그저 시인의 내향적인 성향 탓이라 돌릴지, 여성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해 따가운 눈총이 여전했던 당대의 사회 분위기로 돌려야 할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무언가로 규정되고 이름 불리길 거부하는 그녀의 시 한 편은 끊임없는 경쟁과 야망이 들끓는 21세기 관객들에게 진한 인상을 남긴다.


1847년 17세의 디킨슨의 초상이 담긴 다게리레오 타입
디킨슨의 사후 1896년에 출간된 시집들 중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