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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유 Aug 15. 2022

취향 : 趣向

제련한 나의 생각들이 취향에 그대로 투영된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마음가짐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시간이 흐를수록 주위에 격변하는 인간관계, 업[業]의 대한 생각, 미래, 구상하는 것들이 많이 바뀌다 보면 이 단어가 가진 속 뜻들을 많이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만약 지금 이 단어를 통해 무엇인가 정확히 잡히지는 않지만 언제 물렸는지 모를 모기처럼 어딘가가 가렵다면, 아주 조금의 아주 약간의 그럴싸한 말이다.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건 아마도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아주 좋은 ‘징조’이며 무언가를 계속 꾸준히 지속해왔다는 뜻일 테니 기분 좋게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마음이 하는 말들이 곧 나의 생각이 되고 나의 행동이 된다.

내가 내일 일찍 일어나 많은 업무들을 수행하고 뿌듯한 오전 일과를 보내고 싶다면 내일 아침 알림을 맞추고 잠에 드는 것이 우선순위인 것처럼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해야만 할 때 나는 생각을 우선시한다. 그리고는 ‘그냥 한다’.

‘그냥 한다’라는 행동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두려움, 실패, 부끄러움, 모멸감, 등등 겪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그대로 등에 업고 행동을 옮겼기에 가능한 말이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하는 생각들, 마음이 나에게 전하는 말들이 곧 나의 행동에 투영되고 이런 부분들이 그대로 취향에 반영된다. 그리고 이 취향들은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는 너만의 ‘태[態]’가 된다.

컨셉슈얼한 카페가 한 곳 뜨기 시작하면 냅다 따라 하는 카페 문화처럼. 누군가의 취향이 멋있고 어딘가 ‘힙’해 보이고 섹시해서 타인이 따라 한다고 한들 쉽게 몸이 행동하진 않는 것처럼. 취향이란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습득 혹은 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절대 아니다.

유일한 그 사람만이 사유하고 담아낸 생각들과 마음 그리고 몸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만의 바이브가 형성되는 것 아닐까.  일체유심조라는 단어를 이런 관점에서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개인의 존재를 표출할 수 있으며,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유일한 척도. 취향[趣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굳이 따지자면, 따분하게도 굳이.


우리 인간은 모두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물론 자세히 하나하나 눈, 코, 입, 성격. 피부 , 트라우마, 바이브, 톤 앤 매너와 같은 모든 형태를  파헤치면 결국 모든 것이 다르겠지만 결국 어느 정도의 구성은 같은 형태를 띌 것이다. (지극히 개인의 입장을 허락만 해준다면)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린 이 우주에 먼지만큼 정도 되는 존재이려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나’ 다움을 -표현-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취향[趣向]이 척도이기 때문이다.

나를 타인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평범함과 특이함 사이. 바로 특별함.

나의 외적인 모습만을 보고 나라는 사람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을 통 틀어서 말이다.

취향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유일한 도구이자 수단’이다.

내 취향의 나침반이 하필 그 수많은 향수들 중 르 라보 상탕33에 반응했다는 것.  

그 많은 클래식 음악 중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에 녹아버렸다는 것.

예를 들기 위해서 좀 더 많은 비유를 해보자. 맥도날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맥도날드 불고기버거에 라지 세트, 음료는 환타, 감자튀김 대신 치즈스틱 변경 그리고 스낵랩 하나.

이렇게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전 세계 인구를 두고 설문조사를 한다면 꽤 많은 수치가 기록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한 명도 보질 못했다.

아주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 개인의 취향이 되고 다양한 취향이 모여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이는 곧 다시 ‘지극히 개인의 취향’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된다. 같은 맥락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

혹은 비 오는 날은 누자베스의 음악을 듣고 출근길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3악장을 듣는 사람.

자주 가는 카페에 들어서면 가방을 먼저 놓고 뒷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카드와 쿠폰만 꺼내가서 주문하는 사람.

대중교통을 타기 전엔 미리 카드를 꺼내 놓는 사람.

우회전 차량이 양보해주면 가벼운 목례를 건네는 사람.

늘 인사하고 항상 ‘제가 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전하는 사람.

비 오는 날엔 항상 르 라보 무슈드쉔을 뿌리는 사람

고민하고 싶지 않을 땐 상탈 33 를 뿌리는 사람

실내에 들어서면 늘 화장실을 가서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는 사람. 르 라보 히노끼 향으로.

이러한 선택의 연속은 우리 인간 스스로가 택한 일들이다. 어떠한 끌림에 의해서 또는 본능일지도 후천적 경험일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일은 ‘하필이면 그때 그 향수를 뿌린 날 기분 좋은 일이 생겨서 또 같은 상황이 올 때 뿌리면 그때와 같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생긴 후천적 경험의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톨스토이가 ‘취향이란 인간 그 자체다’라고 쓴 문장을 읽으면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게 아닐까

.

하나만 파는 것이 아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분야의 낚시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지 하지 않을까. 무엇을 잘 잡는지, 언제 잘 잡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깊어지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 -스피노자




다양한 취향을 많이 만드세요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나만의 다양한 취향의 시작점은 장마철 내리는 비의 장마전선처럼 나의 중심축을 기준으로 여러 갈래의 길을 터 놓고 활주로를 열어주었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자.라는 일념 하나로. 사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주위 남들보다 매우 빠른 길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자존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채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위에서도 그런 피드백이 반영되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한다. 넌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찾았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직업으로 삼아? 와 같은 클리세적인 질문들이 오고 갈 때면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한분 있다 바로

내가 존경하는 카페 사장님이시다. 예수님 믿으래 그분 믿을래?라고 질문한다면 난 그분을 믿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한마디 한마디가 국가대표 양궁선수가 카메라가 달린 정 중앙 과녁에 적중하는 듯한 조언들과 말들 톤 앤 매너까지.

그분이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개인의 취향을 깊게 파기 위해서는 일단 넓게 두루두루 이것저것 헤봐야해요 마치 낚시하듯이. 실내 낚시장 말고 바다에서 하는 것처럼요’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나를 관찰해보았을 때. 지금껏 나 자신에게 대화를 걸어본 입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나에게 딱히 눈에  확 표출되는 뛰어난 재능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그저 호기심 많고 재밌는 일 관심이 가는 일들을 찾아 경험하고 느낄 뿐이다

애매한 재능으로 이제껏 내가 많은 것들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것들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의 애매한 재능이 관심과 취미가 되고 이 모든 것이 모여 지극히 개인적인 ‘나’가 형성됐다

나는 하나의 분야를 끝까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정도로 끌고 갈 가능성 또는 잠재력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재능은 나에겐 아무리 살펴보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망치와 못을 손에 들고 부지런히 나 자신의 벽을 허물고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악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글을 적어 내려간다.라는 행위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정신을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분야를 관찰하기 위해 내 벽을 깨고 개척하여 아주 자그마한 구멍이 생길 땐 그제서야 조금은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을 받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생각을 글로 적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실행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내가 선천적인 재능이 아닌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한 후천적 재능 혹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여 구축한 재능들 중 아마 가장 값진 재능들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나면 나는 과감히 다른 방향으로 또 벽을 허물겠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김 경 :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유튜버 이연님의 영상들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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