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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이 Sep 07. 2022

큰 놈과 큰 놈 사이

- 어두운 숲 속에서 


올 초 돈은 없지만 주식 투자를 좀 해볼 생각이 있었다. 집이나 차를 사지 말고 주식 투자를 하라는 어떤 유명인사의 방송을 봤던 참이었다. 꼭 그 방송 때문이 아니라도 재테크에 무지하게 살아온 점이 좀 반성이 되기도 했다. 


잃어도 타격 없는 푼돈으로 실전에 뛰어들 마음을 먹고 일단 주식 전문가의 글이나 영상을 찾아보았다. 막 포켓몬 빵이 선풍적인 인기라 제조회사의 주가가 치솟고 있었다. 유행 상품이나 트렌드를 유심히 살피면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될지 보인다는데 뒤늦게 무릎을 쳤다. 


평생 신문의 경제면은 제치고 살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일반 뉴스 대신에 주가 지수를 살피고 내가 점찍은 주식의 상종가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빨간색과 파란색 그래프가 만들어내는 뾰족산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참 낯설었다. 그리고 주식 통장을 만든다면 얼마나 넣을까, 막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아침에 주식 시장이 폭락을 했다. 미국 증시의 급락으로 국내 시장이 영향을 받은 거였다. 전 세계가 너나 할 것 없이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의 경제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믿어지지 않게도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평소 즐겨먹던 해바라기씨유가 품귀되어 황급히 카놀라유로 바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식용유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제일의 해바라기씨 주산지라는 것을 처음 알았고 한 가지 품목이 오르면 다른 품목도 줄줄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는 관계없는 먼 동유럽 끝자락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상황은 놀랍기만 했다. 단순히 경제나 군사 안보 문제가 아니라 전쟁에서 비참하게 희생되는 민간인들, 억지로 동원된 군인들의 운명까지 의문을 던져 주는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렇게 많은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전쟁이 일개 최고 권력자의 마음 하나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어이, 우훅스, 잘 들어.”

침털이 말을 가로챘다.

“이 생쥐도 너처럼 가고 싶은 데 가고, 하고 싶은 거 할 권리가 있어! 이 생쥐를 못살게 굴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동화 어두운 숲 속에서, p143)     


영리하고 용감한 생쥐 양귀비는 가족과 함께 어두운 숲 속 그레이 하우스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두운 숲 일대는 잔인하고 음험한 수리부엉이 우훅스의 지배하에 있고 그는 자신의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생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이 숲 속에서 우훅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호저 침털인데 그는 선량하나 무뚝뚝하고 세상사에 무관심하다. 양귀비는 우훅스를 물리치기 위해서 숲의 숨겨진 강자, 침털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야기 속에는 늘 영웅과 악당이 등장한다. 악당은 주인공이 될 수는 있지만 동화 작가들은 그가 승자가 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듯 미천한 약자도 동화 속에서는 거인을 굴복시킬 수 있다. 그럴 때 특히 동원되는 마법은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해!”다. 힘없는 다수가 뭉쳐서 악을 물리쳐야 한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동화는 꿈꾼다. 


힘없는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바꿔줄 영웅을 고대하기도 한다. 홍길동이나 전우치 같은 슈퍼 히어로가 탄생한 것도 그래서다. 21세기형 슈퍼 히어로는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초능력에 재력도 겸비했는데 게다가 대가도 바라지 않는 자발적인 정의감의 소유자다.      


생쥐 양귀비는 무시무시한 우훅스의 비밀을 밝혀내고 그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강력한 호저 침털의 도움이 뒷받침된 결정이었다. 하지만 침털은 공짜로 양귀비를 도와준 것이 아니었다. 양귀비는 침털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야 하는 과제를 받는다. 양귀비의 성공은 침털에게 빚지고 있지만, 양귀비의 도전 정신이 없었다면 침털의 도움도 없었을 테니 어쩌면 스스로를 구원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약자들은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누군가를 찾고 선택하고 희망을 걸어본다. 우리가 찍을 사람이 없어도 선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약자와 강자의 타협은 가장 정교한 이해타산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력한 독재자도 영원히 가지는 못한다. 독재자를 떠받치는 권력도 어쨌든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최대한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지만 그것의 효력이 다할 때 스스로 거꾸러질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을 앞당기는 것은 약자들의 지혜와 용기라고 하겠다.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Chräcker Heller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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