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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댕굴이 Dec 01. 2022

한국인에게 '빌드업'이란

벤투 감독이 월드컵 본선 경기를 치르며 그간의 불신을 불식시고 벤버지(벤투+아버지)가 됐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빌드업 축구의 진면모드러내며 (대체로) 만족스러운 경기 내용을 선보인 덕이다. 첫 경기 우루과이전에 대해 축구 데이터 분석 전문 <마크스탯스>가 개한 패스 맵은 우리 선수들이 '빌드업'한 중원 장악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루과이전 양 팀의 패스맵. 트위터 @markstatsbot


사실 월드컵 직전까지 평가전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아쉬운 에도 불구하고 벤투 감독은 기존의 전략과 선수 기용을 그대로 유지했고, 이에 대해 '고집불통'이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1년 한일전 패배 때는 경질설까지 있었다.


나 같은 범인은 무섭게 쏟아지는 질타와 비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진작에 '에잇,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자'했을 것 같은데. 그때도 벤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역시 저 정도 자리까지 가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강대국에게는 통하지 않을 거라며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던 빌드업 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그 유용성과 전략적 가치를 입증했다.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거론되던 몇몇 선수들 경기에서 선택받은 이유를 증명했다.


한 번의 증명으로 고집은 뚝심이 되었고 

아집은 철학이 되었다.




본인 철학을 굳건히 고수한 것 온전히 그의 그릇이었지만,

우리가 그 '한 번의 증명'을 기다릴 수 있었던 데에는 2002년의 히딩크 감독이 있었.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가능케 했던 히딩크 감독도 '오대영(5대 0)'으로 불리는 등 만만치 않은 비난 여론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다. 오대영 경기는 선임된 지 불과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저 신속한 결과만을 기대했고, 기다림과 인내보다 비난과 질책이 손쉬웠으니까.

4강 업적을 일궈낸 이후, 히딩크 감독의 오대영 별명이 소환될 때 누군가는 부끄러워지고 누군가는 시선을 회피하겠지.


역대 대표팀 감독 중 가장 오래 재임한 감독이 된 벤투 감독. 지난 4년 동안, 심지어 월드컵 직전까지도 댓글창에는 빌드업 전략에 대한 회의론과 날 선 비판이 가득했지만 그중에서도 열에 한 둘은 '히딩크 때도 이랬다, 감독을 믿어야 한다'는 댓글이었다.


20년 전 그때, 딩크 감독이 대한민국에 선물한 것은 4강 신화라는 잊을 수 없는 추억 그 이상이었나 보다. 

믿고 기다리는 것, 시행착오를 잠자코 지켜보는 것, 비난보다는 응원을 보내는 것.  분에 우리의 응원문화는 경기 종료 후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는 쪼끔 더 성숙해졌다.



이제 벤투의 지난 4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3차전 경기의 승패와 16강 진출 여하를 막론하고,

이번 월드컵의 전 과정이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믿고 기다려주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빌드업'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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