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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Nov 23. 2022

부질없어도 살아야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삶이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든 서른 이후 어느 날부터 끊임없이 내 주변을 맴돌던 질문이 있다.


사는 게 재미없다..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가는 건가?
인생은 이렇게 쳇바퀴처럼 살다 끝나는 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이런 고민을 듣고 함께 끄덕여 줄 친구가 있다고 해서 마음속에 품은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답을 찾지 못했으니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한동안 나를 무기력과 우울의 나락으로 한없이 끌어내리곤 했다.


유퀴즈에 나오는 대단한 업적을 이뤄낸 누군가들을  평범한 내 삶 초라해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것도 아니요, 이 사회나 지구를 위해 일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내가 먹고살기 위해 주어진 노동을 할 뿐인 내 인생의 목적이 너무도 보잘것없었다.

인생이 대체 뭔가. 사는 게 너무 부질없게 느껴졌.

그래서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영화 속 캐릭터 '조부 투키'를 만났을 때, 반가웠다. 녀가 찾은 해답을 빨리 듣고 싶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멀티 유니버스에 대한 직관적인 표현으로 세계관에 대한 관객의 이해와 몰입도를 높인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중심에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불만 가득한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중년 여성, 에블린이 있다.

에블린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세상의 에블린과 달리, 다른 멀티 유니버스에는  에블린이 있다. 천재 에블린우주 최초로 다른 유니버스로 '점핑'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딸에게 '점핑'을 한계치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다 딸은 모든 멀티 유니버스를 넘나들 수 있는 존재, '조부 투키'다.

조부 투파키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여차 저차 해서 이 세상의 에블린에게 여러 유니버스를 넘나들며 세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조부 투를 물리치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하지만 에블린은 조부 투키를 물리치는 순간 지금의 딸도 잃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차라리 그녀와 같아지는 길을 택한다. (점핑을 한계까지 시도해서 자신도 '모든 유니버스를 넘나드는 존재'가 된다.)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된 에블린과 마주 선 채, 조부 투키는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나니 모든 게 부질없어졌다고. 그래서 자신의 허무를 공감하는 존재와 함께 '무'로 돌아가고 싶고.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베이글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허무를 논하는 그녀의 표정과 어조, 이제 더 이상 대단한 꿈도, 성취도 기대할 수 없는 서른 중반에 찾아온 무기력함과 닮아 있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어쩌면 '모든 멀티 유니버스를 통틀어 제일 별로인 나'지도 모를 이 세상의 내 겪는 허무, 모든 것을 통달한 최상의 존재 겪고 있.


그녀의 허무에 공감수록 어떻게 허무를 벗어날지, 어떤 해답을 찾을지 궁금했다.




조부 투파키와 같아지기 위해 '버스 점핑(Verse jumping, 다른 유니버스와 이어지는 것)'을 계속 시도하다가 드디어 모든 멀티 유니버스를 느끼게 된 에블린. 그제야 그녀도 조부 투파키허무와 상실감에 공감한다. 

조부 투파키의 허무에 빠져드는 에블린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을 미뤄 놓고 폭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나 묵묵히  자신의 곁을 지켜준 '남편의 다정'을 깨닫고, 블린 허무에서 빠져나온다. 


에블린은 남편의 조언대로 다정해지기로 결심한다. 다정함으로 적을 물리치고, 무의 세계로 몸을 내던지던 조부 투바키를 다정하게 끌어안는다. '엄마의 다정함' 덕분에 조부 투바키는 '다정한 딸'로 돌아, 영화 첫 장면부터 가족을 괴롭히던 세무 조사를 무리 짓 위해  가족이 출동하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 

국세청에 모인 가족들(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서로를 향한 다정함 서를 구하고 서로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이야기. 누군가는 눈물을 훔치고, 많은 이들이 감적이라며 극찬 일색인 영화를 보며 의아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
누군가의 다정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조부 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존재가 될 수 있어서, 되려 허무해졌다. 삶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가 몽롱한 표정으로 읊조리는 "Nothing matters"라는 말 끝에 남은 질문은 '왜 살아야 하는데?' 였으리라.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 의미를 찾지 못해서 생을 마감하려는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이 영화는 외친다. '가족이 널 사랑한다고. 그러니 살자고.'


