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초등 아들이 떠난 동상이몽 자전거 여행 - 국토 종주 편
낙동강 오리알 :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한쪽에 존재감 없이 있는 것, 또는 고립무원의 외톨이 상태를 가리키는 관용어. [출처 : 나무위키]
“구미로 출발!”
우리 넷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낙동강을 따라 국토 종주 자전거길을 달렸다. 달리다 보니 저 앞에 대형 오리 풍선이 보였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풍선 가까이 가니 그곳에선 낙동강 오리알 인증 사진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뭐지? 낙동강 오리알은 존재감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나? 내가 뭔가를 잘 못 알고 있나?’ 나는 핸드폰을 꺼내 낙동강 오리알의 유래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있었지만, 모두 외톨이를 의미했다. ‘나는 외톨이입니다.’라고 SNS에 올리라는 건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
나중에 검색을 통해 나는 이 이벤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벤트를 기획했던 것은 상주시장으로 왕따나 외톨이를 의미했던 낙동강 오리알을 이제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관광 자원으로 만드는 게 그의 포부였다.
‘세상에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펑~’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우리 넷은 자전거를 멈췄다.
“무슨 소리지?”
주변을 둘러보는데, 환이가 재빠르게 자전거에서 내렸다. 뒷바퀴를 꾹 눌러보던 환이가 말했다.
“휴~우, 다행이다. 타이어가 또 터진 줄 알았네.”
환이의 진지한 표정과 행동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넓은 자전거길에서 우리는 속도를 맞춰 달렸다. 자전거길 오른쪽으로는 상주 특산물인 감나무가 왼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에는 황포 돛배가 우리에게 멋진 풍경을 선사했다. 배꼽시계가 울릴 즈음, 큰 건물 하나가 보였다. 낙동강 이야기 역사관이었다.
“우리 낙동강 이야기 역사관 들어가 볼까? 화장실도 좀 들르고, 매점이나 식당 있으면 뭐라도 좀 먹고 가는 게 어때?”
우리는 역사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입장을 했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방문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역사관을 대충 둘러보고 안내에 앉아 계시는 분께 물었다.
“여기 식당이나 매점은 어디에 있어요?”
“매점이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운영하지 않아요. 정수기는 있어요.”
물만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실망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요, 이왕 여기 왔으니 4D 영화라도 보고 가세요.”
원래는 영상 시간에 맞춰 영화를 틀어주는 시스템이었지만, 그분은 우리만을 위해 4D 영화를 틀어주셨다. 낙동강 이야기 역사관을 나와 핸드폰을 꺼내 주변 음식점과 편의점을 검색했다. 2km 정도 떨어진 곳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가볍게 컵라면을 하나씩 먹었다.
“와, 벌써 4시야!”
얼마 달리지 않은 것 같았는데, 조금 있으면 어둠이 내릴 시간이었다.
“얘들아, 시간을 보니 오늘 구미 터미널까지 못 가겠는걸! 우리 속도로 구미 터미널까지 가면 7시가 넘을 텐데. 요즘은 6시만 돼도 깜깜해지는 거 알지?”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쯤에서 주변 숙소를 알아볼까? 아니면 오늘은 둘이 아닌 넷이니까 힘을 합쳐 야간 라이딩에 도전해 볼까? 지도를 보니 길은 평탄해 보이긴 해.”
“우리 갈 수 있어요. 그냥 가요.”
현이와 환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이야기했다.
“환이 엄마, 어제 같은 일이 생겨도 어른이 둘이니까 상황 대처가 나을 거 같아요. 야간이라도 달려봐요.”
우리는 한뜻으로 야간 라이딩을 택했다.
‘어제 환이 자전거 타이어에 펑크가 나지 않았다면 환이와 둘이라도 별생각 없이 구미를 향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여파는 우리에게 ‘염려’라는 단어를 남겼다.
가는 길에 있던 낙단보 인증센터에서 우리는 남한강 종주를 완료했다는 스티커를 받았다. 스티커를 헬멧에 붙이니 그럴싸해 보였다. 스티커 한 장일뿐인데 뿌듯했다. 아이들이 칭찬스티커에 반응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칭찬스티커는 그냥 스티커가 아니었다. 나를 인정받는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시 삼십 분쯤 되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이제 전조등 켜자.”
우리 넷은 전조등과 후미등을 환하게 밝히며 자전거길을 달렸다. 여섯 시가 넘으니 캄캄해졌다. 자전거길엔 드문드문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꺼져있는 것도 많았다. 길이 넓지 않은 곳에서는 내가 앞장을 서고 6학년 현이, 4학년 환이 마지막은 현이 엄마가 달렸다.
“얘들아, 속도 괜찮아? 잘 따라오고 있지?”
자전거길이 넓은 곳에선 아이 둘을 나란히 앞으로 보내고 어른들은 바로 뒤에서 전조등을 더 위로 향하게 해 아이들 앞길을 밝혀주며 달렸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 구미 터미널에 도착했다.
“얘들아, 고생 많았어. 밥부터 먹자.”
우리는 구미 터미널 앞에 있는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칼국수 4인분 하고, 만두 2인분 시켰다. ‘ 너무 많이 시킨 건 아닐까?’라고 잠깐 생각했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반찬까지 남김없이 깔끔하게 먹었다. 현이네는 내일 새벽 버스로 집에 갈 거라 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기에 푹 자기 위해 방을 따로 잡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얼른 씻은 환이는 형이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덕분에 나는 편히 쉴 수 있었다. 현이 엄마한테 문자가 왔다.
“얘들이 너무 재미있게 놀아서 12시에 보낼게요. 저희는 내일 아침 버스로 돌아가야 해서 인사 못 하고 갈 것 같아요. 남은 종주 파이팅!”
12시가 조금 지나 환이가 들어왔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자전거길 지도를 훑어봤다. 내일 묵을만한 숙소는 여기서 30km 떨어진 칠곡, 70km 거리에 있는 대구 이월드 부근에 있었다.
“아들, 내일 70km를 달려 네가 제일가고 싶어 하던 이월드 앞까지 갈까? 아니면 이 근처에 가 볼 데가 있으면 둘러보고 천천히 30km만 갈까?”
“오늘 늦게까지 달렸으니, 이월드까지는 무리지. 엄마, 혹시 금오랜드 검색해 봤어?”
자전거 지도에 나와 있는 놀이동산 ‘금오랜드’를 환이가 놓칠 리 없었다. 핸드폰을 한참 바라보던 환이가 얘기했다.
“엄마, 가자. 실내 동물원 후기가 좋은 거 보니 괜찮겠는데…. 놀이기구는 3개 정도만 타지 뭐.”
자전거 여행 칠일 째, 환이의 체험학습 보고서
형과 같이 출발했다. 아침에 펜션 마당에 어린이 그네가 있어 360도 돌려 봤다. 한 65도 정도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게 해 놔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애들한테는 위험할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자전거 박물관에 가서 어제 펑크 난 내 자전거 뒷바퀴를 고쳤다. 내 자전거는 바퀴가 튼튼했는데, 어제 그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튜브를 보니 못이 딱 꽂혀 있었다.
오늘은 내일 금오랜드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 금오랜드는 월미도 테마파크 같은 크기일 것만 같다. 그렇게 기대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놀이동산 종주이니만큼 이쯤이면 가봐야 하지 않을까?
오늘도 애매한 시련이 있다. 뭐냐 하면 60km 정도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금오랜드에서 2시 정도까지 놀다가 자전거를 탈 것이다. 형은 내일 집으로 돌아가 재정비하고 다시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 상주에서 구미까지 6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