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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여름 Dec 03. 2023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나요?

'하루키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누구에게나 책을 탐독하면서 거쳐 가는 작가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이문열이 있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이문열의 책은 그의 ‘절필 선언’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접할 수 없어서 과거형이다. 언제부터인가 좋아하는 작가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는 것이 모양 빠지는 분위기가 된 게 사실이다. 사실 요즘은 ‘난 하루키 별로야!’‘하루키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라며 새침하게 말하는 게 모범 답안처럼 영 인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인 작가치고는 글이 쉽고 대중적인 이미지다. 대단한 ‘선생님’ 같아 보이지는 않고 만화가 같은 느낌마저 든다. 쉽게 말하면 ‘고급진 취향’을 드러내기에는 부적절한가 보다. 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전 하루키를 좋아했으면서 이제 와서 아닌 척하는 경우는 좀 비겁한 것 같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르로도 아니고 뭐가 그리 무섭다고 그러는지 여하간 비겁해 보인다.     


 1989년 하루키가 문학사상사판 『상실의 시대』(책날개에 실린 후드티 차림의 하루키는 몹시 젊었다)로 우리나라에 등장한 이후, 십 년 넘도록 열광 내지 난리 통 시절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성로 제일서적에 가면 하루키의 책들이 산을 이루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책이 나오는 날에는 서점 앞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실의 시대』(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지만)가 출간되자마자 나는 거의 환장하도록 좋아하며 몇 번씩이나 읽었다. 그 시절 작가와 평론가들마저 ‘새 시대 개인의 탄생’ 혹은 ‘도회적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했고 ‘재즈’가 대세를 이루고 ‘쿨<cool>’이라는 단어들이 유행했다.      


 하루키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상실의 시대』와 몇 권을 제외하고는 그의 소설 중 대부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은지 게임 공략집이나 SF 만화의 설정 집처럼 각종 하루키 해설서가 나오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남의 일에 관심이 그다지 없는 나는 하루키 머릿속을 이해하기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일 의지까지는 없다. 


 지금 와 보면 하루키의 소설중 유일무이하게 이질적인 소설이 상실의시대다. 리얼리즘과 거리가 먼 작품들이 주류를 이뤘으니 이 작품만은 리얼리즘 이야기를 썼다고 봐야한다. 지금의 이미지가 원래 이랬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전적 소설만큼은 리얼리즘에 기초를 둔 것같다. 젊은 시절 내가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하면 책깨나 읽는 선배들은 혀를 차며 그 시간에 ‘니체를 읽어라.’ 혹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읽으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중 세상의 문학과 맞설 줄 알았던 한 선배는 지금‘섬유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선배. 그 시절 제게 했던 충고는요?”          

 지금도 나는 하루키의 신작을 기대한다. 당당하게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자주 읽는다. 성경처럼 말이다. 대중적인 문체와 솔직한 글이 좋다. 코발트 하늘색이 주는 청량감이 주는 표지가 발랄하고, 세계적 작가라고(쓰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걸) 인쇄된 첫 줄이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굳이 안그래도 세계적 작가는 인정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더러 웃는다. 그냥 하루키는 내게 ‘청춘’이다. 아닌 척하지만 나는 특별하다고 굳게 믿고, 내 욕망에는 정당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 ‘나의 청춘’과 오버랩된다. 그 시절에는 내게 하루키가 중심에 있었다.     


 다시 여행기로 돌아가자면, 그는 여행이야말로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된다고 했다. 그때그때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나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키고 눈으로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따위를 새겨 넣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 모든 걸 내 눈, 내 귀, 내 피부 속에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카메라가 되고, 녹음기가 된다. 그렇게 온몸으로 받아온 감흥이야말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이 되는 그것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를 일 년여에 걸쳐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밤에 여독을 풀며 숙소에서 조금씩 조금씩 써나가며 완성했다고 한다.      


 여하간 온갖 상징과 비유를 힘겹게 풀어내면서 대단한 철학이 있을 것 같은 이론서나 개념서는 재미없어서 책을 바로 덮을 때도 있다. 내가 공감할 수 없지만 읽어야 한다고 하는 책은 꾹꾹 참고 읽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책은 구체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기막히게 잘 풀어낸다. 뻥튀기 기계에서 뻥튀기가 튀어나오듯 시원하고 명쾌하게 써 내려가는 문체가 경이롭다. 또한 재미난다. 그의 소설을 이루는 부분 부분들은 그의 취향을 드러낸다. 올드팝, 재즈, 클래식, 요리, 패션, 미국 작가, 이색적인 장소들 처럼 지금에 와서 보면 이상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35년전 쯤엔 신선한 소재였음이 분명하다. 지금의 내 취향과 닮아있다. 재즈를 좋아하는 건 그때 하루키의 영향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왜 이 작가의 글을 오랫동안 좋아했는지에 대해 나 자신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리얼리즘의 문체로 非리얼리즘 이야기를 치열하고 꼼꼼하게 쓰는 그가 아직도 현역으로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

  




 #나는여행기를이렇게쓴다  #나의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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