공교롭게도 영화 속 조부 투키는 엄마로부터 이해와 공감을 갈구하던 존재였으니 뒤늦게 내민 엄마의 다정한 손길과 공감이 해결책이 될 수 있었다. 운 좋게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영화가 제시한 삶의 의미에 대한 마치 자살자의 유가족에게 '그럴 줄 짐작 못했어?', '더 잘 챙겨주지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무신경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덧없음을 논하다가 갑자기 가족의 사랑으로 귀결다니. 영화 속 '버스 점핑'만큼이나 갑작스러운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가족, 사랑, 다정함이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너무나 소중한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도, 다정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우울한 사람은 우울하고 갈피를 잃은 사람은 계속 헤맬 수밖에 없다.

사랑과 다정함이 든든한 응원과 지지임에는 틀림없지만 결국 번뇌를 깨고 나와야 하는 것은 '나'이니까.


'왜 사느냐' 그 생각을 계속하면 그 종착은 자살이다.
왜 살지, 왜 살지, 자꾸 하면 끝에 가서는 살 이유가 안 나온다. 사는 데에는 애초에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유가 없으니까 죽어야 된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은 굉장히 죽음으로 가는 생각이다. 이것은 탐구가 아니다.
존재는 이미 주어진 것이다.
                                               (법륜 스님의 즉문 즉답 中)


법륜 스님은 '왜 사느냐는 질문으로 삶에 시비를 거는 대신 어떻게 하면 오늘도 행복하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삶의 에너지를 발전적으로 쓰는 길'이라고 하셨다.

결국 존재도 주어진 것이요, 삶도 주어진 것요, 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할 것인가, 이 순간을 즐길 것인가' 뿐이다.


모녀극적인 화해로부터 몇 년 뒤, 도저히 엄마와는 맞지 않는다며 집을 뛰쳐나온 조부 투파키가 다시 또 '왜 살아야 하는가'를 되뇌며 죽음으로 향하지 않으려면, 녀가 품은 질문 바뀌어야 다. 덧없는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가'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나 또한 끊임없이 '어떻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일례로,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수십 번 들었다. 하지만  열심히 적었고 결국 업로드했다.

'글을 쓰는 순간이 즐거웠으면 된 거지.'

스스로 품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결국 에게 있었다.







마음대로 각색 엔딩.



드디어 모든 유니버스를 넘나들 수 있게 된 에블린. 조부 투파키의 허무와 상실에 공감하며 에블린은 말한다.

모든 것을 끝내기 전에 모든 유니버스를 함께 돌아보.


베이글을 바라보는 두사람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새로운 유니버스에 도착할 때마다 그 세계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에블린은 코인빨래방에 설치한 노래방 기계로 온 가족이 함께 노래하며 웃음 짓던 때를 추억한다. 더 이상 딸이 동성애자라는 것도, 문신을 한 것도 중요하지 않다.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렇게 모든 유니버스를 돌고 나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돌의 유니버스에서 조부 투파키가 말한다.


"행복했던 순간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었어 (small and stupid). 여전히 인생은 부질없어."


                                        "그래도 그때 참 즐겁긴 했지?"


"... 그 순간만큼은 많이 웃었지"

 

                                         "맞아, 너 그때 진짜 웃겼는데"


"hahahahahaha"                       "hahahahahaha"   


"..."

                   "다시 한번 다 같이 노래하면 즐거울 텐데"   


"..."

                "저번에 못 갔던 여행, 갔으면 즐거웠겠지?"


"..."


"그럼 뭐, 가보든가."

                                                              "같이 가줄거야?"


"ㅇㅇ"

                                                                    "고마워"


 (사진=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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