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톰과 제리. 거기서 톰은 제리라는 쥐에게 매번 당하는 모자란(?) 고양이다. 그 만화를 자주 봤던 나에게 고양이란 존재는바보 같고 매번 당하는 멍청한 존재였다.
길을 걷다 보면 주인 없는 개는 거의 본 적 없지만 길고양이들은 정말 많이 보였다. 다들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보면 극도로 경계하고 숨는다. 반대로 개들은 항상 주인이 있었고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기 때문에 귀엽고 거부감이 없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피하는 고양이란 존재가 싫었다. 먼저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다가간 만큼 멀어졌다. 가까이하기 어려웠고 그렇기에 먼저 다가와주고 잘 따르는 동물들을 좋아했다. 나에게 고양이는 사람을 싫어하고 때에 찌들어서 지저분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헤져어 놓는 사회에 민폐인 동물이었다.
내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고양이를 키웠다. 이름은 깜디. 턱시도 고양이였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첫 번째 고양이다. 너무 애기 때 데려와서 사람을 자주 할퀴고 물었다. 개는 어릴 때부터 계속 키워왔었기에 고양이가 행동하는 것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높은 곳에 올라다니고 사람이 와도 개처럼 강렬하게 반기지도 않고 항상 도도했다. 자신의 요구 사항이 충족되면 가차 없이 자리를 떠나는, 또 원하는 게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서 우는 모습을 보면 내가 얘를 키우는 건지 모시는 건지 헷갈렸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가면 멀어졌고 나는 항상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마음을 줄 세가 없었다. 또 한창 갓난아이를 키울 때라 아이를 물까 봐 고양이가 다가가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쫓아냈다. 그렇기에나름 오랜 시간을 함께했지만 친해지지 못했고 고양이에 대한 내 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어느 날 깜디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정도 많이 들었고 정말 안타까웠다. 그렇게 나의 첫 고양이와 이별을 맞이했다.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예전의 깜디가 그리워서일까 아내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반대했다. 털도 많이 날리고 까탈스러운 고양이와 잘 지낼 자신이 없었다. 나를 따르지 않는 동물의 수발을 들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나를 계속해서 설득했고 결국 유기묘를 분양하는 사이트를 통해 5개월 된 고양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막상 보니까 생각보다 컸다. 고양이를 모르는 나도 5개월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두려움에 떨며 아빠 곁에 딱 붙어있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렇게 내 인생의 두 번째 고양이 냥이와의 삶이 시작됐다.
우리 집에 온 냥이는 샥샥 거리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환경에 놓였기에 두려웠을 거다. 어떻게 하면 걱정을 덜어주고 친해질 수 있을까. 고양이의 습성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냥이가 숨을 공간을 마련해주고 1~2 주간은 아예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밤이 되면 적막하던 우리 집에 사사사삭 소리가 밤새 맴돌았다. 집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우연히 물 마시러 나온 나와 마주치고 서로 불편해진다. 어찌나 낮은 포복으로 돌아다니는지 배가 땅에 붙은 채로 기어 다녔다. 점차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 익숙해진 냥이였지만 나라는 존재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한 달이 지나도 우리를 경계했다. 그런 냥이가 싫지만은 않았다.
뭐가 도대체 무서운 걸까. 매일 밥도 주고 똥도 치워주었지만 나에게 먼저 다가오는 건 자기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였다. 그 외에는 항상 숨어있었다.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얘를 어떻게 안심시켜줄 수 있을지 간식도 주고 장난감으로 회유도 해봤지만 마음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 애착이 가는 이유는 뭘까? 어떻게 해야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얘는 나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까? 고양이의 시점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다가갔다.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부드럽게. 그렇게 냥이는 나에게 조금씩이나마 마음의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냥이를 통해 상대를 존중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행복의 가치가 어떤 상태에서 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지만 가족으로서의 사랑과는 달랐다. 나를 지독하게 경계했던, 내가 다가가면 그만큼 멀어지고 절대 다가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냥이와 나의 사이에서 세상 속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해갔다. 인간은 관계에 있어 계산적이다. 타인과 대가 없는 관계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내가 상대방에 맞춘 만큼 다음번에는 상대방에게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항상 나 자신을 옭아메왔다. 내 작은 친구는 아무 대가 없는 관계를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서로의 눈높이에서 존중하는 방법을. 고양이는 울음으로 대화하는 동물이 아니라고 한다.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 대답을 하듯이 울음으로 답하는 것은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작은 친구는 내 눈높이에 맞춰 나를 바라봐주려 한다. 내가 사냥을 못할까 봐쥐 모양의 장난감을내 앞에 가져다논다. 그리고 조용히 내 옆에 와서 눕는다. 나는 냥이를 통해 대가 없는 관계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고 그 사람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법을 말이다.
한 해가 더 지난 지금은 겨울이라는 고양이 식구가 더 늘어났다. 고양이를 정말 싫어했던 나는 냥이와 겨울이라는 친구들을 통해 매일매일을 치유받고 공감받고 존중받고 있다. 나에게 고양이는 친구이자 좋은 스승이다.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내가 존중하고 신뢰하는 만큼 이 친구들도 동일하게 생각해준다. 매일 내 옆을 지켜주는 그들에게 감사하고 나도 내 작은 친구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